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와 쌀국수 사이
나는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 교회가 가난하던 때 일요일 점심은 늘 잔치국수였는데, 매주 먹던 그 잔치국수 때문에 멸치를 우려낸 냄새가 싫었고, 가느다란 면은 더더욱 싫었다. 손칼국수라면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지만, 라면이나 잔치국수처럼 얇은 면은 정말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국수를 먹자고 하면 결사코 반대하곤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국수를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쌀국수를 처음 소개해 준 사람은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님이셨다. 마르고 키가 크신 분이었는데 면을 무척 좋아하셔서 국수를 즐겨 드시곤 했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이 무엇이든 깊이 파고드는 스타일이셔서, 우리 학교 근처에는 맛있는 국숫집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면 좋아하시는 베트남 쌀국숫집을 예약해 두셔서, 몇 번 먹어 보게 되었다.
어느 날 학교 가까운 곳에 쌀국숫집이 생겼다. 그때만 해도 베트남 쌀국수 브랜드가 막 생기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교수님은 그곳을 무척 좋아하시며 자주 가셨다. 얇은 면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처음엔 곤혹스러웠지만, 다행히 다양한 메뉴를 파는 곳이라 볶음면이나 밥을 시켜 먹곤 했다.
교수님은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먹고 완전히 반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고수 향이 그렇게 싫었는데, 누군가 “고수는 세 번 먹으면 세 번째부터 진짜 매력을 느끼게 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싫었지만 딱 세 번만 먹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정말 세 번째부터는 고수 향이 너무 좋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고수를 듬뿍 넣은 쌀국수에 더 빠지게 되셨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세 번쯤 쌀국수를 먹고 나니 쌀국수가 맛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수 향은 세 번째, 네 번째가 되어도 여전히 내게는 어려운 맛이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을 따라 멀리 파주로 이사와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세상의 유행과는 조금 떨어져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쌀국숫집이 일산에도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파주에도 베트남에서 오신 분이 현지 느낌으로 연 쌀국숫집이 있었지만, 한 번 가보고는 내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 뒤로 나는 쌀국수를 오랫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다.
모처럼 남편이 쉬는 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일산에 가서 처음으로 그 집 쌀국수를 맛보게 되었다. 오랜만의 데이트여서도 좋았지만, 바 형식으로 나란히 앉아 조용히 먹는 분위기가 참 특색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집의 육수였다. 향신료를 많이 넣지 않아 한국적인 느낌으로 풀어낸 국물 맛이 좋았다. 잘게 찢은 양지와 면, 아삭한 숙주를 함께 먹는 맛도 훌륭했다. 그리고 얇은 면을 오래 먹기 힘들어하던 나에게 핫소스와 해선장을 섞어 찍어 먹는 방식은 국수 맛을 더욱 배가시켜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쌀국숫집의 단골이 되었다.
시간은 또 흘러 아기였던 두 딸은 어느덧 4학년과 6학년이 되었다. 하루는 지나가다 그 쌀국숫집의 분점을 보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했더니 아이들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양이 많지 않은 아이들이라 고민했지만, 그곳의 색다른 식당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한 사람당 한 그릇씩 시켜 주었다.
그날 우리 아이들은 정말 한 그릇씩 다 먹었다. 내가 느꼈던 그 매력을 똑같이 느낀 것 같았다. 아이들 모두 그곳의 쌀국수 맛에 푹 빠졌다. 국물 맛도 깊고, 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재미있고, 그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올겨울, 나는 아이들과 그곳에 네 번이나 갔다. 무슨 말만 하면 쌀국숫집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두 주에 한 번꼴로 먹었던 셈이다.
그렇게 나란히 앉아 쌀국수 한 그릇씩 앞에 두고, 따뜻하고 든든한 겨울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