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다! 있는 그대로의 고요(This is it)

비움이 건네는 뜻깊은 위로

by 민경우

'비움의 미학' - 비움이라는 건 '정서적 여백', 쉼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지금 제가 쓰고자 하는 전시리뷰도 미니멀리즘 전시인지라 예전에 제가 썼던 문장을 한번 인용해 봤습니다. 올해 1월에 다녀온 <Donald Judd: Furniture> 전시를 다녀온 후 미니멀리즘 예술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은 사물의 본질과 공간의 본질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번에 제가 다녀온 전시는 정서적 여백과 쉼을 느낄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성수 갤러리아 포레에 위치한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열린 <如, this is it>을 다녀왔는데요. 서양의 미니멀리즘 거장과 한국의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단체전입니다. 전시회 타이틀을 직역하면 '이게 전부다.' 혹은 '있는 그대로(如)'라는 의미이죠. 이 타이틀에서 미니멀리즘 특유의 당당함과 무심함, 때로는 불친절함까지 느껴지는 묘한 '힙'함이 느껴졌습니다. 굳이 뭘 설명하려고 들지 않고 당당함과 무심함 그리고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지만, 전시를 다 관람한 후에 전시서문을 읽어보고 작품들을 곱씹어보니 어쩌면 배려 일수도 있겠다고 여겨졌어요.


<如, this is it> 전시를 연 더 페이지 갤러리 전시전경. 전시 초입 부분.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전시 서문을 요약하자면, '불교의 사상과 괴테의 철학을 빌려, 사물을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 바라보라고 말하죠. 인위적인 표현을 덜어낸 자리에 사물 본연의 존재감이 스스로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단색화와 미니멀리즘이 공유하는 깊은 사유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고 단지 그 자리에 존재하는 예술을 통해, 동서양의 철학과 현대 미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존재를 새롭게 감각하는 경험을 선보인다.'라고 전합니다.


<如, this is it> 전시를 연 더 페이지 갤러리 전시전경.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Conditional Planes 21-315, 21-310>, 227.3cm x 162cm, Acrylic on Canvas, 2021,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첫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최명영 작가의 <Conditional Planes>(평면 조건) 연작입니다. 단순히 물감을 채우기보다는 무한 반복의 행위와 캔버스가 가지고 있는 조건, 즉 행위와 물성이 만나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수행적인 작업에 몰두하셨죠. 50여 년간 이 본질적인 질문에만 집요하게 연구했다고 전합니다. 작가님은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하고, 그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또 다른 물감을 겹쳐 바르거나 혹은 물감을 긁어내는 행위를 무수히 반복하시면 작업하십니다. 그래서 이 행위가 바로 흔적의 시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어요. 흰색과 베이지색의 엇갈린 문양들은 작가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린 게 아닙니다. 바로 층층이 쌓아 올리다가 나온 색인 거죠. 그러므로 노동과 시간이 물감과 캔버스를 만나 스스로 드러낸 흔적입니다.


작가님은 이 작품 앞에서 작가가 느꼈던 감정 혹은 의미를 거창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모순적인 질서를 피부로 느끼길 바랄 뿐이죠. 실제로 보면 겹쳐 바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그 미세한 물감의 층에서 깊이감이 느껴졌어요. 흰색과 베이지색의 대비가 신비로웠고, 재료의 본질적인 색과 질감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에서 비움의 미학, 정서적 여백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즉, 제가 이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는 가변성인데요. 보는 각도와 조명에 따라 물감의 미세한 틈새와 요철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품을 한참 보면서 원목 가구의 마감 작업장처럼 보이기도 했고, 지난겨울에 마주했던 '새벽 서리'도 떠올랐어요. 밤새 무수히 내려앉은 서리가 만들어낸,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포근해 보이는 그 투명한 서리가 질서 있게 나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죠. 마치 새벽녘, 세상의 모든 소란을 잠재우며 내려앉은 고요한 서리밭처럼, 우리에게 해석의 짐을 지우지 않는 가장 순수한 여백을 선사받은 것 같았습니다.




<The White 2401-1>, 180cm x 180cm, Oil on Canvas, 2024,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다음은 박훈성 작가님의 2024년작 <The White 2401-1>입니다. 정말 이번 전시의 주제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비어 있음'을 압도적인 밀도로 보여주는 작품이죠. 작가님은 캔버스 위에 흰색을 칠하고 다시 긁어내거나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흔히 말하는 '흰색' 관념 너머의 층위를 쌓아 올립니다. 단순히 하얀 그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작가님의 의도는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담아낸 작품을 표현한 거 같습니다. 마치 전시장 전체의 공기마저 정화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보였죠.


작가님의 백색 평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녘의 자작나무 숲이 떠올랐습니다. 캔버스 위를 가로지르는 미세한 수직의 결들이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자태를 드러낸 나무의 숨결 같기도, 혹은 하늘에서 소리 없이 내려앉는 보슬비 같기도 했어요. 이 미세한 결들은 대기 중의 수분을 가득 머금은 채 수줍게 흩뿌려는 것처럼 보였죠. <The White 2401-1>은 관람객에게 거창한 의미를 강요하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모든 소음이 잦아든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비가 한 줄기씩 내리는 찰나의 풍경을 내어줄 뿐이죠. 비워낼수록 밀도는 높아지고, 덜어낼수록 감각은 선명해집니다. 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정서적 여백’의 절정이라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작품을 통해 마음이 저절로 차분해지는 경험을 해서 이렇게 한 번 소개해봤습니다.




<Untitled>, 53.3cm x 53.3cm, Acrylic on Red vinyl Plate, 1971,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이번에는 해외 작가님의 작품을 소개할게요. 로버트 라이먼은 미니멀리즘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실재론자라고 불렀던 독특한 작가입니다. 작품은 1971년에 만들어진 <Untitled>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님의 철학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기에 이렇게 소개하게 되었는데요.


보통의 많은 작가들은 어떤 것을 그릴지 고민할 때, 로버트 라이먼은 '흰색 물감이 화면에 어떻게 안착하는가?'라는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질문에 평생을 바쳤다고 전합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하얀 캔버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빨간색 비닐 판 위에 흰색 물감이 발려진 방식이고 그 종이를 벽에 고정하기 위해 사용된 짙은 색 테이프를 사용했죠. 그래서 이 작품은 하얀 캔버스에 네 개의 와인색 물감이 칠해진 작품이 아닙니다. 저도 사실 그런 줄 알았지만, 그것은 그저 저의 환상이었고 실제의 작품은 비닐 판 위에 흰색물감이 얹어졌고, 그 위에 네 모서리의 짙은 색 테이프 심지어 액자 안의 그림자까지도 모두 작품의 일부입니다. 사실 흰색물감이 너무 잘 칠해져 있었고, 테이프가 물감처럼 보이게 연출을 잘해서 작가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할 뻔했어요. 로버트 라이먼의 의도는 '예술은 마법이 아니고 그저 종이 위에 물감이 발린 실제 사물이다.'라는 사실을 직시하기를 원했죠. 작품을 감상하면서 왜 실재론자라고 불렸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 쓰고 싶은 참신한 내용이 많지만, 저의 시선에서는 마치 가구 제작을 위해 벽에 임시로 붙여둔 '가장 정직한 설계도'가 떠올랐어요. 화려한 완성품의 이미지를 뽐내는 대신, 종이의 두께와 물감이 얹힌 무게,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고정장치(테이프)의 힘을 그대로 노출하죠. 이게 전부다(This is it)라는 전시 제목처럼 작가님은 예술에서 모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사물이 존재하는 정직한 방식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아마도 화려한 수사보다 재료 본연의 울림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떠한 작품보다 더 단단하고 실재적인 위로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네요.





<如, this is it> 전시를 연 더 페이지 갤러리 전시전경.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Elevational Weights>, 207cm x 173cm, Paintstick on Paper, 2010,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면 미니멀리즘의 거장 리처드 세라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거대한 강판을 이용해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작가입니다. 사진에 있는 작품은 작가님의 평면 작업인 <Elevational Weights> 시리즈 중 하나인데요. 조각이 평면 위에 어떻게 무게와 중력을 박아 넣었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멀리서 보면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 위에 그저 물감을 칠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페인트 스틱'이라는 고체 물감을 열로 녹여 화면 위에 짓이기고 압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이 고체물감을 칠한 게 아닌, 쌓아 올려서 밀어 넣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죠. 그래서 벽면에 걸린 검은 사각형은 마치 거대한 강철판이 관람객들에게 눌러오는 듯한 물리적인 압박감을 선사합니다. 즉, 중력을 평면으로 옮긴 것이죠. 이 작품에서 포인트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떨어질 것 같은 긴장감' 혹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면 위에 동적인 에너지를 부여했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압박감 때문인지 저는 관람하면서 빛조차 흡수해 버리는 '블랙홀'처럼 보였는데요. 보통 그림이라는 게 보여주기 위해 발산하는 느낌이 있다면, 이 작품은 반대로 그냥 다 흡수해 버리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에 대해 해석하는 자유를 뺏긴 느낌을 받았고 '그냥 바라만 봐'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 같았어요. 어쩌면 이번 전시에서 가장 묵직한 대답을 해주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ccumulation-2398>, 130cm x 130cm, Korean paper on Canvas, 2023,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격자무늬가 있는 작품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한국 현대 조각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박석원 작가님의 <Accumulation-2398> 인데요. 이 작품은 작가님이 평면 위에서 일궈낸 끈질긴 '축적'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정교한 격자무늬를 보면, 단순한 그림이 아닌 하나의 '수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속에 이러한 것을 담아내지 못해 너무 아쉬운데요. 여든이 넘어신 나이에도 이렇게 치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작품을 멀리서 보면 차가운 격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무수히 많은 한지 조각들이 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한지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것을 다시 평면 위에 질서 있게 붙여나간 흔적이 보입니다. 마치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작품 속 격자는 기계적인 선이 아닌, 한지라는 부드러운 물질이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며 만들어내었습니다. 한 조각 한 조각 겹치면서 생겨나는 미세한 높낮이와 그 사이의 그림자는 평면의 캔버스에 깊이감을 부여합니다. 이것이 바로 박석원 작가님이 평면을 다루는 독특한 방식이죠. 한지는 예부터 숨을 쉬는 재료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한지를 반복적으로 쌓음으로써 물질이 가진 가벼움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수행의 무게를 채워 넣었다는 게 이 작품을 감상하는 포인트입니다. 거장의 노련한 손길로 어떠한 과장된 형태 없이 '반복' 그 자체만으로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작품을 감상하면서 저만의 느낀 점을 적어본다면, '백색의 성벽'을 보는 듯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다소 차갑게 느껴졌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벽을 이루는 벽돌처럼 단단하게 맞물린 한지의 결들이 드러나죠. 이 성벽은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가로막기보다는 외부의 소음과 본인만의 철학을 지켜 나가겠다고 의지를 보여주는 정신의 요새를 상장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위에 소개했던 작가들처럼 화려한 기교는 없습니다. 그 대신에 오직 반복적인 노동과 정직한 재료의 물성 그대로 쌓아 올림으로써, 침묵하게 만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이 백색의 질서 앞에서는 저의 피로를 잊게 하고 고요한 본연의 모습인 진짜 여(如) 어떤 건지 보여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Square 250302>, 91cm x 91cm, Acrylic and graphite with linen, 2025, 출처. 더 페이지 갤러리.


마지막으로 황정희 작가님의 작품 <Square 250302>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명상적인 바이브를 띠는 작품이라고 전합니다. 이 평면 위의 그려진 작품은 모든 무게를 털어내고 남은 숨결의 층위를 나타냅니다. 사진에서는 보기 어렵지만, 실제로 보면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의 선들과 미세한 색조의 변화가 보입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였는데요. 마치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빛이나, 잔잔한 수면 위에 아주 작은 파동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님은 감정의 과잉을 배제한 채, 캔버스에 절제된 평온을 그렸죠. 작품에 있는 수평의 띠들은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구도라고 전하는데요. 이를 테면, 지평선과 같은 구도인 거죠. 그래서 마음의 소음을 가라앉히는 시각적 명상을 하게끔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고 작품을 감상했을 때는 조선시대의 악보 정간보가 생각이 났습니다. 비록 격자는 없지만, 비어진 칸에는 명암의 농담을 채워 소리 없는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죠. 비워낼수록 맑아지고 덜어낼수록 깊어지는 이 백색의 악보 위에서, '눈으로 듣는 연주'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의 끝자락에 마주한 이 고요한 리듬은 이번 전시에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노래이자 가장 사려 깊은 위로가 아닌가 싶어요.





지금까지 총 6점의 작품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전시장에는 마음에 와닿는 작품들이 더 많았지만, 각 작가의 세계관을 가장 잘 대변하는 한 점씩만을 골라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전시의 타이틀이 내뿜던 특유의 무심함과 '힙'한 불친절함은 사실 관람객에게 건네는 '자유'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 억지로 해석해 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순간, 작품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저에게 리처드 세라의 '블랙홀'은 압도적인 질량으로 잡념을 빨아들여 우리를 침묵의 심연으로 이끌었고, 박석원의 '백색 성벽'은 지독하리만큼 정직한 노동의 흔적을 통해 수행과도 같은 쉼을 제안했죠. 그리고 황정희의 '정간보'는 캔버스 위에 수 놓인 수평의 리듬을 통해 일상의 소란을 잠재우는 고요한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비움의 미학은 단순히 공간을 비워두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한국의 단색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견한 것은 불필요한 껍데기를 걷어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있는 그대로(如)'의 평온함이었죠. 그리고 '이게 전부다(This is it)'라는 선언은 불친절하다기보다는 가장 맑고 단단한 정서적 여백이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 전시가 남긴 고요한 울림이 아마도 그 어떤 긴 설명보다 따뜻한 위로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Courtesy of The Page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