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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Apr 28. 2016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삶이 있다

그 사람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그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유명한 동화 중 '여우와 두루미'가 있다.

여우는 두루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데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준다.

두루미는 자신의 부리가 길어서 수프를 먹기 불편하다고 하지만, 여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루미는 복수를 계획하고 이번에는 여우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두루미는 호리병에 수프를 담아서 주지만, 여우는 병에 입이 들어가지 않아서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 일을 계기로 여우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그렇게 서로 화해를 하면서 동화는 끝이 난다.


이 동화의 교훈은 뭘 말하려는 걸까?

배려에 대해? 혹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배려와 친절은 그 사람을 잘 아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여우는 자신이 납작한 접시에 담긴 수프를 먹을 수 있으니 두루미도 먹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두루미의 자신과는 다른 신체적 조건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또한 이해하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상대방의 삶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건 이렇게도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또한 사람을 만나면서 반드시 새겨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내가 했던 배려가 상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보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한국에서는 하이파이브 혹은 숫자 5를 나타내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리스, 터키에서는 '지옥에나 가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OK 혹은 돈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그러나 브라질과 남미 국가, 중동, 러시아, 터키, 아프리카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성적인 모욕을 나타낸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형편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최고를 나타내는 의미이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거절, 무례함을 뜻한다.

특히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불쾌감을 줄 때 사용한다.

상대방에게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 자체가 "너는 너무 무례하다"라는 표현으로 전달된다.

또한 중동지역에서는 음란한 행위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사진 찍을 때 많이 쓰는 포즈이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손바닥이 보이는 V 자는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표현이며

영국과 호주에서는 손등이 보이는 V 자는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대변보고 싶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숫자 4를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신분차별을 두는 좋지 않은 의미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귀여운 표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도, 대만, 호주에서는 모욕적인 행동을 뜻하는 의미이다.

또한 과테말라 등 일부 라틴 국가에서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홍콩에서는 식사나 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초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더 크게 쏘기를 조르는 의미라서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반드시 양손을 모두 식탁 위에 두어야 식사 예절에 맞다고 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의 문화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 A가 홍콩 사람을 집에 초대했는데 그 사람이 A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봅시다.

A는 그 사람이 A와의 시간에 만족하지 않았거나 그 사람을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섣불리 그 사람을 매너가 없다고 평가한다면, 그 사람의 진심도 알지 못하고 오해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홍콩에서는 원래 초대받은 자리에서 감사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절대 상대방의 입장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각자에게는 각자만의 삶이 있고, 살아온 방식과 그만의 문화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의 삶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동안인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 부러워서 "정말 어려 보이시네요." 하고 진심이 담긴 칭찬을 하였고, 당연히 상대방이 나의 칭찬에 기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평소 자신이 어려 보이는 것이 스트레스여서 성숙하게 보이는 방법을 강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것이 과연 '진심이 담긴 칭찬'일까요?

어찌 보면 그 사람에게는 상처이며, 스트레스를 가중시켰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하는 것들은 사실 의미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사람을 만날 때는 내가 생각한 것들이 옳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 사람을 위한 것들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의 삶을 직접 살아보지 않은 이상 그 사람을 온전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항상 상대의 입장, 상황에서 그 사람의 삶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그 사람에 대한 확신이 들 때 비로소 관련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조심스럽게, 천천히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혹 우리는 상대의 행동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들입니다.

서로 살아온 삶이 다르고 환경, 생각하는 것들이 다른데 왜 그 사람의 행동이 나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할까요?

같은 환경에서 살아온 쌍둥이어도 서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입장에서 '너'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너'의 입장에서 온전히 그 사람의 삶을 받아들여보면 어떨까요? 시간이 지나 '너'의 삶과 환경들을 알게 된다면, 비로소 '너'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겠죠.


그렇게 우리는 조금 더 상대의 삶을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 사람을 위해 '나'를 변화시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한 관계들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도와는 달리 오해가 생기게 된다면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을까요?

그럴 때는 우선 상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섣불리 판단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입장을 들어보는 거예요.

그렇게 솔직하게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나의 행동이 진심임을 보여주는 겁니다.

진심과 진심이 만나 서로에게 신뢰와 사랑이 싹트게 되고, 서로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죠.


진정한 사랑 또한 이러한 형태로 존재합니다.  

사랑은 나의 위치에서 그를 바라보고 머리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닌 온전히 그의 삶에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고 그 자체를 어루만질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의 행동이 마음에 들고, 너의 삶이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그저 당신의 움직임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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