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현대 추상회화의 대가 션 스컬리의 시선
여러분!! '미니멀리즘' 전시회를 관람하면 어떠세요? 저는 여러 카테고리의 예술 중에서 미니멀리즘 작품을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렵던데요. 작품들을 보면 '이거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은 선호하지 않게 되었죠. 한때 유행처럼 퍼져가던 미니멀리즘이 아일랜드 출신 화가의 감성 어린 붓터치 덕분에 현대 추상회화가 다시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제 작품이 한국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받은 융합의 복합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말했던 작가는 바로 풍부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를 잘 활용하여 현대 추상회화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션 스컬리(Sean Scully)입니다. 다채로운 사각형과 줄무늬가 결합된 작품으로도 유명하죠.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작가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활동할 당시에는 미니멀리즘 작품들이 유행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 당시 색감 좋고 기하학을 기반으로 엣지있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많았죠. 하지만 작가님은 그 시대에 다소 차가운 느낌이 드는 미니멀리즘을 감성적인 추상으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물론 작품에서 반복적인 형태나 색면과 같은 미니멀리즘의 요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미니멀리즘에 감성을 넣으셨죠. 그래서 션 스컬리는 미니멀리즘의 영향 아래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넘어선 독자적인 추상 화가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작가님의 작품에는 '인간미'가 있습니다. 대부분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기하학적으로 선을 그릴 때 자로 그은 듯 아주 깔끔하고 기계적인 느낌이 들죠. 하지만 션 스컬리의 작품들을 보면 물감으로 몇 번이나 덧칠을 해서 선을 직접 만들어서 표현하십니다. 감정을 배제한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작가님의 작품은 인간의 감정을 모두 드러낸 성격이 있죠.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1960년대에서 현재까지 시기별 대표작과 신작을 포함하여 총 70여 점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작 회화 연작을 비롯하여 초기의 구상작품, 수채화, 연필 드로잉, 디지털 프린트 등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들이 소개된다."라고 전합니다.
전시 초입 부분에는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 작가님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구축한 시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먼저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은 <찰스 초셋을 위하여>인데요. 션 스컬리는 종종 친구나 동료에게 헌정하는 작품들을 그렸다고 전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의미와 감정들을 독자적이고 추상적인 방식으로 담고자 했던 작가님만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찰스 호셋에 대해 언급하자면, 그는 저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편집자입니다. 특히 추상 미술에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가진 분인데요. 션 스컬리는 다소 직설적이고 강렬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찰스 초셋 역시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피력하는 비평가였습니다. 그래서 서로 얼마나 열띤 토론을 했을지 상상이 되기도 하네요. 오랜 기간 동안 깊은 우정을 나눈 만큼, 작품에서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 그리고 예술적 동료로서의 유대감을 작품에 잘 녹여냈습니다.
작품의 특징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작가님의 스타일을 탄생하는 과정이라서 그런지 대담한 붓터치와 중첩된 색면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절제된 색상을 사용하여 깊이감과 묵직한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죠. 붓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질감은 작가님의 유니크한 특징입니다. 여러 번 덧칠하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색면들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강조하고 있어요.
작품을 보면서 단순해 보이는 구조는 미니멀리즘의 영향이 있어 보였지만, 색면의 크기나 색상, 질감을 통해서 역동적인 시각적 리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혼자 상징적 의미도 생각해 봤는데요. 유독 눈에 띄는 검은색과 짙은 갈색으로 대각선 경계가 보이는 부분은 아마 '찰스 초셋의 애착하는 넥타이가 아닐까?' 싶었어요. 오랜 친구를 위해 헌정하는 마음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할 작품은 <밤의 노래>입니다. 작품을 보고 떠올랐던 것은 '피아노'였습니다. 피아노를 가로로 놓은 것처럼 보였는데요. 흰색과 검은색으로 건반을 표현한 것 같았고, 네이비색의 케이스 안에 갈색으로 댐퍼헤드를 그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을 보고 난 후에는 자장가보다는 잔잔한 음악이 생각났죠. 션 스컬리의 작품은 대부분 묵직한 느낌이 있는데, 이 작품만큼은 따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 이 작품은 제목이 한몫을 했다고 여겨지는데요. 왜냐하면 제목을 알고 작품을 보면 경쾌한 연주를 하는 피아노보다는 차분한 연주를 하는 피아노가 떠올랐습니다. 특히 조용한 색감 덕분에 평온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질감만큼은 강렬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찰스 초셋을 위하여> 작품처럼 붓의 흔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질감 있는 표면을 보여주죠. 여러 번 덧칠하고 때로는 긁어내는 듯한 표현 기법은 물감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더욱 풍부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밤의 노래>는 션 스컬리의 1980년대 대표작 중 하나로, 깊이 있는 색감과 정교한 화면 구성, 그리고 강렬한 질감을 통해 보는 이에게 깊은 사유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수평과 수직의 스트라이프 패턴의 작품들이 많이 보입니다. <Come and Go>역시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작품의 제목은 사무엘 베케트의 단막극 작품에서 가져왔다고 전합니다. 작가님이 이 작품에 대해 어떠한 영감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사무엘 베케트라는 극작가와 감수성을 공유하고픈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작품의 제목을 해석하면 '오고 간다'라는 의미죠. 제목처럼 수평과 수직의 스트라이프가 시각적인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넓게 펼쳐진 붉은색과 검은색의 수평선들은 화면에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왼쪽 상단과 중앙 부분에 배치된 푸른색 계열의 수직선들은 리듬감과 깊이를 더하고 있어요. 이러한 수평과 수직의 만남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넘어, 마치 세상의 질서나 움직임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 작품에서 단순한 형태와 기본적인 패턴을 사용한 것을 보면 미니멀리즘의 영향아래에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색의 미묘한 변화, 붓의 흔적,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따뜻함은 미니멀리즘의 차가운 추상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붉은색의 따뜻함과 검은색의 묵직함, 그리고 푸른색의 차분함이 대비되면서 복잡하고 다층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죠.
다음으로 소개할 제품은 <다카르>입니다. 상단에 위치한 회색조의 추상적인 형태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실제로 봤을 때, 그라데이션 인 듯 아닌듯한 느낌을 받아서 기억에 남았던 작품입니다. 1989년에 션 스컬리의 작품은 색채와 구조가 매우 대담하고 감각적으로 표현이 되고 있죠. 제목 <다카르>는 세네갈의 수도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접근 할 때는 '왜 이국 땅의 수도를 제목으로 했을까?'로 시작을 했었죠. 아마 작가님께서 다카르를 방문한 후,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거나 아님 제목으로 '작품의 분위기를 이국적으로 조성하고 싶지 않았을까?'라고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었죠. 특히 명확하게 두 부분으로 나뉜 게 극명한 색채 대비를 이루고 두 세계 혹은 문화가 공존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굳이 보색대비가 아니더라도 윗부분의 차분한 회색조와 아랫부분의 뜨거운 붉은색은 마치 상반된 두 개의 감정이나 에너지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 역시 두껍게 칠해진 물감의 질감과 붓터치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특징을 보입니다. 면의 질감이 느껴지며, 이는 작품에 깊이와 생동감을 더하고 있죠. 특히 윗부분의 회색조 영역에서는 거친 붓터치가 더욱 도드라져 추상적인 형태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듯합니다.
이국적인 제목은 작품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하며,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저는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강렬함과 동시에 절제된 아름다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에는 격자무늬와 스트라이프를 더욱 깊게 탐구하던 시기였는데요. 1996년 작품 <Human Nature>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이죠.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흑과 백에 대해 알 수 있어요. 작가님은 이 두 색깔로 수평과 수직을 표현할 때 스스로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상태라고 하신 것을 보면, 검은색과 하얀색은 색채 중에서 가장 순수하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작품제목을 해석하면 '인간성'인데요. 작가님의 의도는 흑과 백으로 '인간의 순수성'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에게 이 작품의 첫인상은 'Simple'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단순하지만, 흑과 백이 주는 단순함은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절제미도 돋보였고요. 특히 전형적인 스트라이프 패턴 속에 흰색과 미색의 조화로 깊이 있는 구조를 만들어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제목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작가님과는 달리 처음에는 인간의 순수성보다는 흑과 백으로 표현된 점에서 '성악설'과 '성선설'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보통 흑과 백의 대비는 이분법적인 사고, 긍정과 부정 그리고 밝음과 어둠 등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죠.
선과 악의 조화로도 생각했지만, 작품을 좀 더 깊이 보면 흰색만 있지 않고 미색도 존재합니다. 이 색깔은 작품에서 부드럽게 중재하는 듯한 느낌을 줘요. 그래서 따뜻하게도 느껴지는데요. 그 미묘한 색의 존재 덕분에, 흑백의 선명함 속에서 뜻밖의 따뜻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인 개념 너머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따스함 또한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가 아닐까 깨달았습니다.
초창기 작품들을 쭈욱 관람하면 이제는 작품 속에 인물도 나옵니다. 수평과 수직으로만 된 작품들만 보다가 인물이 나오니 마치 다른 작가님의 작품을 보는 듯했어요. 작품의 이름은 <성모마리아 삼면화>입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종교화의 느낌만 전해주지만, 사실 작품 속 인물은 작가님의 부인과 아들입니다. 형태가 있는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이유가 제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는데요. 작가님의 첫 아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환갑이 지나서 아들을 얻었다고 해요. 그 후 부인하고 아들과 함께 바하마로 휴가를 가서 찍은 사진으로 작품을 그렸다고 전합니다. 이 작품을 그릴 때 작가님의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졌어요. 하나의 작품을 세 개로 나눈 이유가 있는데요. 개인의 경험 그리고 관계에 대한 탐색의 의미를 넣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란게 아닌가 싶었어요.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저에게는 같은 그림을 계절적 변화로 나눈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사계절이 다 나오지는 않지만, 삼면화의 각 패널에 서로 다른 색조나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시간적 흐름으로 나열해 보자면, 첫 번째는 생동감 넘치는 밝은 색감의 '봄', 두 번째는 강물의 깊이 있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봤을 때 '여름' 그리고 세 번째는 은행잎과 단풍잎이 생각나는 '가을'이 떠올랐어요. 저한테는 작품 속에서 행복한 모자(母子) 관계와 자연의 근원적인 흐름이 느껴졌던 작품이었습니다.
일부 평론에서는 이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삶의 여정을 반영하며, 추상과 구상, 물질과 정신적인 영역 사이의 관계에 대한 탐색을 보여준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대구미술관을 방문하셨을 때, 참고하시면서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인물이 나오는 작품을 하나 소개할게요. 바로 <Figure Abstract and Vice Versa>입니다. 제목처럼 구상화와 추상화가 섞여있습니다. 반복적인 색면추상회화에서 배경위에 사람이 있는데요. 비록 색이 적지만, 뭔가 눈이 자꾸 왔다 갔다 하면서 감상을 해서 편하지가 않았던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이번 회고전에서 주요 작품 중 하나라고 전합니다. 작품의 제목을 해석하면 '구상 추상 그리고 그 반대'라는 뜻입니다. 제목을 보면 션 스컬리가 작품을 통해 구상과 추상이 분리된 것이 아닌,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하는 관계임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죠. 사실 작가님의 어떤 인터뷰를 보면 스스로 자신의 작업은 추상으로 재구성된 구상미술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션 스컬리는 모로코와 멕시코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모로코 카펫의 반복적인 패턴과 풍부한 색채가 작가님의 작품에 기하학적인 요소에 영향을 줬어요. 이는 작가님의 작품이 지닌 인간적인 따뜻함의 원천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노랑과 파랑 색채의 대비와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색면 추상을 구현하면서 따스한 감성을 자아내죠. 작가님의 트레이드마크인 쌓거나, 교차하는 등의 규칙이 적용된 색들의 결합들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구조 뒤에는 작가 자신의 삶, 나아가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감정, 기억,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려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전합니다.
이제는 션 스컬리의 연작 'Wall of light'와 더불어 대표적인 연작인 랜드라인 시리즈를 소개하겠습니다. 랜드라인은 수직이 사라지고 수평이 다른 수평과 어우러지는 세계를 보여줘요. 땅과 바다, 하늘이 이어지고 세상을 만드는 블록들이 부딪혀서 껴안는 감성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시리즈입니다.
연작에서 먼저 소개할 작품은 <구부러진 랜드라인 삼면화>입니다. 수평선을 구부린 형태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작품을 봤을 때 저의 첫인상은 그냥 무지개를 추상화로 표현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내가 잘못 봤구나' 싶었죠. 구부러진 선들은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수평과 수직보다는 좀 더 따스한 느낌을 더 받았어요. 왜냐하면 석양빛에 물든 수평선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이러한 부드러운 선에서 독특한 리듬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삼면화가 3악장으로 나눈 것 같았어요.
삼면화로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거대한 스케일 덕분인지 자연의 웅장함이 느껴졌고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어요. 작품에서는 특유의 풍부하고 깊이 있는 색채가 사용되었죠.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녹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들이 각 색띠를 구성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두터운 붓질과 물질감은 시각적인 깊이감과 촉각적인 느낌도 함께 느껴졌어요. 생각해 보면 단순히 색을 칠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느낀다는 게 너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밌었어요.
다음으로 소개할 랜드라인 시리즈 중 하나는 바로 <랜드라인 에두아르>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표현기법에서 다른 랜드라인 시리즈 작품들과 차이점이 있어요. 다른 점은 제목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에두아르라는 프랑스 화가의 이름을 넣어서 보다 서사적이고 감성적인 배경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에 나온 작가에 대해 언급하자면, 에두아르 뷔야르는 프랑스 나비파 화가입니다. 이 작가의 작품 특징은 느슨한 붓질과 색채의 섬세함이죠. 션 스컬리는 이러한 그의 작업방식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작가님은 자신의 추상 회화가 고립된 장르가 아니라, 과거의 거장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들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에두아르가 일상과 내면의 감정을 색채와 패턴으로 표현했듯이, 작가님은 보편적 풍경인 지평선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추상 언어로 풀어내죠. 그래서 이 작품은 개념적, 인문학적 깊이를 한층 더하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캔버스 위에 두껍게 쌓아 올린 유화 물감입니다. 션 스컬리는 물감을 붓으로 겹겹이 쌓아 올림으로써, 평면적인 그림에 물리적인 깊이와 질감을 부여하죠. 이는 마치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지층이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견고한 벽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 색상이 인상 깊었는데요. 고요하면서도 풍부한 중간 톤의 파랑, 갈색, 노랑, 그리고 깊은 검정 계열의 색상들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요. 예를 들면, 파랑과 갈색의 미묘한 경계는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의 영원한 만남과 분리를 보여주는 듯했죠. 그래서 자연의 다양한 풍경을 보는 듯했습니다.
랜드라인 시리즈는 션 스컬리의 대표 격인 연작인 만큼 이번 회고전에서 다양한 랜드라인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작품은 바로 <짙은 검정>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소개한 작품들을 보면 전부 유화 작품들이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아크릴 스프레이로 만든 작품입니다. 멀리서 얼핏 보면 얼룩말 가죽을 표현한 작품처럼 보이는데요. 확실히 스프레이를 사용함으로써 나타나는 미묘한 층과 그라데이션은 깊이와 공간감을 잘 보여줍니다. 작가님이 유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했다는 건, 꽤나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줬다고 보이는데요.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인상이 깊은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이 작품에서는 션 스컬리에게 검은색은 어떤 의미일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막연하게 생각해 보면 작가님의 내면 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둠을 표현하거나 아님 아들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이 먼저 떠올랐어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의 의도와 살짝 다를 수 있겠지만, 빛을 그리기 위해서 검은색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 이유는 작품 속 번짐이 은은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은은함이 저의 감성을 확 불러오기 보다기는 서서히 다가와서 차분한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어두운 사회에서 한 줄기의 빛을 찾으려는 저의 모습을 대입시켜 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션 스컬리의 회화작품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회고전을 하면서 작가님은 대구미술관에 새로운 신작을 조형물로 해서 작품을 완성하셨는데요. 견고한 철로 수평과 수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한 <대구스택>과 작가님 특유의 풍부한 색채로 도색한 알루미늄을 층층이 쌓아 올린 <38>이라는 작품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끝으로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로 션 스컬리의 대규모 회고전인 만큼 작가님의 모든 걸 본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수평과 수직이 단순한 형태이지만, 깊이감도 있고 느낀 것은 상당했죠. 단순한 그림에서 많은 걸 느낀다는 흔한 경험이 아니라서 의미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작가님의 작품은 인간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추상'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이야기와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이번에도 어김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