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Feb 04. 2017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또 한 번 성장한다 


어렸을 땐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으레 '외적인 것들'을 예로 들어 답하곤 했다.


"송승헌처럼 눈썹이 진한 사람이요."

"어깨가 넓어서 제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요."

"저보다 키가 큰 사람이요."

"피부가 말랑말랑해서 볼을 만지는 촉감이 부드러운 사람이요."

"눈이 깊어서 오랫동안 마주 보고 싶은 사람이요."

"피부가 까무잡잡한 사람이요."

"팔이 길어서 높이 있는 물건도 내려다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발이 예뻐서 여름에 같이 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이요."


그땐 보이지 않는 것들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화장을 했고, 머리에 젤을 발라 세웠고, 향수를 뿌렸다.

사람들이 그렇게 공을 들이고, 관리를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날 때 꼭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반드시 잘생기고, 예뻐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위에 나열한 것처럼 피부가 말랑말랑하다던가 팔이 길다던가 하는 

남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나에겐 의미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달리는 걸 좋아하므로 그 사람과 함께 달리고 싶었고, 

그래서 그 사람의 종아리가 두꺼웠으면 하고 바랐다.

그 당시엔 아무래도 다리가 두꺼우면 좀 더 잘 달릴 거라 생각했었기에.


그땐 그랬다.


그러다 언젠가 학원에서 내가 생각했던 이상형과 정말 근접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아이는 피부가 까무잡잡했고, 볼이 말랑말랑해 보였으며, 종아리가 굵었다. 

나는 그래서 수업 중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아이를 보곤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게 어떤 의민지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멀리서 바라만 봐도 설렌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 아이 생각에 수업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고, 잠을 설쳤다.

눈을 감으면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볼이 말랑말랑한 그가 웃고 있었다.

그 아이가 앉았던 책상만 봐도 심장이 쿵쿵 거렸고, 

혹시나 그 아이가 그 소리를 듣는 건 아닐지 걱정돼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런 의미였다. 

나의 첫사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마침 학교도 같은 곳이었다.

그 아이가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점심을 일찍 먹고, 교실 창문을 통해 축구를 하는 그를 바라보곤 했다.

어쩔 땐 너무 부끄러워져서 창문에 달려있는 커튼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행복했다.

말을 섞지 않아도, 근처에 가지 않아도 

멀리 바라만 봐도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복도에서 스쳐갈 때면 하루 종일 가슴이 쿵쿵거렸고, 

그날 내 옆을 지나가던 그의 표정과 눈빛이 생생히 살아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긋한 짝사랑은 이 년간 계속됐다.

그러다 언젠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던 중 놀이터에 서 있는 그 애를 보게 됐다.

그 애는 친구 두 명과 같이 있었는데 그때 그 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멀찍이 서서 놀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그 애는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고, 앞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뺐었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돈을 뺐고, 바닥에 침을 뱉고 있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이 년간 내가 진심을 다해 좋아했던 나의 이상형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멀리서 놀이터를 바라보는 내게서 눈물이 흘렀다.

그 애는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을 세게 발로 차며 놀이터를 떠났다.


그는 그렇게 내게서 떠나갔다. 


그 일이 있고 한참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눈을 감으면,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 돈을 뺐었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년간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진심으로 좋아했기에 그만큼 상처가 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아파하며, 힘들게 그를 잊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참 성숙하고 절절한 사랑이었다.

 

때는 화이트데이 일주일 전이었다. 

그를 너무 좋아했기에 오히려 내가 사탕을 주고 싶어서

사놨었는데 눈물을 흘리며 혼자 먹어야 했다.


그렇게 사탕껍질이 쌓여가면서 내 아픔도 점점 견고해졌다. 


그 이후로 나의 이성관은 철저히 변하게 되었다.

외모보단 내면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관점을 바꿨고, 

겉모습만을 보고 혼자 가슴앓이하기보다는 만나서 대화를 하며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파악하려 애썼다.


외모야 어차피 나이 들면 늙고, 변하기 마련인데 

내면은 나이가 들수록 깊이 있고, 깊은 향기가 난다. 


그래서 사람의 내면에 더 중점을 두고,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내면을 통해 비로소 향이 채워지고 내 내면도 성숙해짐을 느끼면서 

그 사랑이 완전함을 깨닫기에.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내면이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자상하고, 매사에 감사할 줄 알았다. 

또한 늘 바른 행동을 했고, 옷을 깔끔하게 입었다.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고, 자기 의견을 또박또박하게 말할 줄 알았다.

사람들을 보며, 곧잘 웃곤 했던 그의 눈을 통해 그가 참 선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의 그 사람은 바라보기만 해도 날 설레게 했다면, 

이 사람은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져 가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이 성숙해지고, 풍부해지는 듯했다.

참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길을 가다 쓰레기가 생겨도 손에 쥐고 있다가 쓰레기통이 나오면 그때 쓰레기를 버렸다. 

비가 오던 날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자동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옷에 흙탕물이 튀어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죠, 하며 미소를 짓던 그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해졌다.

단단한 뿌리가 내 삶을 채워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로 인해 나 역시 완전한 인간이 된 듯했고, 

나 역시 그처럼 조심스럽고, 진중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외모는 내 이상형과 거리가 멀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주는 풍미가 매력 있었다.

그의 말들은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단어를 선택하더라도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드러나 

또 한 번 그에게 매료되었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사람, 

깊이 있는 관계로 이끌어주는 사람,

나의 삶을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서 좋았다.


그로 인해 나 역시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으니까.

긍정적인 삶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그는 분명 내게 좋은 에너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래서 진짜 첫사랑은 아무래도 초 5 때의 가슴앓이가 아닌 

외면뿐 아니라 그의 모든 면에 온전히 매료되었던 고등학생 때가 아닌가 싶다.


초 5 때는 단순히 '외면적인 부분'을 보고 감정을 만들었다면, 

고등학교 때의 사랑은 대화를 나눠보며, 그의 진중함에 깊은 감정을 느꼈기에

그때의 사랑이 더 성숙하고, 진실되었다.


그 사람은 매 순간이 달랐다.

만나면 만날 수록 내게 주는 의미가 커졌고, 

무엇보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바라만 봤던 짝사랑과 달리 

함께 울고, 웃으며 감정을 공유하며 그에게 온전히 매료되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풍겼던 향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때 내가 그렸던 그의 모습과 닮은 사람을 꿈꾼다.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 


화가 나도 늘 부드러운 말들로 풀어가려 했던 그 사람처럼,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도 말과 눈빛에서 따스함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누가 내게 이상형을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말을 할 때 부드러운 단어들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도 좋은 말들을 뱉어내는 사람.


식당에 갈 때면, 사람들 자리에 수저를 놓고 물컵에 물을 따라 두는 사람.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같이 걷는 사람과 발걸음을 맞춰 걷는 사람.


자신과 다른 식사속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도 늘 속도를 맞추는 사람.


누군가 자기 생각과 정반대의 의견을 주장하며 몰아세워도 차분한 태도로 상대의 의견을 들어보는 사람.


누군가에게 호의와 관심을 받았을 때 결코 우월하게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늘 낮은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고, 정비하는 시간을 갖는 사람.


감사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같은 표현을 아끼지 않는 사람.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만큼 자기 자신도 챙길 줄 아는 사람.


뒤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


첫 시작만큼이나 마무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사람을 진중하게 사랑할 줄 알고, 그 마음의 소중함을 잘 아는 사람.


차를 음미하며, 하루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의 말에 눈을 마주치며, 진중하게 들어주는 사람. 


대화의 순간순간,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꿈꿔왔던 이상형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려 한다.

가슴에 묵직한 무게를 간직해 사람들에게 진중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

그때의 너처럼 나 역시 말과 눈빛을 통해 따스함을 전달하고,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의미를 남기는 존재가 되려 한다. 

내가 너의 말과 행동으로 너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 다른 사람들도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의 내면을 바라봐준다면 참 감사할 것이다.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나의 말로서 진심 어린 향을 뱉어내고,

그렇게 작더라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워내고 싶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외면보단 내면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첫눈에 반하는 경우가 드물다.

설령 외모가 마음에 들더라도 마음을 제어하는 편이다.

초5 때와 같은 상처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 사람과 대화를 해보고 한동안 연락하며 지내도 진중한 사람이라 생각되면

꾹꾹 누르며 제어했던 마음을 풀어 그제야 마음 놓고 좋아한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인가.

사람들의 비밀을 지켜줄 만큼 진중한 사람인가를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 것들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외면이야 언제든 가꿀 수 있다.

어딜 가도 쉽게 거울을 볼 수 있고, 

거울을 통해 자신의 외면을 바라보고 정돈하면 된다.


반면 자신의 내면은 큰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으며 아프게 살아가곤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이런 행동은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굉장히 고마워진다. 

그 행동을 고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을지 알기 때문이다. 

또 지적을 할 경우 감정이 상해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나에 대해 솔직한 조언을 해줬으니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 맞춤법을 틀렸을 때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음을 각오하고 고쳐주라고. 

당신이 지적했을 때 그 사람이 창피할 수도 있고,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지적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평생 창피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중요한 문서를 작성할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때 

맞춤법을 틀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이런 행동은 고쳐보는 게 어떨까?

혹은 이 맞춤법은 잘못됐고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창피하거나 속상할 순 있다.

하지만 그 사람도 용기를 내어 당신을 '위해' 이야기해준 것이므로 고마워해야 한다.

만약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속상했을 것이므로. 


또한 당신도 당신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용기를 갖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솔직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떠날까 봐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당신이 솔직하게 말한다 해서 끝날 관계였다면, 애초 끝날 관계였다.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아등바등 눈치 보며 살기엔 당신의 삶이 아깝다.


발전과 성장은 '성찰'을 통해 '변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엔 문제없다 생각할지라도 

내면은 외면처럼 거울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므로 

누군가의 눈에 보였다면, 최소한 경청하는 태도는 갖춰야 한다.  


사람의 내면은 중요하다.

당신이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고,

필요한 화장품을 사고,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피부과에 가서 점을 빼고,

눈썹 반영구를 하는 등 외적인 것들에 신경을 쓰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자신의 내면도 가꿔야 한다. 


주기적으로 일기를 쓰며 당신의 마음을 정돈하고,

하루의 일과를 곰곰이 생각해보며 반성해야 할 점과 칭찬받아야 할 점을 구분하여

기록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잘못되었는지 따져서 

다시는 같은 실수가 없도록 유념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좋아하는 공연이나 여행을 통해 마음을 정화할 수 있어야 한다. 

틈틈이 자신의 마음을 돌봐보라.

힘들지는 않은지, 외롭지는 않은지, 슬프지는 않은지.

화분에 물을 주듯 당신의 마음에도 관심과 햇빛과 물을 뿌려 가꿔야 한다.

돌보지 않으면, 화분처럼 마음 역시 상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매일 거울을 통해 외면을 바라보고, 관리하는 반만큼이라도 

내면도 가꿔야 한다.


나는 당신이 '내면'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당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주위 사람들과 자신을 돌아보고, 

그렇게 서로 좋은 기운을 나누는 관계를 맺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를 평가하듯, 자기 자신도 평가할 줄 아는 사람이기를.

또한 자신을 정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기를.


외면만 아름다운 사람은 첫 만남에 설렘을 주고, 만나면 만날수록 실망하게 되지만

외면이 특출 나지 않더라도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은 또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

계속 알아가고 싶은 사람.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사람.

같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외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닌

내면이 아름다워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도, 당신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알아가고 싶고, 알아갈수록 감사한 시간을 마주했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