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즈너 테크닉_ 노필터 수업일지_ 13회 차
09.07(수) 13회
- 대사를 좀 더 외웠어야 했다. 나태함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태함은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성공을 원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뒤로 미뤄두는 것은 완성을 유보한다. 완성되기 준비되기 싫어한다. 왜? 잘될까 봐 무섭다. 아니면 최선을 다했는데도 초라할까 봐 두려운 걸까. 자신이 없기 때문인가.
- <관계 2> 동균, 정윤. 정윤의 외도에 대한 합당한 이유는 찾았는데 동균에 대한 태도와 내 상상 속 인물인 작고 탄탄한 여성에 대한 감정이 옅어서 아쉬웠다.
- 실제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들어왔다면 내 심장은 떨어졌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눈이 벌게져서 들어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잡쳤을 텐데.
- 동균 오빠의 눈을 보았는데 벌써 식은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동균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 여자를 더 사랑했다. 동균은 우리 엄마가 될 수 없다. 그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내가 더 극적인 연기를 하고 싶었다면 동균네 대한 감정을 우리 엄마에 대한 혹은 아빠에 대한 감정으로 가져왔어야 할까. 그간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에 대한 감정을 가져오는 게 맞을까.
극적인 연기란 무엇인가? 더 극적인 연기를 하고 싶다. 왜? 강렬하게 각인되기 위해? 강렬한 감정을 느껴야만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고 느끼나? 그건 더 어려우니까 실력을 그렇게 인정받고 싶은 건가? 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진심을 느끼고 싶은 데서 오는 갈증.
진심은 어디에서 포착되는가? 내 진심은 뭘까. 나는 내 진심을 평소에 잘 느끼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을 잘 알고 있는가 내 행동과 그 의도를 다 알고 있는가 그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PC 때문에 보편적인 시선 또한 모른 체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레퓨티션때 상대방의 진심을 읽어야 하는지 상대방의 의도를 읽어야 하는지?
의도를 읽는 것 또한 예의 있는 배려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언제나 그 껍질아래를 읽을 수는 없겠지만 상대방의 진짜 변화를 매 순간 알아차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연기할 때 그게 어떻게 도움 될까. 배우는 의도를 가지고 캐릭터의 행동을 해낸다. 이때 캐릭터의 행동을 읽어야지 배우의 의도를 읽어내면 안 될 텐데.
예를 들어서 상대방이 나에게 떡볶이를 조심스레 건넨다고 해보자. 봄과 동시에 나는 배우로서 그 사람이 조심스럽게 보이려고 행동하는 의도를 캐릭터로서 나를 걱정하며 조심스레 건네는 모습을 볼 것이다. 배우를 본다면 나는 그가 걱정하는 척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캐릭터를 본다면 그가 조심하는 게 고마울 수도 있고 짜증 날 수 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때 무엇을 믿어야 할까. 정답은 인물. 나도 인물이고 상대방도 인물로서 우리는 약속하고 만난다. 그것
을 힘껏 믿고 설령 그가 인물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여전히 인물로서 보도록 굳게 믿고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배우로서 배우를 보는 눈은 언제나 함께 한다. 분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레퓨티션때는 인간대 인간이 아니라 무대에 오른 리허설 하는 배우대 배우로 보아야 한다. 인간의 의도가 아니라 배우의 표현을 읽어야 한다. 맞나..?
예를 들어 이 사람이 머쓱한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소리를 버럭 지를 때 이 사람은 첫째 배우로서 의도를 가지고 편안하게 드러내면서 버럭 할 수도 있고 진심으로 머쓱한데 감정을 숨기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인간으로서 머쓱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
- 머쓱한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머쓱한 것을 숨겨서 포커페이스를 한다.
- 머쓱한 것을 티를 내면서 다른 감정으로 치환시킨다.
- 머쓱한 것을 티안내면서 다른 감정으로 치환시킨다.
배우로서 머쓱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것
- 머쓱한 것을 다른 것으로 드러낸다.
- 머쓱한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나저러나 머쓱하긴 매한가지다. 이때 상대 배우가 너 머쓱해.라고 하면
1. 머쓱한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 응 머쓱해 헤헤
2. 버럭 했다면 -1) 너 머쓱해 : 헷 나 머쓱해/ 아니 머쓱하지 않아 2) 너 버럭해 :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응 나 버럭해/ 머쓱하게 응 나 버럭해 / 아니 머쓱하지 않아
감정을 가진 게 죄는 아니잖아. 그런 감정이 드는데 내 인성 탓을 너무 해서도 안되지 않을까. 그 감정을 네가 매번 판단한다면 네가 너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네가 너를 너무 몰라주는 거 아닐까. 상대방을 룸메로 바라보는 것과 그냥 인간 현주로 바라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그 경계심/ 방어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될까. 걱정되냐는 선생님의 말씀은 어떤 면을 보고 나온 것일까.
길훈 오빠/ 현주랑 했던 연습을 녹음해 둔 파일이 있다. 괴롭지만 오늘 강남 가는 길에 들어보기로 한다.
무대에서는 체념하지 않는다. 힘 빼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Presentation
현주는 길훈오빠에게 기대감이 없었다. 분명 세상을 살면서 배우 것 중 하나가 기대하지 않는 것인데,
무대에서는 반대다.
내 관점은 내 것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도 이해받으려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다른 것이다. 옳고 그름도 없다. 나에게 옳고 그름이 있을 뿐
이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대다수의 옳고 그름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절대적 선은 아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아무리 먼 사이라도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게 살면서 배운 것이다. 그냥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것이 관계에
이롭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기대하지 않는 행위는 어떤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를 기대하지 않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표현하거나 대화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건가.. 우리는 사랑을 잘못 배웠다. 나는 원하는 대로 표현하고, 그에게 바라지 않는다. 미래를 그리지도 않는다. 이건 뭐 거의 깨닫거나 크게 상처받은 사람 아닌가. 아 그러니까 상처받고 깨달은 사람 어쩌면 우리는 상처받지 않고도 깨닫지 않고도 그냥 그 가이드라인을 따라 안전하게..
샌포드 마이즈너 수업 때는 무대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지 않는다. 끝없이 기대한다. 실제 삶과 다른 부분이다. 무대는 가상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현실. 없는 기대도 품고 내 환상과 상상을 마음껏 투영할 수 있는 순간. 무대 위에서는 나를 재단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기대를 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맨 처음 수업 때 무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혐오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미움이 올 나왔다. 물론 머리는 안다. 우리 모두 지금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잘못도 실수도 아니고 그냥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곧이어 내가 무대로 나가야 했다. 나는 너무 두려웠다. 내가 느낀 혐오감만큼 그들도 무언가 느낄 테니까.
판단당할 테니까.
상관없어하면 되는데 상관없지가 않았다. 나는 피해의식으로 가득했다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애썼다. 개방하려고 하는 용기와 보호하려는 의지가 충돌했다. 무엇을 개방하고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용기는 너를 그냥 개방하라고, 큰일 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보호하려는 애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그들을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믿지도 소중하지도 않았다. 가치 없고 가능성 없는 상처받고 발버둥 치고 애쓰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그렇기 때문에 그 모습을 그들에게서 본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미움이 올라와서
사람의 눈을 보고 있는 게 싫었다.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온통 미움뿐이라 그게 드러나는 게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나라는 사람은 사람에게 느끼는 게 미움뿐이라서 한 공간에 있는 그들에게 미안해서 나를 숨기고 싶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대에서 와 실생활에서와
무대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무대는 무대고 인생은 인생이다.
인생의 매 순간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하면 무대에서도 매 순간 충실하는 힘이 세진다. 그렇지만 인생의 매 순간 충실하지 못한다고 해서 무대에서도 충실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대는 무대다. 무대에서 내가 어떤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 나는 방향설정을 해야
한다. 관계를 맺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 선택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욕망을 흉내 낼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안에 있는 욕망과 진실을 평소에도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된다. 내 진실. 아플 때 하는 자아성찰 말고 내 진실.
- 번외.
- 나는 왜 남자들에게 마음을 닫게 되었을까. 그들이 싫을까 그들을 사랑하면서도 싫어할까 비단 이것은 나만 가지고 있는 마음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면서도 내가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는 것 인정하고 있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자를 원하면서 싫어하고 내 맘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 나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고 있는가 남자와 화합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나는 정말 여성을 사랑할 수 있는가. 여성을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나는 남성보다 여성옆에 있을 때 더 행복할 것인가. 나는 꼭 남자 한 명과만 만나야 하는가. 그것은 왜 어려운가.
방어적이라는 것 - 기대감이 없는 것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방어는 기대하면서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많이 경험하다 보니까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쌓은 벽이다. 실제로 그런가? Yes. 나는 더 이상 내 환상 나의 바람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것을 싫어
한다. 덜 자란 유아적 환상이라 치부한다. 불가능하다 외친다. 진짜로 불가능한지는 모르겠다. 다들 그런다. 내 삶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불가능할 것 같다. 실제로 근데 나는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것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대한 불신, 어차피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은 반영되지 않는다. 바라는 게 좌절된다. 수없이 바라고 접었던 마음 선을 그어놓고 뛰어들지 않고 엮이지 않은 마음을 들여다본다. 내가 주장할 수 없는 답답한 좌절스러운 해결할 수 없는 원래 그런것인. 두려움이 나를 이기적으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이중적인 정윤은 나의 모습은 아닐는지. 인물과는 어떤 거리를 가져야 할까. 세상 모든 것과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인물을 연기할 때 인물과 어떤 거리를 가져야 할까. 불완전함 앞에 담담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있는가? 변명하는 게 아니라 보호말이다.
보호는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