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여림과 아티큘레이션
18년 초가을쯤. 독일에서 유명한 마스터 클래스 축제에 간 적이 있었다. 45분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평균적으로 학생이 악기를 잡은 시간은 고작 처음 25분가량. 그곳에서 교수는 학생에게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 말로 설명하기를 종용했고, 말로 설명하지 않고 악기로 보여주려는 사람들을 불편해했다. 음악에 대한 고민과 설득력 있는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음에 불과하다는 게 교수의 지론이었다. 특히 그 말이 가장 와 닿았던 시간은 베토벤의 소나타를 공부하던 시간이었는데, 교수는 음 하나하나의 의미를 학생에게 물었다. 암담함 속에서 가지고 있는 하나의 불꽃이 어떻게 사그라드는지, 나아가는 결국 어떻게까지 승리의 테마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베토벤 초기의 어느 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은 사실 베토벤 자신이 'avec un Violino ad libitum'이라고 표제를 작성한 출판사에 직접 'avec un Violon obligate'으로 바꿔달라고 정정 편지를 보냈을 만큼, 초기 베토벤 작품은 피아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마스터클래스에서도 교수는 학생의 멜로디보다는 피아노의 음악을 더 많이 설명했었을 정도로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그가 직접 연주하던 악기의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정작 그것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음악을 듣자니 과거의 나는 뉘앙스만 안 채로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애매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은 복잡하고 어려운 테크닉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악보만 들여다보면 포르테와 피아노가 친절할 정도로 많이 써져 있는 단순한 음악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악보에 적혀 있는 대로 이곳을 작게, 크게, 부드럽게, 이런 식의 해석 방법으로는 오히려 이 곡이 무슨 곡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 베토벤의 음악은 신을 위해서 음악이 존재하던 중세시대와, 왕과 권력자들을 위해 음악이 존재하던 바로크 시대를 거쳐, 신앙과 인류의 구원, 고난, 공허함, 환희, 그리고 개개인의 욕망 등. 하나의 인간의 욕망과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인류 전체 공통의 목적을 표현할 수 있던 거의 유일한 음악이었다. 그리고 심플하고 명확한 구조 속에서, 인류의 거의 모든 역사를 함축하는 듯한 거대하고 복합적인 내용의 그의 작품은 여전히 현재에 이르러서도 베토벤이 가장 존경받는 음악인으로 남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베토벤의 곡을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본 사람이라면, 음악이 그저 화성이 진행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또는 갑자기 큰 소리로 연주되는 것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과거의 내가 베토벤의 음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거의 모든 곡에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갑작스레 연주하게 함으로써 음악의 감정을 극대화하고, 듣는 사람의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곡을 작곡한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강물 속에 묵직한 장애물이 곳곳에 박혀 있는 것과 같은 베토벤의 음악은 그저 즐겁고 생각 없이 듣기에 좋은 음악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수많은 작곡가들 사이에서 음악의 악성이라고 칭송받는 데에는, 그의 음악이 과거 귀족들의 즐거움을 위해 작곡되던 음악들과는 달리 그의 곡은 더 농밀한 감정의 표현과 넓은 의미의 철학이란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은 군더더기 없고 투명한 자연의 음악을 토대로 본인의 생각과 의도를 적절히 혼합시켰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음악이라는 분야가 당시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위상처럼, 더 넓은 스펙트럼의 예술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게 된다.
고전시대의 모차르트나 낭만시대의 쇼팽과는 달리 시대가 바뀌던 과도기에 걸쳐있었던 베토벤의 음악은, 의도적으로 가공된 것 같은 거친 음색들과 그와 동시에 덜 다듬어졌지만 통통 튀던 과거의 음색들을 동시에 표현한다. 또한 베토벤은 음악을 굳이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도 스스로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셈여림과 아티큘레이션을 섬세하게 이용하는데, 사실 베토벤 음악의 캐릭터란 너무나도 명확해서, 우리는 생판 처음 들어보는 곡이라 할지라도 그 곡 안에서 아름답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셈여림을 반복해서 여러 번 마주친다면 아, 이건 베토벤 곡이네.라고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이다. (모차르트의 곡도 종종 갑작스러운 셈여림을 요구하지만, 프레이징 별로 셈여림을 조절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듣기 편안한 편)
셈여림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는 클래식 작품이라는 게 말 그대로 워낙 오래전에 작곡된 곡이다 보니, 작곡 당시에 주로 사용되던 악기가 무엇인지, 그 곡이 주로 연주되는 장소가 어디였는지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초기 고전 시대의 음악과 낭만 시대의 음악은 같은 셈여림을 표기했더라도 연주되는 볼륨의 크기가 절대적으로 다른데, 그 이유는 크게 2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초기 고전 시대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악기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피아노가 아니라, 하프시코드(쳄발로)였기 때문이고, 나머지는 당시 연주회가 상위층을 위한 소규모의 연주회였거나, 아니면 극장에서의 성악(오페라) 위주의 연주 형태를 가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기와 후기의 고전 시대에 이르러 음악은 특정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을 벗어나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기악 음악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Symphony가 크게 발전하게 된다. 과거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연주되었던 살롱 음악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무대 음악으로, 음악의 대상이 달라지면서 셈여림 또한 그에 비례하게 더욱더 다양해지고 넓어지게 되는데, 그로써 고전 시대의 기악 음악은, 다양한 실내악 곡들을 통해 기악 음악의 토대를 만든 하이든을 시작으로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꽃을 피운다.
바로크 시대와 초기 고전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던 쳄발로는, 피아노포르테와 비교하자면 흑건과 작은 볼륨, 페달의 무존재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쳄발로의 이러한 여러 문제점들에서 벗어나고자 1700년경 피아노포르테(현 피아노)라는 새로운 악기를 발명하게 된다. 쳄발로는 음을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이 피아노에 비해 짧아서, 쳄발로 연주자들은 음량을 건반을 누르는 힘이 아닌, 아티큘레이션으로 조절하곤 했는데, 그렇기에 쳄발로를 이용한 고전 시대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스타카토와, 카일, 테누토, 슬러 와 같은 아티큘레이션의 다양한 표현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당시 페달과 해머가 존재하지 않아 음량과 음색의 변화가 어려웠던 쳄발로는, 베토벤이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였던 18세기 중반부터 과거와는 달리 한계 없이 부드럽고 강한 음악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었던 새로운 악기, 피아노포르테로 대체된다.
피아노포르테의 탄생은 음량뿐 아니라 조금 더 넓은 의미의 확장을 야기했는데, 특히 베토벤은 음량을 더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포르테의 장점과 아티큘레이션을 섬세하게 표현했던 고전시대의 장점을 혼합시켜 그의 음악적 특징을 더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베토벤은 Sfz 와 fp, 그리고 staccato 와 Keil(영어식 표현으로는 staccatissimo이지만 살짝 뉘앙스가 다름), Portato 와 tenuto 등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아티큘레이션 언어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사실 그 당시 쳄발로와 피아노포르테의 사용이 뒤섞이면서 나온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티큘레이션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발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단어인데, 건조하게 음악을 바라볼 땐 음가의 길고 짧음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고, 음의 성격이나 더 나아가 그 음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아티큘레이션 기호로는, 스타카토, 레가토, 테누토, 슬러 등이 있으며, 그 안에서도 포타토, 마르카토, 데타쉐, 등 조금 더 전문적이고 복잡한 언어들이 존재하는데, 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 베토벤..) 이 용법들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앞서 셈여림과 아티큘레이션을 베토벤의 언어라 칭했는데, 사실 이 둘은 베토벤뿐만 아니라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두루 사용되는 언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난히 베토벤의 곡은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다소 광범위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이용해 작곡 되어졌기에, 우리는 그 언어들을 면밀하게 이용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말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말하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혹은 듣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듣지 않는 상태로 남게 된다. 어떻게 말하자면, 아티큘레이션은 구체적인, (혹은 제한적인) 언어가 없는 음악이란 분야에서 최소한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음악의 범주 안에 있지만, 음은 아닌)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청중을 잇는 유일한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시)
만약 이 악보에서 음정과 리듬, 그리고 조표들을 빼버린다면 악보에는 무엇이 남을까?
cresc , p, slur(음과 음을 잇는 줄). 3가지 정도의 부가적인 설명이 남는다. 우리가 굳이 음정을 읽지 못하더라도, 시창을 하지 못하더라도 뭔가 알 수 있는 것은, 작곡자가 의도적으로 셈여림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두 마디를 한 호흡으로 연결하는 slur의 중간에 p를 넣었다는 것은 뭔가 모순적이지 않은가. 순리대로 고요하게 흐르던 강물이, 순간 멈춰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예시로 삼은 월광 1악장은 사실 그냥 유명해서 예시로 넣은 거지 그의 subito 세계관에서는 매우 미약한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이 부분은 각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수비토 피아노(갑자기 작고 부드럽게)로 연주가 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대다수의 경우에서는 그의 셈여림이 존중받는 편이다. (Maria João Pires과 Evgeny Kissin는 월광 1악장 저 부분을 subito p 없이 꾸준한 크레셴도로 곡의 흐름을 끌고 나감))
*subito(갑작스레)
이 악보를 보면 셈여림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망치로 내려치듯 4마디에 걸친 반복적인 스포르잔도 뒤에, 한마디 안에 포르티시모(ff)와 피아노(p)를 기술해 놓았다. 또한 부분적으로 나오는 스타카토를 통해 베토벤이 조금 더 날카롭고 섬세한 음악을 의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