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도 못살면서 1000년의 근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는데 너무 지나친 근심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행동에 제한을 두어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
살면서 우리는 하지 말라고 교육받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선입견이 되어 버린 많은 것들 때문에 스스로를 제한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어린 시절 어떤 트라우마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부모님들에게서 지속적으로 받은 교육의 영향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어찌 되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프레임 안에서 스스로가 정도라고 생각되는 틀 안에서 살면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나 역시 그런 것만이 모범생의 길이라 생각하고 지난 40년 인생을 살았다.
물론 사이사이 일탈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사회적 룰에 어긋나는 일을 대놓고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토바이를 타기 전까지…
사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룰에 어긋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내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바이크를 탄다고 커밍아웃을 하면 100명 중 95명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내 부인을 정신 나간 여자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큰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오토바이는 위험한 물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죽음 혹은 영구적인 장애를 반듯이 갖게 된다는 선입견이 마치 정설처럼 널리 퍼져있으며, 그러한 정설에는 본인들의 경험이 상당 부분 작용을 했는데, 왜 그렇게도 주변에는 오토바이 타다가 유명을 달리하셨거나 크게 다치신 분들이 집집마다 있는지, 학창 시절 친구들 중에 한두 명은 꼭 자기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선입견과는 별개로, 영화 비트에서 배우 정우성 씨가 터널에서 바이크를 주행하는 장면을 보았거나, 탑건에서 탐 크루즈가 활주로에서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 터미네이터의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바이크를 마치 거대한 적토마처럼 몰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물론 대부분은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잠시 괴로워하다 지나가버리는 그런 로망이겠지만...
나에게도 이러한 로망은 유년시절 이후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다. 다만, 앞서 언급한 1000년 근심을 갖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항상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는 꿈이었고, 가끔은 오락실에서 게임으로나 즐기는 일탈 정도로 위안 삼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한참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던 시절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며 살아야겠다는 소박한 마음에 충실하고자, 34살에 우리나라에서 사법고시 다음으로 어렵다는 오토바이 면허를 땄고, 잠시나마 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리나라 면허 시스템이라는 것이 그리 친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면허를 받았다고 해서 당장 오토바이를 탈 수 있을 정도의 스킬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고, 본능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도로에 나가면 난 요단강을 건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접었어야 했다. (당시 나는 오토바이 1단 기어를 2단으로 바꾸는 법조차 배우지 못하고 면허를 땄다)
면허를 땄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써먹지도 못하고, 내가 꿈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에서 사라져 갈 무렵 (그렇게 얼추 6년의 세월이 흘러갔던 거 같다). 우연히 후배와 술을 먹다가 서로의 버킷 리스트를 이야기하게 되었고 무의식 중에 바이크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내 후배는 하필 그 타이밍에 여러 대의 바이크를 갖고 있고 그중 하나를 처분하려고 하는 친구를 나에게 소개하였으며, 그 후배가 나에게 바이크 연수를 해준다는 조건으로 난 그 바이크를 인수하게 되었다.
아마 헬멧까지 포함해서 150만 원 정도 지불한 것 같다.
나의 1호 바이크 스즈키 GN 125
그렇게 해서 하게 된 1일간의 도로연수, 나를 연수시킨 후배는 오랜 시간 바이크를 탄 친구는 아니었지만 바이크 주행의 필요한 여러 정석을 나에게 알려주었고,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구여서 바이크에 필요한 여러 안전규칙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예를 들어, 복장, 주행 시 방어운전 등)
어쨌든 그때는 난 몰랐다. 공사장 인근 공터에서의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받은 1일간의 야매 연수가 내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줄 말이다.
내가 인수한 바이크는 스즈키 사의 gn125라는 125cc 원동기였는데, 처음 탈 때는 왜 그렇게 무섭던지, 엄청나게 큰 말을 다루는 느낌처럼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당연히 1일의 연수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난 매뉴얼 바이크의 기어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시점 이후로 2달간의 셀프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 주었다
나의 셀프 트레이닝은 내가 사는 아파트를 가운데 두고 큰길에서 우회전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우회전만 했다는 의미는 내가 도로의 최외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차선을 한 번도 바꾸지 못하고 주행했다는 의미다. 우회전 밖에 못하는 실력이지만, 매주 도로연수를 통해 조금씩 바이크 타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게 되었고 서서히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시속 50~60km/h의 속도도 너무 빠르게 느껴졌고, 매번 나를 추월해 가는 배달 아저씨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처럼 멋지게 바람을 가르는 라이더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거렸으며, 하다 못해 정말 더 싸 보이는 배달 오토바이조차 추월할 수 없는 나를 보며 자괴감에도 빠졌지만 바이크를 탄다는 즐거움에 그 시간은 이 무미건조하고 말라비틀어진 내 마음에 단비처럼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주행에 자신감이 생겨 교외까지 타고 나갔을때 찍은 사진
어쨌든 난 조금씩 성장했고, 당시 내가 구입한 바이크의 최고속도인 80km/h까지 달성 가능한 수준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