글과 감정의 대화(우아한 거짓말;왕따):성장과 깨달음

by 김인경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몇 권 대출했다. 대출한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경험이 지금도 떠오른다. 읽은 책들을 소장하고 싶어졌다. 읽고 싶은 책들만 고르면 되는 줄 알았던 책들이 나에게 많은 선물을 준 것이다. 책이 이렇게 고마운 친구이자 선물인 걸 왜 몰랐을까?

대출한 책에는 줄을 그을 수도 없고, 반납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아니 이건 핑계에 불과하다. 그냥 책꽂이에 꽂거나 식탁에 쌓아두고 내가 읽은 책을 보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책을 좋아하는 딸과 아빠가 책을 사 오면, 집이 책으로 깔려 죽는다며 나는 매번 불평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귀한 책을 몇 트럭이나 버렸는지 모른다. 이런 내가 책을 쌓기 시작한다면 양심이 없는 걸까?


지금까지 몇 권 읽지는 않았지만, 읽는 책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친구처럼 해주었다. "책은 최고의 스승이다. 네가 만나고 싶은 유명한 사람을 책으로 만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한 분이 계셨다. 어렸을 때, 전공 서적이나 가끔 연애소설만 읽은 나는 이런 인사이트가 부족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소설을 읽어도 나에게 와 닿은 내용과 생각들이 많아졌다.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까?'

읽으면서 기록을 하라는데 아직까지 그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귀찮기도 하고 천천히 읽는 내가 적기까지 하면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에 현재는 완독에 초점을 두고 있다.




친구들과 8월 16일과 17일 강원도 양양과 속초로 놀러 갔다. 친구들은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겼다. 하지만 차가운 물에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서핑하는 친구들을 구경하거나 내 할 일을 찾아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해변 벤치에 앉아 여유로움과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우아한 거짓말"이란 김려령 작가의 소설책을 읽었다. 집에 있는 책 중에 제목이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했다. 해변에서 읽기에 딱딱하지 않고 책장이 잘 넘어가는 소설책으로 고른 것이다. 몇 장을 읽다 보니 영화로 본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게 생각났다. 주인공이 "김희애"여서 보았던 영화이다. 김희애는 대 스타답게 엄마의 마음을 실감 나게 연기해 주었다. 이 책에서 엄마 역할이 나올 때마다 김희애가 했던 모습과 매치되면서 실제와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전학해 온 천지 학생의 왕따"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 전학와서 만난 친구 화연이는 중학교까지 같은 반이 되어 천지를 야비하고 교묘하게 괴롭힌다. 알면서도 당해주던 천지는 끝내 목을 매고 죽는다.

천지 엄마도 천지 언니도 천지가 왜 죽었는지 알았지만, 화연에게 직접 따지지는 못했다. 천지 언니는 화연에게, 천지 엄마는 화연 부모가 운영하는 짜장면 가게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그들을 위하는 척, 간접적으로 천지가 당한 것처럼 괴롭히는 우아한 거짓말이다.


부모는 자기 자식이 어떤 아인지 알고 있다. 내 자식이라 단점은 말하고 싶지 않고 들어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화연 엄마도 자기 딸을 알기에 짜장면을 먹으러 오는 천지 엄마에게 사과하려고 했다. 이때, 천지 엄마는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결국은 친구들도 선생님도 부모나 언니도 모두가 천지가 죽은 이유를 알았지만, 자살로 종결되는 사건에 대한 간접적인 복수라 해야 할까?


나는 이 대목이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살면서 나는 부모에게 언니 오빠에게 남편에게, 시댁 식구들에게 사과받고 싶은 적이 많았다. 그런 상처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났고 잊을만하다. 하지만, 생리 전후나 기분 변화가 생길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감정 조절이 안 돼 미칠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마음속의 응어리겠지?


나도 그들에게 잘못을 안 했다고는 못하겠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분명 내 성질에 당하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받은 상처보다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내 잘못보다는 그들이 준 상처에 더 많이 반응하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나에게 사과할 가족이 있을까?' 상처받은 나만 계속 마음에 담고 사는 것 같아 나 자신이 바보 같고 쪼잔해 보인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이 박힌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왕따란, "왕" (매우, 엄청)"따"돌림이라는 어원 설이다. 즉, 집단에서 특정 개인을 따돌리는 일로 어떤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것이다. 파생형으로 ‘은따’(은근히 따돌림), ‘전따’(전교생이 따돌림)도 요즘은 유행하고 있다.

중세 시대의 왕따는 "마녀사냥"과 "바보들의 배"로 불리었다. 이러한 왕따는 현대사회에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시대와 관계없이 똑같이 자행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왕따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많지 않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이들과 상종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그 집단이나 사회를 떠나야만 해결이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왕따" 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왕따"는 학교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치원부터 직장까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단체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때 왕따를 당하는 사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는 피해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른다.


천지가 자살까지 했다는 것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학교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살인은 "고의로 타인을 살해하여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위와 같은 경우도 간접살인이라 할 수 있다.


왕따가 되어 혼자만 느끼고 말할 수 없는 창피함과 자존감 저하, 우울증 등으로 견디다 못해 죽음을 택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어디 천지뿐이겠는가?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와 직장 등 사람들이 모여있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엄마들이 운동하러 다니는 헬스장이나 사우나에서도 "왕따" 문화가 무섭게 나타나고 있다.


왕따들이 당하는 정신적 고통을 살펴보면, 왕따의 수준이 장난의 선을 넘으면, 처음에는 가해자 집단에 분노를 느낀다.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분노조차도 치욕스럽게 느껴지면서 피해자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 자책이 심해지면 자존감이 끝도 없이 추락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조차도 없어지게 된다. 이때,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조차 망각하게 되어 피해자 본인의 존재 자체가 민폐이고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자살이라는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책에서 천지는 스스로 왕따를 벗어나기 위해 도서관에 다니면서 우울증에 관한 책도 읽고,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성적에도 신경을 썼다. 국어 시간에는 화연을 상대로 발표까지 해서 화연에게 사과도 받았지만,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우아한 거짓말에서 천지는 화연의 생일잔치에 1시간 늦게 초대받게 된다. 초대받은 친구들이 음식을 다 먹고 헤어질 때쯤 천지는 나타나서 친구들 앞에서 바보가 된다. 이때 화연은 인심이라도 쓰듯이 엄마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천지에게 주도록 한다. 천지는 먹고 토하는 일이 있어도 꾸역꾸역 다 먹고 온다. 천지가 죽으면서 남긴 5장의 편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잘못을 알게 해준다.


사회에 만연한 왕따 대처법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왕따 피해자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공권력이 미비한 경찰 조직뿐이다.


왕따 문제는 가해자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왕따 피해가 회복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해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재발 방지, 그리고 피해자가 피해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자신의 단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인간 존중에 대한 교육, 따돌림으로 받는 상처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조기교육 등으로 사회 전체가 서로를 존중하는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상처는 주는 쪽보다 받는 쪽이 더 큰 아픔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아픔들을 이겨내며 자신을 성장시키고 힘을 얻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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