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라는 접두사

by 김종열

반려견과의 산책을 준비한다. 목줄을 하고, 배변 봉투를 챙긴 다음 집을 나선다. 바깥바람이 좋은 건 사람이나 개나 똑같은 모양이다. 불어오는 바람을 깊이 들이마시기도 하고, 길가의 풀 냄새를 맡기도 한다. 모든 강아지가 전봇대를 좋아하는지 전봇대만 보면 냄새를 맡고 마킹을 하느라 길을 멈춘다. 그러다가 갈림길을 만난다. 내가 가고 싶은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 그런데, 어라! 이 녀석 따라오질 않는다. 목줄을 당겨보지만, 네발에 힘을 주고 서서 버틴다. 그리곤 다른 방향의 길을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한다. 저 길로 가고 싶다는 거다. 몇 번의 목줄 당김과 회유 끝에 마지못해 발길을 이쪽으로 돌린다. 강아지도 고집이라는 게 있다. 개고집이라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오늘따라 이 녀석은 소파 위에 자리를 잡고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기를 안고 가자는 거다. 일부러 내버려 둔다. ‘제가 안 오고 배겨’ 그런 마음이다. 그러다 잠이 든다. 잠결에 요의 때문에 화장실로 향한다. 돌아 나오는 길에 소파 위에서 버티고 있는 녀석을 발견한다.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거다. 개존심이라는.


신문을 펼치고 있는 내 곁에 강아지가 엎드려 있다. 눈길이 자기를 향하지 않고 신문을 향하고 있으니 심심해지나 보다. 방 안에 있는 아내에게로 가고 싶은 눈치이다. 나를 슬쩍 한 번 쳐다본다. 완전히 엎드린 자세에서 고개를 살짝 드는 자세로 바꾼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다. 슬그머니 일어선다. 다시 한번 나를 본다. 슬금슬금 걸어가더니 물 한 모금을 마신다. 마지막으로 흘깃 시선을 한 번 보낸다. 그리곤 득달같이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강아지도 눈치는 있다. 개눈치라는.


강아지는 사람의 서열을 귀신같이 안단다. 설마 그러랴 싶은데, 설마 그렇다. 아내와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어록 소리에 벌써 현관문 앞에 나와 있다. 폴짝폴짝 뛰고, 앞다리로 긁으면서 격하게 반가움을 표현한다. 아내에게만.

나는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안되어 보이는지 “할배에게도 가봐라.”라고 코치한다. 내게로 방향을 돌리고 두어 발짝 걸어오다 홱 돌려 가버린다.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 내게 보내던 반가움이, 아내와 같이 돌아올 땐 온전히 아내 차지가 되어버린다. 이거 무시당하는 거? 개무시라는 거.


강아지가 하는 행동 앞에는 ‘개’라는 접두사를 붙인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일에도 ‘개’라는 접두사가 꽤 많이 등장하고, 불행히도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이런 거다.


파크골프를 한다. 거리를 가늠하고 스윙한다. 조금 세게 쳤나? OB가 나버린다. 벌타를 받고 다음 샷을 한다. 깃대를 향해 똑바로 굴러가던 공이 어라!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간다. 꽤 먼 거리인데도 말이다. OB를 내고도 보기로 잘 막았다. 그때 옆에 있는 분이 “개버디 했네.”라고 말한다. 벌타를 빼면 버디인데, 벌타가 있으니 개버디란다. 좋은 의미의 단어가 ‘개’라는 접두사를 만나 한순간에 부정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부정적인 접두사의 예는 많다. 이도 저도 아닌 꿈을 개꿈이라 하고, 진짜 민망한 일을 당했을 때 개망신이라 하며, 정말 나쁜 사람을 개망나니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하는 말을 개소리라 하고, 나쁜 의도로 뭔가를 도모하면 개수작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욕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접두사가 ‘개’이다. 개××, 개만도 못한 ×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변한 걸까? 아니면 반려견 천만 시대여서 그런가? 접두사 ‘개’가 언제부터인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개 예쁘다.’ ‘개 멋있다.’ ‘개 맛있다.’ ‘개 웃겨’ ‘개 좋아’ 등으로.

접두사 ‘개’가 강조의 뜻과 긍정적인 의미의 가지게 된 것이다. 이거 애견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뻐해야 할 일인 건가?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일 것이다.’라는 말이 슬그머니, 그리고 새삼스레 떠오른다. 이거 개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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