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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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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류 Jun 02. 2024

1. 정반대의 남녀

남자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의 방은 자유를 노래하는 집시의 집같은 느낌을 준다. 노랗고 어두운 조명, 테이프로 벽에 붙여진 "Friends"의 포스터, 신발장 곳곳에 불규칙하게 붙어있는 포스터와 사진들, 복고풍의 커다란 거울과 그 옆에 걸려진 형형색색의 패턴이 그려진 머플러들, 우쿨렐레와 기타가 놓여진 방 한구석이 그렇다. 방 안의 물건들은 제 주인이 어떤 취향과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숨김없이 드러내보인다.


바로 쓸 수 있게 손에 닿는 거리에 있는게 좋잖아, 라며 넉살을 떠는 그의 목소리는 석양의 햇빛을 닮아있다. 강렬하면서도 나른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수원의 원룸을 왜 70이나 주고 사는지 여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는 맑게 웃으며 창문 밖의 뷰 하나 때문에 이 집으로 결정했노라고 말한다. 7층이라는 높은 층고를 가진 그의 방에서는 화려하진 않지만 평온한 율전동의 모습이 선연히 보인다. 바다도 아니고 대도시의 야경도 아닌 이 풍경이 그렇게 좋냐는 물음에 자신은 막히고 어두운 곳에선 도무지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한다.


여자는 집에 들어와 모든 불을 켠다. 하얀 대리석 타일과 유리 테이블이 조명들을 반사해내며 밝은 빛을 낸다. 모든 물건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수납해두기 때문에 그녀의 집은 몹시 깔끔하고 단조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게 모델하우스지 어떻게 사람이 사는 집이냐는 남자의 볼멘소리에 여자는 너저분하고 어지러운 건 내 머릿속 하나로 족하다며 웃음을 터뜨린다. 모든 물건이 정해진 자리에 오와 열을 맞추어 놓여있는 모습은 원칙과 질서를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을 닮아있다.


여자의 집은 모든 창문이 암막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바깥의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물을 좋아하는 그녀의 거실은 파도무늬의 카펫과 액자에 가지런히 담긴 물고기 포스터로 꾸며져 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소중히 관리하는 수조가 놓여있는데, 여자는 종종 그 안을 넋을 놓고 바로보곤 한다.


남자는 그 뒷모습에 밤의 물빛이 자신을 홀리는 것 같다고 말하던 여자를 떠올린다. 그녀는 한강에서도 부산의 바다 앞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사주에 익사수가 매우 강하게 있다던 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물을 사랑한다. 매사에 권태롭고 무기력한 그녀는 때때로 물 속에 잠기거나 눈 속에 파묻히는 이야기를 할 때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낀다 말한다. 그녀는 이처럼 죽음앞에서만 생의 열의를 느끼는 모순적인 면모가 있다.


여자는 숯같은 사람이다. 이미 전부 불타버려 연소되어버린 그녀의 삶은 항상 무감하고 체념적이다. 그런 그녀가 아주 드물게 살아내기로 한 몇 순간은 그 숯을 원동력 삼은 불길처럼 이글거리고 광적인 정열이 피어오른다. 매일 죽고싶어하는 그녀는 자신을 살게 만드는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러다 발견한 것들을 손아귀에 우악스럽게 쥐고선 끈적한 집착과 원념으로 결국 살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여자는 언제나 음악이 흘러나오고 인센스 향기가 나는 남자의 방 안에 누워 눈을 감는다. 그녀가 잠들었다 생각하고 음악소리를 줄인 남자는 다시 의자에 앉아 수백줄의 코드가 작성된 모니터 화면에 열중한다. 여자는 눈을 떠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본다.


어두운 방안에 작게 켜진 누런 조명 밑의 남자는 마치 성당 안의 작은 촛불처럼 보인다. 다정하고, 언제나 밝게 타오르고 있으며 그것을 위협할 외부의 바람도 없다. 그의 생의 모습처럼, 일회성의 강렬한 연소가 아닌 지속적이고 안온한 타오름이다.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과 맛있는 음식 하나에도 큰 행복을 느끼는 그지만 이내 끝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그렇게 자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랠만한 것들을 찾아나선다. 그는 자유로운 유랑민으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를 죽이는 방법은 쉬워. 나한테서 자유를 뺏으면 되는 것 같아. 남자는 말했다.


나는 책임감을 빼앗기면 죽을거야. 날 무책임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면 바로 저 강물에 뛰어들걸.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이 사회에서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도가 튼 사람이다. 대단한 욕망도 꿈도 없으며 그저 이 삶이 안온하기만을 소망한다. 귀찮고 문제가 될만한 것들을 배척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딱히 자유가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 개척하고 결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내는 것이 가장 보람있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것보단 한 자리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즐겁다. 그녀는 보안학과에 들어가 경찰, 국정원의 목표를 잡았다. 자신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에도 큰 관심이 없다. 국가의 시류가 어떻게 흘러가든 나는 누구보다 빠르고 훌륭하게 그것에 적응해내어 이윤을 취하는 쪽일테니 보수고 진보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웃는 그녀의 눈은 뱀과 같다.


남자는 디지털 노마드의 꿈을 안고 명문대학교의 컴퓨터 공학과에 들어갔다. 사업을 굴리고 싶다던가, 굉장한 부를 축적하고 싶다던가 하는 열의를 품고 있다. 중국에서 유학을 했다던 그는 중국에서 석사를 졸업하고 해외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겠노라 말한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뚜렷한 정치색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거대한 악에 맞서는 것이 정의라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따뜻한 사람이니 말이다.


여자는 자신의 관심을 벗어난 것들에 일말의 존중과 애정을 보이지 않는다. 말투, 행동 모든 것이 변한다. 당장 옆에 있는 것들을 챙기기도 바쁜데 어떻게 저런 것들에게 에너지를 쓰냐며 웃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이유모를 두려움을 느낀다.


남자는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 것들에도 애정을 남겨둔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더라도 그 마무리만이라도 온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쓴다. 정을 나눈 관계가 어떻게 한 순간에 정리될 수 있겠냐며 읊조리는 남자에게 여자는 거부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유는 정의내릴 수 없다. 본능적인 이끌림에 가깝다.


용도가 전혀 다르지만 뗄레야 뗄 수 없는 숟가락과 포크가 될지, 아무리 뒤흔들어도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여자와 남자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상대에게 걸어보겠노라고 다짐한다.


남자는 어떻게 흘러가든 자신의 운명일 것이니 받아들이겠노라고, 여자는 무슨 결과가 이어지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책임이니 받아들이겠노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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