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가면 인생이 좀 잼나질 수 있을까?'
새벽 1시에 싱가포르 이민을 앞둔 작은 누나한테 온 카톡, 단출하지만 본질적인 이 질문은 단순히 이주에 대한 고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누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근본적인 불안과 징징거림의 뒤섞임이었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저명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 경제학, 과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양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우리는 거시적인 경제나 사회 현상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도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나의 삶으로 빗대어 보자면 이 거대한 불확실성이 만성적 불안으로 확신을 갖게 된 계기는, 경제 지표나 사회이론 따위가 아닌, 모성이었다.
2015년 우리 집안의 첫 복덩이가 누나 뱃속에서 꼬물거릴 무렵,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메르스, 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감염병의 확산은 새로운 생명을 품은 기쁨을 통제 불가능한 공포로 뒤바꿔 놓았다. 병원 방문조차 두려워하던 그 시절, 누나는 깨달았을 거다. 안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확실성마저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몇 년 후 터져버린 코로나19 팬데믹, 누나는 이제 막 웃기 시작한 둘째의 얼굴에 두꺼운 마스크를 씌우며 온몸에 가시를 바짝 세웠고 그 불안은 만성으로 고착되었을 거다.
이렇듯 거대한 불확실성의 파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첫 번째로 경제적 불안정성,
고용 불안정 : 평생직장의 개념 소멸,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인한 직무 소멸의 현상들은 미래 소득에 대한 예측 불가능이라는 영향을 끼친다.
자산 가치 변동 :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등 자산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 심화(영끌, 빚투) 현상은 안정적인 자산 형성 경로가 사라지고 벼락거지 또는 일확천금의 심리가 팽배해지게 만든다.
물가 및 금리 변동 : 고물가(인플레이션)와 고금리의 급격한 변화는 실질 소득 감소, 대출 이자 부담 증가, 내 집 마련 계획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킨다.
두 번째로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
가치관의 충돌 :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젠더, 환경, 세대 갈등) 간의 충돌이 사회적 합의 도출의 어려움, 공동체 의식 약화, 온라인상 극단적인 의견 대립에 따른 피로감을 준다.
정보의 불확실성 : 가짜 뉴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 여부 판단의 어려움을 겪어 특정 정보에 대한 맹신 또는 모든 정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
미래 세대 불안 : 저출산, 고령화, 기후 위기 등 거대 담론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불안감은 결혼, 출산, 노후 준비 등 인생의 주요 단계에 대한 계획 수립의 어려움과 포기 심리 확산시킨다.
세 번째로 심리적 피로도 및 불안감 증가,
결정 장애 : 너무 많은 선택지와 예측 불가능한 결과 때문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는 현상.
만성적 불안 :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협(경제 위기, 전염병, 전쟁 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일상화.
통제감 상실 :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외부 요인(글로벌 경제, 기후 변화)에 의해 삶이 좌우된다는 느낌.
결국 경제적 불안정성,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 그리고 심리적 불안감 증가는 서로 얽히고설켜 우리의 삶은 전방위적으로 압박한다. 이 모든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끊임없이 주입하며, 우리는 이 거대한 짐을 짊어진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불확실성을 불안해하며 시달려왔다. 완벽한 안전, 예측 가능한 미래, 흔들리지 않는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이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시대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유일한 확실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불확실성을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맞이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뿐이다.
새벽 1시, 누나의 카톡은 이주에 대한 불안 징후인 동시에 그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용기 있는 징징 거림일 것이다.
'정답은 언제나 누나 안에 있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만, 새로운 여정에 빛나는 순간만이 가득하기를. 잘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