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Apr 26. 2017

당신의 파스타, 당신의 처음

오랜만에 소개팅을 했다

(이 글은 실제 소개팅 경험담이 아닙니다. 창작입니다)


오랜만에 소개팅을 했다.


사람들이 많은 신촌 거리의 파스타 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전 날 밤, 팩을 하고

예쁜 옷을 골라 다림질을 해두었다.


그리고 오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게 준비를 했다.


향수 하나부터 피부톤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

최대한 꾸몄다.


화장에 맞게 머리를 고데기로 말고 손톱까지 다듬고 나서야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처음을 공유하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살면서 몇 번의 처음을 공유해왔지만,

누군가에게 내 첫 순간을 보여주는 일은 여전히

설레는 일이었다.  


당신은 크림 파스타를 시켰고,

파스타를 돌돌 말아 숟가락 위에 얹어 먹었다.


나는 당신의 시선이 포크에 머물러 천천히 파스타를

마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나에게 취미는 뭔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물었다.


나는 조금은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질문들에 우리의 만남도

틀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한 두 번쯤은 이런 만남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제를 전환하여 좀 더 재미있는 질문들을 던졌다.


피자를 먹을 때 피클을 먹는 편인지,

노래는 콘서트 장에서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듣는 걸 좋아하는지.


당신은 말할 때마다 입가에 보조개가 들어갔고

나는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당신이 하는 말보다는

당신의 보조개와 손가락에 관심이 쏠렸다.


보조개가 들어가는 정도가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아 적당해 보였다.


파스타를 말아먹는 속도도 일정하고 괜찮았다.


그 속도에 맞춰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의 처음을 마주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쿵쿵 뛰었다.


이성과 단 둘이 밥을 먹는 것이

처음인 마냥

말할 때마다 수줍게 들어가는 당신의 보조개를 볼 때마다

어찌할 줄 몰랐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조개를 보고 싶어 졌다.


어떨 때

움푹 들어가는지,

어떨 때

다시 나오는지.


첫 만남, 좋은 것들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 잘 입지 않는 원피스를 입고

손톱까지 정리해서였을까.


문득 당신이 보는 내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어 졌다.


당신은

커피잔을 잡을 때

새끼손가락 끝을 살짝 들어 올렸고

나는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어린 소녀들이 발레를 할 때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린 것처럼 귀여워 보였다.


언제부터 컵을 잡을 때 손가락을 올리셨어요?


당신은 내 질문이

의외의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조금 놀라 보였다.


그러더니 보조개가 살짝 파이도록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당신의 처음을 이야기해줬다.


음 아마도 유치원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씽씽카를 타다 새끼손가락이 부러졌었는데 그 탓에 처음으로 깁스를 했었어요.

어린 나이라 그게 무서웠나 봐요.

그래서 깁스를 풀고 난 후에도 새끼손가락에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물을 마실 때도 새끼손가락은 굽히지 않고 핀 채로 생활하다

한참 지난 후부터는 그게 습관이 되니까 오히려 손가락 하나를 들고 컵을 잡는 게

더 편해졌어요.


귀여워 보이던 당신의 행동에 관한 질문 한 번으로

당신의 첫 깁스, 첫 습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조곤조곤 설명하는 당신의 말들에 또 한 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아픔이 지금의 매력을 가져다준 거네요.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말이 뱉어졌다.


당신도 부끄러운 듯 코를 찡그리며 웃었다.


당신을 오늘 처음 만났지만

마치 여러 번 만났던 사이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당신의 냄새.

분위기.

말들 모두.  


지금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몇 번의 처음을 공유해왔다.

그중 누군가와는 사랑을 했었고

누군가와는 좋은 친구로 지내고

또 누군가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새로운 모임을 가도

처음 알게 되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와는 친한 친구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와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사이가 되는 것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관계가 있고

관계의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기에 조금 겁이 났다.


생각해보니 지나온 많은 관계들이 첫 순간에 설렜었구나.

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젠가 당신과의 첫 순간도, 설렘도, 감정도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흩날리듯

흩어져버리게 될까 무서워졌다.



당신과의 첫 여운은 좀 더 오래 남기고 싶었다.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고,

말할 때마다 보조개가 파이고

물을 마실 때면 손가락 끝을 올리는 당신의 순간들이

이 관계에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했다.


쉽게 흩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렀으면 했다.


오늘의 감성을,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당신은 나에게

이번 주말엔 영화를 보자고 했다.


나는 너무 좋은 감정을 티 내지 않으려

그래요,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라는 대답과

그래요, 라는 대답 사이.


아직은 그래요, 가 적당할 것 같았다.


이러다 지나간 사랑들이 모두

새로운 당신에 덮여 잊히진 않을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누군가와 처음을 공유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다 사랑이 깊어질 즈음

천천히 식어가고 사랑이 떠나고 그리움이 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자연스러워질 즈음

또 다른 누군가와 처음을 공유하고

그가 마치 첫 사람인 것처럼

설레고 두근대는 시간이 반복된다.


사랑은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도 참 아이러니하다.


사랑이 가면,

또 다른 처음이 찾아오고

처음이 지나면 끝이 되기도 한다.


나는 당신과의 만남은

중간보다 처음을 더 오래 기억하는 여운이 깃들기를 바랐다.


신기하게도

없으면 안 될 것 같던

사랑이 가도

새로운 사랑이 온다.


다시는 설레지 않을 것 같다가도

또다시 설레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모든 관계의 처음은

궁금하다.


새하얀 도화지는

어떤 색으로 채워질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생각만으로도 기대되고 설레게 한다.

붓을 들고 팔레트를 바라보는 내내.


새로운 관계는 늘 그런 여백이 있고, 설렘이 있다.


관계의 처음은

부드러운 크림 파스타처럼

천천히 마음을 설레게 하고, 마비시키기도 한다.


천천히 돌돌 말아 입에 넣으면

소스의 풍미가 입 안 가득 채워지는 파스타처럼.


첫 만남은 늘 마법 같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움직임.

그리고 천천히 풍겨지는 당신의 향.


헤어지고 삼십 분이 지났을 무렵,


잘 도착했어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


당신에게 연락이 왔다.

당신과의 첫 만남 이후 받은 첫 연락이었다.



아직도 곁에

오늘 머물렀던 카페의 향이

머물러 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고

향을 뿌렸던 오늘의 당신이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늘 오늘의 소중함과 떨림을 간직한 채  

조심스럽게 대하는 관계로 남았으면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때 당신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

좋은 당신만 기억하려 애썼었지.

가만히 있어도 자연스럽게 파이는 당신의 보조개가 좋았어.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당신은 사랑스럽고

때론 설렜던 그때 순간들이 떠올라.


그럼 나는 생각하지.

아, 당신은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때 그렇게 간절하게 생각했던 사람이구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람이었구나, 하고.


어쩌지? 지금은 당신의 단점들도 모두 사랑스러운걸.

당신의 실수, 허점들도

그때의 보조개만큼이나 귀여워.


또 다시 새로운 관계가 다가왔다.

한 번 뿐이었던 만남이 더 없이 소중해졌다.


앞으로의 당신이, 시간이

기다려지는 간절한 관계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계의 우선순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