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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이 May 13. 2022

집을 잃은 사람들

요즘 들어 주위에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 잠시 머물려고 우리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우스 메이트의 친구 한 명이 잠시 거실에서 지내게 되었고 그 친구가 가고 나면 또 다른 하우스 메이트의 친구가 집을 구할 동안 함께 지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동기로부터 조금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동기 한 명이 병원에서 자살 위험과 망상증, 조현병 등의 진단을 받았는데 갈 곳이 없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나온 후 지금까지는 타과 동기의 집에서 식구들과 지냈다고 했다.  


언니를 신입생 OT 때 처음 봤던 모습과 이후로 조금씩 변해가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타임라인을 따라 떠올랐다 사라졌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언니가 걸어온 길이 벼랑 끝을 향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언니 혼자 조용히 그 길을 걸었던 것이다. 


동기들 중 선뜻 공간을 내어주겠다고 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사정은 나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미 풀하우스였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공간이 있었어도 고민했을 것 같다. 아픈 사람을 곁에 두려면 내가 단단해야 하는데 물리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여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주지 못한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낼 곳을 찾지 못하면 동기들끼리 셰어 하우스나 게스트하우스 숙박비를 모아주자는 이야기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찝찝한 마음에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동기는 지금 벼랑 끝에 몰려서 떨어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씀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줘서 미움을 사고 있었다. 관종이라며 SNS 팔로우를 끊은 동기들도 있었다. 쉽사리 도움을 얻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편히 잘 곳이 없다는 상황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작년 6개월간 노르웨이에서 교환 학기가 끝난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돌아갈 집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어떻게든 외국에 있으려고 비자 신청을 하고 승인이 나기 전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이층 버스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창문에 비친 내 얼굴과 어두컴컴한 도로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바로 그곳이 집이다.’ 지금처럼 도로 위던, 버스 안이던,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이던, 잠시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던 친구 집이던 상관없었다. 그곳에 내가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바로 그곳이 나의 집이었다. 


그 이후로 집이 없다는 생각은 다시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집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마음이 쉴 집이든 몸이 쉴 집이든 편히 머물 곳이 없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자신의 집을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동기가 집을 찾기 전까지 내게 그 동기를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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