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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Oct 13. 2017

그 남자의 거짓말

네가 오해할까 봐 그랬어


집이라던 그였다.

분명 회식이 끝나고 집에 왔다던 그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벽 3시에 아는 형과 2차를 갔었다.

그가 2차로 어디를 갔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는 형과 만나기로 했다고 해도 되었을 것을 왜 거짓말을 한 건지 궁금했다.


왜 거짓말을 했냐는 나의 물음에

내가 오해할까 봐 그랬다고 답했다.


오해할까 봐 거짓말을 했다.

내겐 그다지 좋은 핑계로 들리지 않았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의 좋은 모습들은 모두 꾸며진 게 아니었을까.

좋지 않은 모습들, 오해할 것 같은 모습들은 모두 숨겨둔 채 좋은 모습들만 억지로 끌어내어 포장했을 그의 행동들이 생각났다.



"오해할만한 행동이 뭔데?"


"아니 세시에 술 마시러 간다고 하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는 말끝을 흐렸다.


"오해할만한 행동이 있으니까 오해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진짜 그 형이랑 둘이서만 먹었어. 여자는 없었어."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하며 그는 횡설수설 자꾸 부연했다.

"아니 그 형이 갑자기, 언제 연락이 온 거냐면, 아니 거기를 왜 갔냐면."


어울리지 않는 낱말들이 붙어 말을 어지럽혔다.


대학원생 동기 모임에 간다더니 알고 보니 살사댄스 모임을 갔던 그에게

왜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네가 오해할까 봐 그랬지."


역시나 또 뻔하고 의미 없는 대답을 했다.


대체 내가 오해할만한 상황은 뭘까?


오빠의 과거 사진이 궁금한데 갤러리를 봐도 되냐는 내 말에 그는 핸드폰에 아무것도 없다며 당황했다.

한참 서로의 여권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그는 과민 반응을 하더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속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속이던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속아주면 얼마나 바보가 되겠어?

핸드폰 못 보면 난 오빠 못 만나. 그런 줄 알아."


나는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럼 같이 보자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나 진짜 핸드폰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 굳이 볼 필요가 없다니까? 아니 뭘 저장을 안 해둬서. 같이 봐. 같이 봐."


그는 폰을 내게 주더니 내쪽으로 몸을 당겼다.

자꾸 내게 밀착하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그가 폰을 숨긴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숨길 게 많았다.

폰에서 나는 그의 수많은 거짓말을 만났다.


어쩜. 이것까지도 거짓말이었구나.


소름 끼쳤다.


내게 보고 싶다, 사랑한다, 너밖에 없다고 했던 말들은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그의 진심은 본래 이렇게 가벼운 걸까.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의 밥을 먹는다, 잠을 잔다는 일상적인 말들도 이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수많은 핑계를 대며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걸 마주한 이상 그를 더 믿을 자신이 없었다.


밥 먹는다는 말은 정말 밥을 먹을 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는다는 말을 다른 행동을 할 때, 그래서 연락을 할 수 없을 때 대체용으로 쓰면 밥의 의미가 흐려지니까.


샤워해야 한다, 밥 먹어야 한다, 청소해야 한다.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핑계를 만들어두고 그는 그때마다 다른 행동을 했다.


나의 사진을 찍어주고 나와 함께 갔던 장소를 프로필 사진으로 해둬서 나는 안심했었다.

굳이 그의 모든 걸 볼 생각이 없었는데

보이지 않는 그의 의미들도 포용하고 믿으려 했는데.


그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내게서 점점 멀어졌다.


헤어지자는 내 말에 나를 사랑해서 보내줄 수 없다고 그는 구차하게 매달렸다.


"이제 안 그럴게. 정말이야. 그냥 네가 오해할까 봐 그랬어."


아는 누나들과의 연락이 많아서 오해할까 봐 폰을 보여줄 수 없었고,

새벽 세시에 술 마시러 간다는 말을 오해할까 봐 잔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나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해. 오빠는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여자 만날 거야. 잘 지내."


그래도 적어도 그는 거짓말을 제외하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운전교습을 해줄 때 내가 급브레이크를 밟아도 늘 평온하고 한결같았던 사람.

한강 주차장에서 빠져나갈 때 차가 막혀 삼십 분을 그 자리에 서있었지만 오히려 신나는 노래를 틀어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사람.

데이트를 하기 전엔 내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물어 늘 내 의사를 존중해줬던 사람.

밥을 먹을 때 앞 접시에 먼저 덜어주고 소스를 뿌려주는 등 기본적인 배려를 갖췄던 사람이었다.


그런 점들 때문에 어쩌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직감할 때도 그를 놓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내가 오해할까 봐 그랬다는 어쭙잖은 변명에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고 그를 믿고 싶었다.

그가 믿음직스러워서가 아니라 내 시간을 투자해서 사랑한 사람이니 기왕이면 믿으려 했다.


그의 장점이 느껴질 때마다, 자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위안한 건지도 모른다.


좋아했다.

사랑했다.

하지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랑은 껍데기일 뿐이라 생각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차에서 내렸다.

동시에 그의 전화와 카톡을 차단했다.

구질구질하게 따라와서 내 손목을 잡는 그에게 제발 가라고 부탁했다.


"너무하네. 그래도 이렇게 말하는데."


"난 네가 더 너무한 거 같은데. 그 시간 동안 나를 몇 번이나 속였니? 날 정말 사랑했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내가 잔다고 했어. 근데 알고 보니 아는 언니와 2차를 갔어. 아니 그건 그렇다 쳐. 근데 내가 밥을 먹는다 하고 알고 보니 아는 오빠를 만나고 아는 오빠와 통화를 했다고 생각해봐. 어떨 거 같니? 그리고 그 오빠랑 대화한 게 있어서 너에게 폰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다면. 전부터 촉은 있었지 근데 믿으려 했어. 내가 미련했나 봐. 너무 질질 끌었네."


그 누나와의 톡 내용은 이상한 건 없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아는 누나와 전화하고 왔다, 아는 누나와 만날 것 같다고 했다면 쿨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만나는 관계, 나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원 모임을 간다더니 살사 모임을 갔던 그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온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는데 모든 진심을 보여줬는데

그는 내가 오해할만한 것들을 구분하여 속일 것과 말할 것을 선택하며 사랑했다.


오해할 것 같으면 오해할만한 행동을 아예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게 아니면 솔직하게 얘기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게 맞았다.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하고 연인에게는 거짓으로 이어가는 관계가 더는 비전이 없어 보였다.


그의 미안하다는 말에는 진심이 있었을지 그것마저 의문이 들었다.


거짓과 진심 사이.

가장 묵직하고 따뜻한 마음의 거리에서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사랑했던 그에 대한 마음이 한순간 뚝 끊어졌다.


이별이 쉬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별 이후 근근이 그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그건 그리움이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일상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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