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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뚭씌 Oct 16. 2023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

윌리엄 프리드킨


평점:★★★★★


<엑소시스트>(1973)는 영화를 틀기 직전까지 나의 가슴을 졸이게 했고,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본다는 사실도 잊은 채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것은 ‘아니 1973년 작품(원형)이 지금도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거야?’였다. 엑소시스트는 시리즈로 4편이나 리메이크되고, 지금도 대단한 공포영화로 회자되는 명작이다.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나는 계속해서 리메이크되고 회자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을 이 수업 덕분에 지금에서야 접했다는 것이 아직도 분해 손이 떨린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1973년 작품에서 ‘왜 여자아이가 부마자로 설정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엑소시스트>의 플롯이 왜 이렇게 성공적이었는지에 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공포’란 ‘웃음’과도 같아서 우리가 사회에서 무엇을 타자화시켜 희화화시키는지, 혹은 어떠한 것을 은폐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내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공포 영화에서는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이 억압하고 금기시하던 것이 혐오스러운 동시에 매혹적인 대상으로 드러난다. 1973년의 작품에서 ‘왜 여자아이를 악마의 빙의 대상으로 삼았는가?’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 두 가지 배경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1970년대 시대상과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안병기 감독은 씨네21 칼럼에서 <엑소시스트>가 미국 사회의 붕괴된 가족의 단면을 보여줬다고 비평하였다.[1] 주인공 ‘리건’의 아버지 부재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정신적 상처를 공포 영화로 풀어냈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1970년대는 1980년대 보수화로 넘어가는 과도기로 의미 축소되었지만, 진보와 보수의 흐름이 교차하고 충돌했던 역동적인 시기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되었다.[2] 1970년대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다. 동시에, 많은 미국인이 공적 생활에서부터 사적인 영역에 집중하여, 공동체나 가족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태도가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결혼율과 출산율의 저하와 이혼율 상승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혼가정의 외동딸 ‘리건’은 여배우인 어머니와 유대관계가 각별한 정서적 과잉 상태에 머문다. 그리고 그 전인 1960년대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의 새로운 학생 운동 혹은 급진주의 정치의 출현은 새로운 세대 형성과 관련된다.[3] 1968년 대격변의 세계 혁명은 학생(청년층)이 주도하였다. 이 사실은 미국에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전까지 학생들은 주로 기성 질서의 일부이자 옹호자였기 때문이다. 1946~1964년까지 유례없는 경제 호황 속에서 미국은 높은 출생률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60년대 초 인권 활동가의 첫 번째 물결을 이룬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인에게 ‘어린아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필자는 이와 관련해 ‘어린아이’가 신세대이자 새로운 혁명을 가져올, 기성세대에게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또한, 당시 영화가 어린이 혹은 청소년을 공포의 대상으로 규정했던 또 다른 이유는 ‘어린아이가 사회의 억압되고 타자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어른의 두려움을 투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4]


그렇다면 왜 ‘남자아이’도 아니고 ‘여자아이’일까? 이것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해 이해해야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의 선악의 구분은 뚜렷하다. 기독교의 ‘선’이란 ‘절대적으로 선한 유일신의 질서에 부합되느냐’이며, 반대로 ‘악’이란 진리 그 자체인 유일신에 대립하여, 유일신의 질서가 부재한 것을 악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인간의 선악의 시작은 성경의 첫 부분, ‘창세기’에 있다. ‘창세기’에서는 하와(여성)가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권한다. 이것이 오컬트 영화 속에서 ‘여성’이 주로 부마자인 이유로 이어진다. 뱀의 유혹에 빠진 하와처럼, 여성은 악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인식이 창세기에서 기원하였다.[5] 그리고 원죄를 가진 인간은 스스로 악을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절대적 타자인 신과 그 신을 섬기는 사제에 의해서만 추방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부마자는 ‘여성’으로 설정되었고, 결국 악령이 빙의하는 대상은 12살짜리 여자아이 ‘리건’의 몸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1970년대는 공동체에서 개인주의로 넘어가며 가족이 해체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12살짜리 아이가 악령에 시달리는 서사는 악이 내 아이를 사로잡을지도 모른다는 구체적인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영화는 어머니와 아이를 구하여 가족의 가치를 재확인시켰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원지적 이미지를 공포 장르에 맞게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1973년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본 후 구토를 한 관객들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비체화’와 ‘경계’ 이론을 토대로 바바라 크리드는 피, 고름, 소변 등 육체의 폐기물, 그리고 사체를 언급하며 비체화된 소품들이 주는 공포를 분석하는 틀을 제시했다. 창문에서 추락해 바닥에 흐르는 피, 목이 180도 돌아간 시체, 리건의 오줌, 십자가에 묻은 리건의 피, 악마가 빙의해 뱉어내는 초록색 토사물 등 영화 속에서는 갖가지 혐오스러운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멀리해야 하고, 내 속에서 몰아내는 이질적인 ‘자기’ 존재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죽음을 향한 존재인 우리 자신 안에 각인된, 견딜 수 없는 무엇과 대면하며 역겨움 속에서 알 수 없는 매혹을 느낀다. 억압된 것이 귀환하는 것. 이러한 비체적 이미지는 오늘날 공포 스릴러 영화를 통해 강력하게 분출되고 있다.


영화의 재미있는 해석은 ‘리건’과 ‘카라스 신부’가 데칼코마니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다.(황혜진 112.) 두 인물 모두 아버지가 없는 가정 출신이며, 어머니와의 유대가 각별했다. 그리고 리건에 머물러 있던 악령은 곧, 카라스 신부에게 넘어간다. 카라스 신부는 악마에게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 창밖으로 몸을 던져 악령을 현실 세계에서 추방한다.


<엑소시스트>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는 플롯을 구성했을까? 로버트 맥키의 「STORY」와 스네이퍼 블레이크 「SAVE THE CAT!」을 바탕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영화는 10분 이내에 영화 속 세계관(내적 규칙)으로 진입한다. 메린 신부가 악의 형상을 발견하고, 리건의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장면까지 10분 안에 설명되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이어, 리건의 집에 사건의 실마리인 위자 보드(강령술 도구)가 등장하며 발단이 시작된다.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리건이 활짝 웃는다. 뒤이어 전개로 이어진다. 점점 밤에 들리는 소리가 커지며, 성모상의 불경스러운 모습이 등장하고, 리건은 진찰 중에 12살이 뱉을 수 없는 말을 토해내고, 파티에서 오줌을 싸는 등 리건의 상태는 점점 악화된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 도달한 ‘맥닐’은 병원을 전전하다, ‘엑소시즘’이라는 기회를 얻는다.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주어지는 이 시퀀스가 위기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카라스 신부’는 ‘엑소시즘’을 시행할지 고민하고, 절정에서 엑소시즘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결말에서 선이자 ‘구세대’를 상징하는 메린 신부는 죽음을 맞이하고, 카라스 신부는 자신을 희생하여 엑소시즘에 성공하며, ‘신세대’ 리건은 살아남는다. 영화에서 오프닝 이미지의 리건과 마지막 이미지의 리건의 변화는 확실하다. 회복된 리건의 얼굴에는 더 이상 ‘순진함’이란 없다. 과거로 완벽하게 회귀하지 못한 것이다. <엑소시스트>는 데칼코마니인 ‘리건’과 ‘카라스 신부’, 두 주인공을 배치하여 교차하며 지루하지 않게 플롯을 구성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엑소시스트>를 샷 바이 샷으로 분석해보고 싶다.



<엑소시스트>는 1973년, 미국인이 가지는 집단적 무의식의 공포를 담고 있다. ‘여성’과 ‘아동’에 관한 공포를 내재하고 있고, 필자는 그것을 미국의 1960년대~1970년대의 시대상과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읽어냈다. 또한 영화 속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된 원지적 이미지를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플롯 구성을 로버트 맥키 「STORY」를 중심으로 소설 구성 단계를 분석해보았다. 아랍권 이미지의 인종차별적 이슈와 ‘맥닐’ 묘사의 성차별적인 이슈가 있지만, 이 작품은 1970년대 ‘원형’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현재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이전 B급 장르로 취급되었던 공포물(좀비, 오컬트 등)이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의 공포 장르의 발전이 기대된다.










[1] 안병기(2007.09.14). [내 인생의 영화] <엑소시스트>, 씨네21

[2] 이주영.(2017).1970년대 미국 인권정치의 등장.미국사연구,46(),249-282.

[3] 안효상.(2007).1960년대 미국의 새로운 세대 형성과 학생 운동.인문논총,(58),41-68.

[4] 황혜진.(2001).[영화(1)] 끝나지 않은 공포, 혹은 『엑소시스트』의 귀환.공연과리뷰,33(),109-114.

[5] 임대희.(2019).동서양 오컬트 영화 속 악(惡)의 이미지 스토리텔링 복합 연구 - 〈월하의 공동묘지〉(1967), 〈엑소시스트〉(1973), 〈링〉(1998)을 중심으로 -.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37(4),33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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