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와 샌드위치

우리 집 브런치

by 담는그릇

나는 어렸을 때 ‘토마토 귀신’이라고 불렸다.
단순히 토마토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아플 때마다 찾던 음식이 늘 토마토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목이 자주 붓고 열이 높게 올라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진 적이 있었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이유로 매달 대학병원을 다니며 약을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난 이비인후과 선생님의 권유로 편도선 수술을 하고 나서부터는 열이 오르는 주기가 줄어들었다. 지금은 약을 먹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다.


어릴 때는 아픈 기억이 많다. 아프면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기 싫어진다. 그래도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니, 엄마와 아빠는 늘 “뭐 먹고 싶어?”라고 물으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꼭 “토마토!”라고 말했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토마토 귀신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아플 때마다 찾던 토마토는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느껴졌고, 이후에는 설탕 대신 꿀을 넣어 갈아주신 토마토주스를 마시며, 더운 여름날의 갈증을 달래던 기억도 있다. 시간이 지나 토마토 본연의 맛을 알게 된 뒤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토마토가 가장 맛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어 집을 떠나 살면서 그 맛을 다시 찾기 어려웠다. 분명 같은 토마토인데 어딘가 달랐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토마토에는 동양종과 서양종이 있다. 마트에서 일정한 크기로 예쁘게 진열된 토마토는 대부분 단단한 식감의 서양종으로, 샌드위치에 넣기 좋다. 반면 어릴 적 내가 먹던 토마토는 과즙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동양종에 가까웠던 것 같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짭짤이 토마토’는 수분을 조절해 당도를 높인 토마토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나는 토마토를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모든 토마토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제철에 수확한 토마토를 따자마자 먹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연천으로 이사 오면서 작은 텃밭을 빌려 처음으로 농사를 지어보았다. 이것저것 심어보았지만 가장 정성을 들인 건 방울토마토였다. 집 근처 농자재마트에서 사 온 모종을 열 포기 정도 심었는데, 햇빛과 바람을 충분히 받은 토마토는 기대 이상으로 달고 맛있게 자라주었다.


하나둘 빨갛게 익어가는 토마토를 따 먹는 재미도 컸다. 생각보다 수확량이 많아 주변 이웃들과 나누어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오래 두고 먹고 싶었다. 방울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소금을 살짝 뿌리고 에어프라이어에서 천천히 말린 뒤 올리브오일에 담가 두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말린 토마토는 또 다른 요리의 시작이 되었다.


말린 토마토를 만들어 두고 보니, 자연스럽게 샌드위치가 떠올랐다. 예전에 대구에 살 때 자주 가던 '웨이크업제이'라는 카페의 샌드위치 맛이. 지금은 너무 멀어서 가기 어렵지만, 그 맛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해보았다. 치아바타에 직접 만든 바질페스토를 바르고 로메인계열의 야채를 두어 장 올리고, 하바티치즈를 넣은 뒤, 말린 토마토와 꿀을 살짝 더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텃밭에서 토마토와 함께 키운 바질 덕분에 향은 더 깊어졌다.


그 샌드위치를 맛본 가족과 이웃들은 원래 나의 시그니처였던 (스타벅스를 따라한) 닭가슴살크랜베리샌드위치를 능가하는 맛이라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는 치아바타와 바질페스토, 그리고 말린 토마토가 김치처럼 늘 준비되어 있다.


주말 아침이면 좋아하는 '칸칸에스프레소' 원두를 드립으로 내리고 음악을 하나 틀어 둔다. 그리고 토마토를 넣은 샌드위치를 준비해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는다. 일주일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지내느라 함께 아침을 먹기 어려웠던 우리 가족에게, 이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흘러가는 특별한 순간이다. 텃밭에서 자란 토마토로 만든 샌드위치를 나누어 먹으며 웃고 이야기하다 보면, 평범한 집이 어느새 작은 브런치 카페가 된다.



일주일에 가장 행복한 시간, 주말 브런치
매번 방법과 종류가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샌드위치
작년에 텃밭에서 수확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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