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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e Jun 03. 2021

2. 피아노는 때려 부셔야 제 맛이지

윤이상, 동양의 음악을 서구의 언어로



윤이상: Together (1989) 2악장




윤이상의 음악엔 늘 글리산도가 존재한다. 음과 음이 점으로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음이 하나로 온전하게 연결되어 연주가 가능한 글리산도라는 기법은 위의 악보에서 찾아볼 수 있듯 그의 음악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의 아이덴티티와 같은 것이었다. 음과 음 사이를 사선의 선으로 표기한 글리산도는 그가 늘 중요하게 말하던 동양의 선(line)에서 따온 그의 음악에 있어 제일 독창적인 특징인데, 사실 우리나라 국악기가 묘한 꾸밈음과 음과 음 사이를 연결하는 밴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필연적으로 왜 이런 기법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중국과 한국의 고전음악은 원칙적으로 단음적이며, 그의 음악적인 흐름은 선(Linie) 적입니다. 아시아의 음악적 미학은 주로 5개의 주요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5개의 음은 언어가 되기 위해 하나하나의 음으로 고립되어져, 다른 음들과 함께 음의 연속으로 연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음은 처음 시작에서부터 사라질 때까지 변화의 법칙에 일관되어집니다. 이것을 저는 도교에서 말하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윤이상 <정중동>




중학교 음악시간에 열심히 불어왔던 '단소'라는 악기에 '태 황 무 임 중' 이라는 5개의 음이 존재하던 걸 기억하는가?

서양 음악이 크게 7개의 음으로 음악을 구성하는 것과는 달리, 동양 음악은 우주 만물의 변화를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의 다섯 가지 기운으로 압축해 설명하려고 하는 음양오행 사상을 이용하여 5개의 음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이 동양의 5 음계는 서양 음계와 달리 화음을 내기 어려운 간격의 음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서양 음악이 일찍이 대위법에서부터 화성이 발전되어 온 것과는 다르게 동양의 음악이 전적으로 하나의 선적인 흐름으로 발전되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5 음계라는 매우 신비로운 음계를 이용한 윤이상의 예술 세계관에는 도교라는, 특히 기독교를 믿어왔던 서양인들의 눈에 매우 동양적이고 이국적일 느낌의 철학이 존재하는데, 아마 파란 눈의 백인들에게는 이런 처음 보는 동양의 음악 이론과 철학의 조화가 완벽하다고 느낄만했을 것이다. 그가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는 자리에서 그의 유럽에서의 작곡 발전상에 관하여 연설을 했을 때, 그는 그의 음악이론 중 가장 핵심적인 존재인 Hauptton을 이용해 도교에 관하여 이런 말을 한다.




“ 꾸밈음, 장식음, 글리산도, 음색의 뉘앙스, 그리고 다이나믹 등은 음(-)과 양(+)의 원칙과 같이, 정(靜: 움직일 정) 내지 동(動: 움직일 동)의 상관관계로써 작용하는 과정의 한 부분이다.

도교적인 변화의 개념은 항구적인 변형을 추구하며, 그래서 각개의 음은 음을 내기 시작하자마자 이미 그 속에 자신의 진행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것이 전개됨으로써 언어의 성격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개의 음은, 소우주로서의 부분으로 전체를, 즉 대우주를 반영하는 것이다. “




즉, 음을 일단 시작하면 그 음 안에는 무한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음이 어디로 진행되고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말은 어렵지만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간단하다. 대금은 한 음을 길게 호흡하며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무한의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정’ 중 ‘동’이다. 그리고 그는 선(line) 적인 음의 흐름이라는 동양의 전통을 서구의 언어를 사용해 표현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동양의 전통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서구의 언어라는 것이 바로 글리산도 기법이었던 것이다.



대금독주  '청성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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