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며칠을 갈팡질팡 했다. 당구공은 반질반질하지만 내가 빗대어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닥 반딱반딱하지 않아서 글이 쉬이 나아가질 못했다. 그냥 당구 이야기는 미루고 방향을 확 바꾸기로 했다. 12월도 되고 했으니 한 해를 정리해 볼까나. 1년 소회록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처음엔 별 의미 없는 작업이었지만 그래도 써놓고 보니 시간을 되짚는 맛들이 꽤 컸다. 발단은 업무수첩의 맨 첫 장에서 시작됐다. 2022년도에 웬일로 업무수첩에 그 해의 목표를 적어놨나 본데 연말에 가서 그것이 달성되었음을 깨닫게 됐다. 뭐든 애달퍼지는 송년에 그런 자각들은 꽤 근사한 고양감을 줬다. 그냥 출근해서 먼지처럼 부유하는 줄 알았더니 용케 뭐라도 건진 게 있었어. 나는 시간으로부터 추출된 전리품들의 향기를 맡으며 삶이 계속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했다. 그 안티에이징한 만족감이 좋아서 그때 이후론 웬만하면 연례행사처럼 1년 소회록을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는 이런 걸 적어놨더라.
· 미래정책 팀장 발령
· 사무실 정리 및 집기 정비
· 간단한 업무파악
딱할 정도로 심심해 보이지만 올해는 겸연쩍게 새 해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만 나돌다 무려 2년 만에 본청에 복귀한 해 아닌가. 서울 대기업 다니던 김낙수 부장은 실패했지만 난 아니다. 살짝 주눅 들 긴 했지만 난 저 필체들에서 약간의 결기와 다짐들을 봤다. 그게 어여쁘다. 글의 제목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2017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한림원에 보내는 강연 서신 <나의 20세기 저녁 그리고 몇 가지 작은 특이점들>에서 영감을 따왔다. 그러니까 나의 2025년도의 특이점은 이시구로의 다음과 같은 고민에서 잉태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여기 이곳에, 60세가 된 제가 있습니다. 저는 제 눈을 비비고 서서 바로 어제까지도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이 모든 것들의 윤곽선을 알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안갯속에서 말입니다. 지적으로 소진되어 버린 세대에 속한, 지쳐버린 일개 작가에 불과한 제가, 이 낯선 지역을 탐사할 에너지를 낼 수 있을까요? 사회가 이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새여 나는 여러 논쟁과 전투, 전쟁들에 대해 저라는 개인이 유의미한 관점을 제공하고 감성적인 무언가를 덧대 나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나는 이시구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시구로의 이러한 고민에는 백퍼 공감한다. 2025년이 딱 그런 한 해였으니까. AI, 환율, 관세, 금리, 인플레이션, 토지거래허가, 디지털화폐, 엔케리, 스테이블코인, 양자역학, QQQ 정말 어디 하나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개념은커녕 흐름을 좇을 수조차 없는 단어들이 세상에 넘쳐흘렀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은 포비아(Phobia)에 휩싸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헐떡거리다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보였다. 속도가 벅차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뉴스에서는 양극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안갯속에 헤매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처음 발령받은 업무의 흐릿한 윤곽선을 더듬느라 애를 먹었다. 미천한 업무요량을 가지고 회의 자리에 앉는 것은 늘 곤욕이었다. 속으론 마른 땀을 뻘뻘 흘렸다. 낮은 해상도를 가지고 두리뭉실하게 에두르며 나의 무지를 감추기 바빴다. 2년 정도는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일상의 사소한 결재, 근태, 지출시스템들도 모두 바뀌어 있었다. 옛 기억들을 되짚으며 눈치껏 때려 맞추다 가끔 '얘 이거 왜 이러냐'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고 보니 청내엔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들이 더 많아진 듯했다. 조금만 적응하면 금방 롤백(Rollback)될 줄 알았더니 그건 내 착각이고 아예 버전 호환이 안돼 삐걱되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렇게 퇴보할 수 있나. 나는 점점 더 옹색해져 내 책상, 내 의자 위로만 고립되어 갔다. 가끔 옆 사무실에서 넘어와 남의 냉장고를 뒤지며 여긴 당최 뭐 먹을 게 없다며 너스레를 떨던 홍팀장이 부러웠다.
우리 팀은 미래정책팀(Future Polycy)이라 불렸지만 미래는 캄캄해 보였다. 내가 맡은 개발사업은 점점 입지가 작아지더니 어느새 내 가슴처럼 새똥만 해졌다. 도시개발사업이 지구단위로, 지구단위에서 그냥 개발행위 규모로 대폭 축소됐다. 가난한 우리 기관은 우리 팀에 예산을 내릴 형편이 못됐고, 시행자와 수익분석란이 빈 사업계획을 가지고 상위기관을 노크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자조와 설움이 배어 나왔다. 이러다간 정말 뉴스처럼 내가 사는 곳은 소멸되겠다 싶었다. 될 대로 되라지.
처음부터 안될 일을 가지고 굴렀더니 한 두 번 사업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대신 시간이 널널해졌다. 다들 바쁜 사무실에서 나만 NPC(Non-Player-Character)가 된 것 같아 눈치가 보였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자위했다. 필요 없으면 니들이 팀을 없앴겠지. 나는 눈치껏 포털 커뮤니티나 들락거리며 하루를 소일했다. 출근해서 화장실 가는 거 빼고,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을 내려가는 것 말고는 치과의사처럼 하루 종일 1평 남짓의 책상에서 은둔했다. 전문직 종사자마냥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책상 옆에서 맨손 데드리프트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한시도 무료한 적은 없었다. 포털엔 배워야 할 것들로 넘쳐났다. 투자와 재테크, 아파트와 주식, 국제금리와 환율, 하이퍼 인플레이션시대 헷지용 자산전략 등이 현장의 언어로 생생했다. 법제 사이트에서 맨날 국계법이나 도시개발법 따위를 띄워놓고 법령과 시행령 사이의 3단 비교나 일삼던 내 업무와는 아예 인사이트가 달랐다. 갑자기 내가 딴 세상에 살고 있나 라는 착각이 들었다. 큰 줄기를 요약하면 우리나라 모든 부의 투자 원점은 누가 뭐래도 서울 강남이고, 강남에 모든 기간인프라가 몰빵 되어 경부라인을 타고 지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빙하가 녹듯 앞으론 지방부터 서서히 죽어나갈 것이며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지역 또한 역시 서울이 마지막이 될 거란 얘기였다. 뻔한 얘기였지만 서울 아파트 얘기에는 나도 호기심이 갔다. 누가 지방은 고만고만하지만 서울은 전국구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에 혹 했다. 뭔 소리야. 서울 아파트는 서울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거 아니었어.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곧 다들 돈 싸 들고 서울로 올라가지 못해 안달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연일 터지는 아파트 거래 신고가와 그걸 부러워하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갈아타기 노하우를 묻는 문답들로 온통 범벅이었다. 같은 서울이면서도 한강벨트와 CBD니 GBD니 YBD니 3대 업무지구를 중심으로 피라미드형 급지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고, 거기에 맞춰 상대 급지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글들이 난무했다. 미친놈들인가. 저 사는 곳의 급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면 온 우주의 중심을 다 끌어올 기세였다.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거기다 침을 뱉을 수는 없었다. 모르면 몰랐을까 알았다면 나도 벌써 그 욕망에 올라탔을 테니. 이래서 다들 똘똘한 1채, 똘똘한 1채 노래를 부르는구나. 그제야 나완 전혀 상관없던 토허재나 대출 제한들이 왜 그리 사람들을 낙담시키는지 멀리서나마 시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댓글에서 한 두 달 파묻혀 지냈더니 내가 사는 지방은 시시해 보였다. 이러니 우리 개발 사업이 잘 될 리가 있나. 죽어가는 자식 불알 잡는 꼴도 아니고 나는 내 1년이 왜 이리 시무룩한지 그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부동산만 그랬을까. 국제질서를 보자. 행정가적 입장에서 보자면 트럼프는 불굴의 행동가다. 위기에 대응해 극단적인 결정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레이트한 미국을 위해서라면 지구촌 욕을 다 처먹을지언정 관세 부과에 망설임이 없다. 미국채 인기가 시들해지고, 거기다 퍼부을 이자가 국방비보다 높아지자, 디지털 화폐에 달러를 연동시키는 지니어스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달러 패권 유지와 늘어난 국가부채를 교묘히 녹이려 통화주조권 속 예대마진을 두고 연준과 빅테크 간 제로섬 게임을 붙이는가 하면, 어제는 파월의장의 멱살을 잡다가 무대를 옮겨선 오늘은 사람 좋은 꾸러기 표정을 하고 상대국 정상에 리스펙을 날리는 반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약달러 기조를 은근히 즐기며 전통적 교역의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고, 양적완화에 금리가 내릴지 말지 온 세계의 애를 바짝 태우고 있다. 쥐락펴락 미국은 늘 바쁘다. 이시구로가 스위스 한림원에 노벨 감사 서신을 보낼 때만 해도 이런 세상이 올 줄은 예측하지 못했겠지. 그때의 죽는 소리에 비한다면 지금은 아비규한이다. 이 가련한 세계를 위해, 이 거대한 변화의 여러 논쟁과 전투, 전쟁들에 대해 전통적 시각으로 유의미한 관점을 제공하고 감성적인 무언가를 덧대 나가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적어도 트럼프 같은 인간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겠지.
나는 예전부터 직관론자임을 자처해 왔지만 올해만큼은 경험주의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괜히 짬부심이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유튜브를 통해 확인했다. 책 속의 이론보다 밖에 나가 실제 등기 한 번 쳐보는 것이 훨씬 더 우위에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올 한 해 내가 사무실에서 딴청을 피우지 않았더라도 내가 맡은 개발사업은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을 거다. 그건 물론 가슴 아픈 일이지만 덕분에 나는 쥐구멍을 파다 실물시대의 도래라는 엄혹한 현실의 이치를 깨쳤다. 더 이상 적금이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을 줬다. 이건 간단한 문장이지만 이 문장의 진짜 의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이시구로 선생께서 안갯속에서 던진 질문은 지극히 인류애적이지만 그도 노벨상금을 타지 않았다면 지금쯤 속수무책 인플레이션에 녹아내리고 계셨을 거다. 모두의 건투를 빈다.
Adios Amigo!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