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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Nov 04. 2017

눈을 보면, 진심이 보인다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정성껏 빚어야 한다.


"지연아 사람을 대할 때는 언제나 눈을 바라보는 거야."


언젠가 엄마가 내게 말하셨다.

사람의 눈에는 신기하게도 모든 진심이 오롯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니 눈과 눈을 마주치는 것은 '나는 당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겠어요.' 하는 의미라고.

진심과 진심이 통하는 일은 의외로 짜릿했다.

나도, 상대도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서로의 눈가에 촉촉이 젖어들었다.

피하지 않고 눈을 맞춰주는 상대의 정성에 감동받고 상대가 이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느껴졌다.


"진심만을 말한다는 게 뭐야?"


"그건 난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거야.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오래오래 지키고 싶어요."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으레 나는 이런 말을 들어왔다.

학교에 들어가면 친구들, 선생님과 눈을 맞추며 진심을 나눠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내가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다른 아이들도 학교에 오기 전에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진심을 말하는 친구들만 눈을 맞추곤 했다.

뻔히 드러나는 거짓말을 애써 변명하던 아이들은 눈 맞추는 것을 삼초 이상 견디질 못했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늘 한결같은 마음을 전하는 일이야. 나는 언제나 여기 있을 거라고,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 거라고 말해줘야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잘 전해진단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구구단과 받아쓰기를 미리 배우는 것처럼 나는 눈 맞춤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받았다.

얼굴에서 가장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눈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눈이 아플 때도, 심지어는 잠을 자다가도 누군가 말을 걸면 어떻게 해서든 나의 진심을 보여주려 애썼다.

눈을 크게 뜨려 노력했고, 상대가 나의 눈을 바라봐 나의 진심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늘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혹여나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괜히 눈을 피하고 그런 적 없다며 거짓말을 하는 관계는 상대방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멍이 들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다닐 때 한 남자아이가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유치원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 아이의 진심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말했다.


"사람에게 마음을 전할 땐 눈을 보고 해야 하는 거야."


그 애는 귀가 빨개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잔뜩 굳어있는 표정 위로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눈동자는 내 눈이 아닌 내 어깨 즈음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눈을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의 눈가에 진심이 어려있었다.

촉촉했고, 나는 그게 그 아이의 진심이라 생각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웃기게도 우린 교제를 했다.

"우리 사귀자."와 같은 박력 있는 고백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아이의 젖은 눈동자를 보며 나 역시 눈동자가 젖어 자연스럽게 마음이 읽혔달까.


그래서 내 유치원 소풍 사진을 보면 그 아이와 같이 찍은 것일 때가 많다.

그는 대범하게 어깨동무를 했고 나는 쑥스러운 듯 입을 가리고 웃었다.

눈을 바라보고 말해야 한다고 어른처럼 훈계하던 내가 입장이 바뀌어 오히려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비록 애기 때지만 진심이 있는 관계였구나,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마도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말과 말이 정확하게 오고 갈 때도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A의 의도로 말해도, B의 의도로 받아들일 때가.

아무리 말해도 귀담아듣지 않을 때가.

그렇게 말이 소리 없이 사라지는 때가 있었다.


말과 문자로 전달했음에도 오해가 생기는데

신기하게도 말없이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오해가 풀리기도 한다.


그러하듯, 진심이란 장황하게 포장하여 억지스럽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곁에 오래 머물고 싶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참 소중하게 생각된다.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 때 '눈빛'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누군가 나를 회상할 때

'그래 그 사람, 눈빛만큼은 참 따뜻했어.' 라던가

'그 사람,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와 같은 기억으로 남겨진다면 정말 영광일 것 같다.


나는 늘 단 한 명에게라도 좋은 의미로 남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부끄럽고, 쑥스러운 시간들도 눈을 마주치며 견뎌왔으니까.

나는 진심이라고, 당신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해주려 부단히 노력했으니까.


언젠가 나를 회상한다면,

내가 당신에게 진심이었다는 하나만이라도 기억해줬으면 한다.  


우리의 관계가 정말 의미 있었다고,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울려 퍼지는 그런 의미이기를 바란다.


아주 오랜만의 회상에도 그 따스함이 맴도는 사람,

다시 눈을 마주치며 일상을 묻고 싶은 사람.

언제든 함께 하고 싶은 진중한 그리움이 짙게 서려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사람을 대할 땐 언제나 눈을 바라보는 거야. 소중한 사람일수록 오래오래 눈을 바라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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