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데미안 허스트, 요시모토 나라.. 어디까지 봤니?
데이비드 호크니, 요시토모 나라, 알렉스 카츠, 호안 미로,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미술애호가라면 매우 익숙한 유명한 작가들이죠. 이 작가분들을 빼고는 현대미술을 논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이 분들 말고도 현재 현대미술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바로 강화도에 위치한 '해든뮤지움'에서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특별기획전이 열렸어요. 평소에 미술을 사랑하고 국내에 많은 미술관을 다녔다고 생각했었는데, 강화도에도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전시 감상에 앞서 '해든뮤지움'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2013년 5월 11일에 개관하여 강화도에는 유일무이하게 있는 미술관입니다. 미술관은 배다용 건축가님이 설계한 곳으로써 2013년도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죠.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서 미술관 주위를 보면 산에 둘러싸여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서해바다를 연상시키는 강화도에 또 다른 이미지를 저에게 심어주었죠. 넓은 정원에 있는 조형작품들도 좋았지만, 콘크리트 입구와 거울을 이용한 설계가 상당히 엣지있고 인상 깊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현재 해든뮤지엄에서는 <현대미술 거장들의 공명>이라는 타이틀로 특별기획전이 열렸습니다. 오는 9월 28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총 40인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해든뮤지움에 따르면,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격변하는 현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며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들을 미술사적 연구 가치와 보존 가치가 있는 명작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 감상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서고 질 좋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접하게 함으로써 미술관이 가져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티켓을 구매하고 제 눈에 바로 보였던 것은 바로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작품인데요. 세화미술관을 다녀온 분들이라면 잘 아실 텐데, 광화문에 위치한 흥국생명 빌딩 앞에 있는 <해머링맨>을 만드신 분입니다. 사실 저는 작가님의 설치미술, 조각에 대해서만 알고 있고 회화나 판화작품은 처음 접했습니다. 조나단 보로프스키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역할을 깊이 탐구하고 표현하죠. 그래서 <해머링맨> 같은 경우에도 '일하는 인간'을 상징하며, 반복적인 노동의 행위에 대해 조형적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입니다.
해든뮤지움에 전시된 작품은 <Human structures #2>, 직역하면 '인간 구조'라는 뜻이죠. 작품을 보면 사람들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요. '인류애'와 '공동체'를 핵심 주제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가님은 작품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동시에 집단의 힘으로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게 큰 특징이죠. 인간존재의 의미와 연결의 중요성을 한번 더 리마인드 해주는 거 같았어요.
작가님의 작품에서 강렬한 원색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나타냈지만,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해 봤는데요. 사람의 각각 다른 성격과 정체성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지금 이 시대는 '다양성의 존중'이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색을 지닌 사람들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느껴졌고 우리가 가진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이를 테면, 제3의 성이나 조현병 혐오 등등. 그래서 '지속가능성'과 환경문제 극복을 비롯해서 인류애를 기르는 것 또한 지구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긍정적이고 인류애가 넘친 마음으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 볼게요.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낸시 그레이브스의 <To Be Little Consciousness>입니다. 이 작품도 정말 다양한 컬러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앞서 설명한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작품과는 달리 색들이 뒤엉켜있는 느낌입니다. 낸시 그레이브스는 다른 여성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덜 알려져 있을 수 있지만, 20세기 후반 미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독특한 아티스트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 글에서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서 너무 뿌듯한데요. 작가님은 주로 자연세계의 깊은 탐구와 문화적 유물을 재구성하는 작품을 많이 만드십니다.
작품을 보면 색들이 뒤엉켜있어서 추상회화 같지만, 자세히 보면 동물이나 사람을 그린 것을 보면 구상화적 요소도 보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구상적인 묘사에서 완전한 추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요. 작품 제목에서 추측해 보면, 인간의 내면과 의식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작품인 듯 보였습니다. 내면과 의식이라는 건 사실 지금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아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을 빗대어 보면, 내 안에 있는 작고 미묘한 감정과 지식들 그리고 마음 깊은 속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그러한 것들이 이루고 있는 게 저의 의식들이죠. 그래서 이 작품은 낸시 그레이브스의 내면과 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고 찾아내는 건 다소 난해했지만, 아쿼틴트 판화기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아쿼틴트는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표현하고, 여러 겹의 레이어를 중첩시키기에 적합한 기법이죠. 작품에서 보이는 복잡한 선과 색채의 겹침은 이러한 기법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소개할 작가는 바로 이탈리아 출신 팝아트 작가 발레리오 아다미입니다. 사실 이 작가님은 과거에 세화미술관에서 열린 <미지의 걸작> 그리고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던 <모던라이프>에서 먼저 접했던 작가인데요. 발레리오 아다미는 항상 거장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러 가면 꼭 보게 되는 작가님인 거 같아요.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작가님만의 특유한 색채감이 인상 깊었어요. 채도가 높고 순수한 원색 위주로 색을 사용하고 특히 중간색이나 혼색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색깔들이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역시 시선을 확 사로잡는 데는 강렬하고 원색만 한 게 없는 거 같습니다. 덕분에 제가 작가님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이번 기획전에 전시된 작가님의 작품은 <Tramonto, regard en arriere>입니다. Tramonto는 이탈리아어로 '일몰'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주로 표현된 거 같아요. 그리고 인물들의 옷차림과 피부색을 분위기에 맞춰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노을은 많은 예술작품에서 쓰이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색채 때문인지 보다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따스한 감성을 느끼기보다는 '하루의 끝'을 보는 듯했죠. 이를테면, 작품 속 책과 빈 그릇에서 쓸쓸함이 느껴졌고 노을에서 느낄 수 있는 힐링과 같은 감성은 솔직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을 보면 노을 보며 내일에 대한 불안감도 보였죠. 작품은 단순하지만 생각할 것들은 많고 상당히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관람객들에게 일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깊이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어요.
이제 알렉스 카츠를 소개할 텐데.. 여러분들은 뉴욕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누구이신가요? 잭슨 플록, 마크 로스코 등 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저는 알렉스 카츠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데요. 저의 브런치스토리의 글을 꾸준히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실 테지만, 예전에 알렉스 카츠에 대해 글을 남긴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작가에 대한 설명은 링크로 대처할게요.
https://brunch.co.kr/@b11887a0487a4b6/35
해든뮤지움에서는 <Reflection 2>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단에 거울처럼 비추는 구성이 이 작품에 포인트인데요. 물의 움직임을 표현한 걸 보면 시간에 따라 자연이 변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걸로 보였습니다. 이 작품이 의미가 있는 게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환경풍경'에서 벗어난 새로운 장르를 작가님이 개척했다고 전합니다. 자연의 일시적인 빛의 질감과 색상을 탐구하는 모습에서 알렉스 카츠가 모네의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새삼 느꼈어요.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 느끼는 거지만, 색이 적고 선이 단조로운 미니멀한 표현이 저의 감성을 매번 자극하네요. 그래서 이번 기획전에서 볼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시대를 조금 더 올라가서 마르크 샤갈의 작품 <Romeo and Juliet>을 소개할게요. 우선, 사람들이 샤갈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다고 보는데요. 저 같은 경우에는 샤갈의 작품을 보면서 연인의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킨 화가는 샤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뮤즈 벨라를 무척 사랑했다는 게 작품에서 보였어요. 샤갈은 색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죠. 파리처럼 찬란한 색채를 드러내거나, 가난한 시절을 보냈던 고향처럼 어둡게 그리기도 하죠. 그래서 샤갈의 작품을 감상하면 그의 색감에 스며들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실 샤갈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많은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 수많은 미술서적에 적혀있으니 딱 제 생각만 적고 넘어갈게요.
마르크 샤갈은 '샤갈 블루'라고 할 정도로 작품을 그릴 때 청색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초록색을 메인으로 사용했어요. 이런 이유로 다른 작품들과는 어느 정도 차별성이 있다고 보입니다. 초록색은 일반적으로 자연, 생명, 성장, 젊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관점으로 봤을 때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젊고 생기 있는 청춘이라서 초록색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짧지만 격정적이었고 풋풋하지만 강력한 사랑이기에 생기 있는 초록색으로 표현했다고 전합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샤갈 특유의 환상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유명한데요. 비극적인 사랑과는 달리 샤갈은 작품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전하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 중력 따위가 그들의 사랑에는 의미가 없다는 듯 하늘을 날고 있고, 베로나의 풍경이 흐릿한 것을 보면 현실의 제약과 갈등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주죠. 셰익스피어의 사랑이야기가 샤갈이라는 필터링을 거치면 어떻게 해석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를 떠올리지만, 사실 호안 미로도 이들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비교적 인기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서 조금 아쉬운데요. 호안미로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걸 소개하자면, "회화를 암살하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요. 전통적인 회화가 가진 관습과 틀, '잘 그려야 한다'라는 압박이나 아카데믹한 룰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거죠. 그래서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평이 있습니다. 호안 미로가 작품에서 주로 태양, 달, 별자리등을 소재로 사용했고, 자신만의 화풍을 특유의 상징적 모티브를 만들어 독특한 우주론을 표현했습니다. 작품의 해석은 그저 관람객들에게 맡겼고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무한한 상상력과 해석으로 자유롭게 관람하기를 원했다고 전합니다.
현재 해든뮤지움에서는 호안 미로의 <Star Scene>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역시나 그만의 특징적인 기호와 언어가 그려져 있었는데요. 20세기의 거장 호안미로가 원한대로 자유롭게 감상해 봤습니다. 우선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호안미로가 생각하는 우주의 모습을 그린 것 같았어요. 흩뿌려진 검은색 점들이 우주에 있는 성운 처럼보였고, 그 가운데는 마치 우주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구 너머에 있는 우주의 신비로운 세계를 호안미로의 식으로 그러면 이런 모습이구나.' 이렇게 느꼈습니다.
이외에는 그림 속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란색이 몬드리안을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수직과 수평선만 사용했던 몬드리안 작품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만, 작품 속 색채를 보면 몬드리안의 영향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았나 싶었어요. 그리고 우주선인지 아님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생명체가 별이 가득한 공간에서 유영하는 모습에서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도 떠올랐죠. 그 이유는 이 작품에서 유기적이고 생명력 있는 모습과 독특한 세계관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내자면 <Star Scene>을 감상하면서 떠오른 것은 바로 [몬드리안 + 알렉산더 칼더 = 호안미로]입니다. 혹시나 해서 너무 믿으실까 봐 노파심에 한번 더 적자면,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제가 만든 예술공식(?)이라는 점만 참고해 주세요.
다음으로 소개할 작가는 줄리안 오피입니다.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 되게 단순하고 친숙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현대인의 삶, 시각 문화, 예술의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과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 해든뮤지움이 아니더라도 줄리안 오피의 작품은 볼 기회가 많았었는데요. 처음 이 작가님의 작품을 접했을 때 '뭐지?'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본질은 결국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본질은 단순한데 이것저것 살을 붙이다 보면 복잡해지는 거죠. 단순해 보이지만 쉽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면 '덜어내는 과정을 몸소 보여준 것이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해든뮤지움에 있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들은 <Stripes>, <Puffer Jacket>, <Man Bun>입니다. 먼저 <Stripe> 작품은 단순한 패턴을 통해 많은 군중 속에서 각자의 미묘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해서 '패턴이 개인을 정의하는 방식'에 대해 보여주죠. <Puffer Jacket>은 패딩을 입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도시의 유니폼이자 갑옷처럼 보여 현대사회에서의 보호와 은폐 이중성에 대해 주목을 하고 작품을 만들었죠. 다음으로 <Man Bun>은 남자들이 단순히 머리를 묶은 스타일이 아니라, 특정 세대나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남성들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습니다. 줄리안 오피는 이 유행이 가진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로서의 속성을 강조합니다. 시간이 흘러 맨 번이 더 이상 유행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 시대의 특정 남성성'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는 유행이라는 일시적인 현상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규정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이 세 작품들을 보면서 '공통점이 뭘까?'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감상을 해봤는데요. 딱 핵심적인 부분만을 뽑아내어 미니멀리즘 하게 표현했다고 느꼈습니다. 일상적으로 인지는 하지만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하는 소재들... 해든뮤지움에 걸린 세 작품들은 줄리안 오피의 독특한 시각 언어가 다른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도 궁금하네요.
방금 영국출신의 아티스트를 소개했으니 미국출신의 아티스트 프란시스 베이컨을 소개할게요. 정말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이고 현대미술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분인데요. 작가님은 인간의 불안, 고통 그리고 존재의 본질을 왜곡된 인체와 강렬한 색채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주로 인물의 내면 심리와 육체에 초점을 맞추죠.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서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 하나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Triptych> 인데요. 제가 본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중에서 인물이 없는 작품은 처음이라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단 중앙에 하얀 시트가 보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조그마하게 꼭 피가 묻은 고기 덩어리도 함께 보이죠. 피가 묻어 있는 걸 보면서 '역시 프란시스 베이컨 작품답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실 작가님의 작품에서 피, 고기는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곧 죽음에 이르는 고기 덩어리라는 작가님만의 메시지가 있죠. 그래서 이 작품에서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해석해 보면, 고기 혹은 천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피의 얼룩은 생명력과 죽음, 폭력과 고통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또한 육체의 해체, 부패, 그리고 원초적인 본능을 암시하기도 해요. 그리고 뒤에 보이는 수직 구조물은 벽 또는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데, 이는 공간의 폐쇄성과 고립감을 나타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비극성, 육체의 유한성 그리고 폭력과 죽음이라는 아주 원초적인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소재로 다룬 작품들은 선호하지 않지만, 앞서 말한 바처럼 작가님의 인물이 나오지 않는 작품을 처음 본 게 저한테는 의미가 있어서 이렇게 다뤄봤습니다.
다음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화가 구드문드르 구드문드손의 작품 <<Nul ne sera soumis a la torture>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그 누구도 고문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에요. 제목에서부터 사회에 대한 저항적인 느낌이 가득해 보입니다. 사실 작가님은 주류 미술 시장의 유행에 크게 휩쓸리지 않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작품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특히 해든뮤지움에 전시된 이 작품은 작가님의 주요한 특징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어서 의미가 있죠.
우선 가장 큰 특징 중 하라는 강렬하고 쨍한 원색입니다. 기본 색깔들이 부딪히면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맛이 섞인 비빔밥이나 퓨전음식 같은 느낌이었어요. 확실히 원색의 사용으로 혼란스럽고 자극적인 느낌을 부각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어요.
작품 위에서부터 캐릭터들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벅스 버니와 군인 모자를 쓴 천사들이 우르르 몰려옵니다. 순수하고 대중적인 캐릭터와 종교적인 상징인 천사 그리고 군사적인 요소가 섞여있죠. 대중문화와 폭력, 그리고 위선적인 권력을 끄집어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양의 탈을 쓴 늑대(?) 혹은 '천사의 모습이지만 폭력이 숨어있는 건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에는 창살에 갇힌 인물과 스파게티가 보입니다. 자유가 박탈당했는데 웬 스파게티가 앞에 있는 거 보면 너무 아이러니하죠. 누군가는 고문과 억압을 받지만, 평범하거나 혹은 풍요로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순과 억압된 현실을 잘 나타내고 있어요. 그리고 총칼 든 무리들이 보이는데,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히틀러 사진을 들고 행진하고 있습니다. 그냥 대놓고 광기 어린 모습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폭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겉으로 봤을 때는 색채 때문에 예쁘고 재밌다고 보이겠지만,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혼란스럽고, 부조리하며 폭력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죠. 작품 속 캐릭터들의 표정에서 작가만의 유머러스함을 느낄 수 있었고 이번 기획전에서 유일무이하게 해학과 풍자가 담긴 작품인데요. 1991년에 만들어졌지만, 현대사회의 복잡함과 이데올로기의 충동 그리고 인권 문제는 지금도 이슈가 되는 부분이라 21세기에도 작품의 메시지가 통용된다는 생각에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영국의 팝아트 운동을 이끌었던 핵심 인물이자 예술계의 살아있는 전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엄청난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Catherin's walk>를 소개하겠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를 감히 제 글에서 소개한다는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작품도 작품이지만, 더 대단하다고 느꼈을 때는 바로 영국 왕실에서 수여하는 기사 작위를 거절한 스토리가 인상 깊었습니다. 거절을 하면서 남겼던 말이 "나는 어떤 종류의 상이나 작위도 소중하지 않아요."입니다. 명예나 외부의 평가보다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과 작업에 더 큰 가치를 두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죠. 사실 이 스토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스토리인 줄 알지만, 여기에 적은 이유는 저에게 이런 행동이 쉽지 않아서 존경하고픈 마음에 적어보았습니다.
<Catherin's walk> 작품은 1993~1994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화려했던 작가님의 캘리포니아 시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요크셔 시대의 전환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죠. 작품 제목에서 나오는 케서린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오랜 친구이자 뮤즈입니다. 호크니는 그녀에게 가장 편안함을 느껴서 함께 걷을 때 보는 익숙한 풍경,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모두 새로운 영감이었다고 전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 그렸던 작품들은 태양처럼 강렬함이 위주였다면, 요크셔는 부드러움이 포인트인데요.
작품은 해석하면 '케서린의 산책로'입니다. 작품을 보면 굽이진 길, 숲의 그림자 혹은 젖은 나뭇잎의 반짝임 등 추상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었어요. 강렬한 파란색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가 아닐까?라는 나만의 추측을 시작으로 붉은색과 오렌지색은 자연의 활기를 표현한 것처럼 보였어요. 복잡하게 얽힌 선들은 캐서린 인생의 다양한 굴곡을 상징하는 듯했죠. 그래서 작품을 본 후 느낀 바는 캐서린과의 산책을 통해 얻은 기억, 움직임 그리고 내면의 풍경을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인연을 담아낸, 깊은 의미를 지닌 예술적 산책로라 간주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기획전에서 트랜스아방가르디아(Transavanguardia) 이탈리아 신표현주의 작품이 전시되어 하나 소개할게요. 사실 트랜스아방가르디아는 처음 들어봤는데요. 지금 소개할 작가 산드로 키아는 1980년대 이탈리아 신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합니다. 트랜스아방가르디아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아방가르드를 넘어서는 예술'입니다. 이 당시에는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등 지적이고 시크하며, 때로는 난해하기까지 한 예술이 주류였기 때문에 이러한 주류를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했던 게 바로 신표현주의 예술운동이죠. 이 운동 덕분에 작품들은 다시 따뜻해지고 감정적이며 보다 감성적인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산드로 키아의 1997년작인 <Scena ď affetto>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붉은색 계열의 인물과 푸른색 계열의 배경에서 색채대비가 인상 깊었습니다. 미니멀리즘과는 달리 자유롭고 감정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작가님은 수많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원초적인 것에 대해 항상 갈망했다고 전합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어깨의 기울기에서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애정'이 보였죠. 그것은 연인 간의 뜨거운 사랑일 수도 있고, 오랜 친구의 끈끈한 우정일 수도 있으며, 혹은 가족 간의 깊은 유대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관계일지는 관객분들이 감상하면서 한번 꼭 느끼길 바랄게요.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내는 저로서는 크게 와닿았던 점이 있는데요. 결국 인간은 서로의 온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작품이 정말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강렬하면서도 따뜻하게 표현을 해서 그런 거 같아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렸던 인간적인 감성과 공감대를 다시 선물해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현대미술계에 악동이자 거물인 데미안 허스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로 직설적이고 충격적으로 다루는 아티스트인데요. 작품들이 충격적인 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화가입니다. 주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죽음, 부패, 질병 같은 주제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강제로 마주하게 만드는데요. 삶의 유한성, 인간의 존재론적 불안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돈과 명예로 포장하려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꼬집었죠.
현재 해든뮤지움에서는 데미안 허스트의 <For the love of god, laugh> 실크스크린 판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사실 'laugh'라는 단어는 붙지 않지만, 워낙 주목을 받아 감탄사인 '맙소사'가 붙었다고 전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백금 해골입니다. 2007년에 이 작품이 출품되었을 때, 한화 약 983억 원에 팔려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뉴스는 정말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죠. 데미안 허스트는 죽음의 상징인 해골에 어마무시한 부와 영원함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를 통해 삶과 죽음, 돈과 가치에 대한 극단적인 질문을 작품을 통해 던졌습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논란과 이슈를 통해 작가 자신의 브랜딩을 정말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생명윤리, 작품 진위 그리고 가격 논란 등 그러한 자극적인 이슈들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사실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예전에 아는 큐레이터 분하고 데미안 허스트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게 기억이 나는데요. 그분은 의견은 "자고로 아티스트라면 본인의 작품으로서만 실력과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알려야지 상업적으로 자신을 브랜딩 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저에게는 아주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의견을 말씀해 주셨어요. 제 성격상 논쟁이나 찬반토론을 좋아하지 않아 그분에게 제 의견을 크게 어필은 하지 않았어요.
저는 특정 관점을 선호한다기보다는, 이러한 현상을 현대예술 안에 있는 하나의 주류(主流)로 이해를 했습니다. 작가님의 방식은 많은 미술애호가들에게 분명 불편함을 준거는 맞지만, 데미안 허스트가 아니었다면 논의되지 않았을 주제라고 봅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인 만큼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데미안 허스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이는데요. 물론 작품 외적인 요소로 브랜딩 하는 방식이 모든 예술가에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데미안 허스트에게는 작가님의 작업 방식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여겨집니다. 현대미술에서는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예술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요?
이제 마지막으로 조각가를 소개할 텐데, 바로 이고르 미토라이입니다. 이고르 미토라이는 현재 고인이 되었지만,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명성을 가진 조각가인데요. 사실 저는 조각가님이 워낙 유명해서 알고는 있었는데 여기 해든뮤지움에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조각가님의 작품은 외국에 가야만 볼 수 있겠구나 했었는데 여기에서 봐서 너무 기뻤습니다. 해든뮤지움에 있는 작품의 제목은 <이카루스의 토르소(Torso di Ikaro)>입니다. 조각가님은 주로 고대 그리스, 로마조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을 보면 팔, 다리 그리고 머리가 없는 불완전한 형태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고르 미토라이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파편화된 인체' 표현 방식인데요.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나 부서진 고대 유물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카루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 날개가 녹아 추락한 비극적인 인물로 신화 속에서는 묘사되는 것처럼 온전한 모습이 아닌 추락 후의 모습으로 봐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작품에서 조각가님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신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처럼 인간의 욕망과 오만 그리고 불완전함인데요. 특히나 작품을 파편화하면서 이러한 메시지가 더욱 강조되어 거의 파멸에 가까운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특히 고전과 현대가 매우 조화롭게 표현이 되었다고 보이는데요. 예를 들면, 매끄러운 곡선과 근육의 표현은 고전적인 미학을 따르지만, 손상되고 불완전한 모습은 현대적인 감각을 따르고 있어서 시대를 초월하는 매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왜 신은 인간을 욕망덩어리로 만들어 우리에게 이러한 고통을 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덧없다고 느꼈습니다. <이카루스의 토르소(Torso di Ikaro)> 는 현재 해든뮤지움의 야외공간에 설치가 되어있어요. 그래서 거울로 마감된 건물 외벽에 비치면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요시모토 나라, 제프 쿤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등 정말 세계적인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매번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적을 때마다 항상 '이번에는 짧게 적어야지.'라는 다짐을 하고 글을 적으려고 하는데 생각이 많은 건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 항상 글이 매번 길어지네요.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자아성찰을 해봐야겠습니다.
이번 기획전은 사실 강화도에 미술관을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그저 호기심에 다녀와야지 이런 마음으로 갔다가 거장들의 작품을 보면서 옛 추억에도 잠기고 21세기에도 유효한 작가들의 메시지를 보면서 단순히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품들이 각기 다른 시대와 스타일을 대표하지만, 묘하게 서로 연결되는 지점들도 있다고 느꼈는데요. 거장들이 시공을 초월해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답하는 것처럼 보였죠. 예를 들면, 마르크 샤갈은 그의 뮤즈인 벨라를 환상적인 색채와 몽환적인 느낌이라면,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의 뮤즈 케서린을 일상의 풍경을 개인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했죠. 서로 다른 시대이지만, 둘 다 결국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본질을 탐구하려는 예술가의 자세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데미안 허스트나 제프 쿤스 같은 현대미술의 아이콘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강력했죠. 대중문화와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예술에 대한 정의를 도발적으로 묻는 방식이 기존의 예술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불편함 자체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기획전을 보면서 나는 여전히 현대미술에 있어서 모르는 아티스트들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예를 들면 낸시 그레이브스, 산드로 키아 그리고 폴 젠킨스 등등..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을 보고 전시리뷰 썼던 것처럼 이번 전시도 정말 공부가 많이 되었던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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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mporary Art, Courtesy of Haeden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