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있는 것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다 쓰다

by 시린

망각.

책이 왜 두 권인가.

선물을 염두한다던가 하여 여러 권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혀 기억에 없다. 예전에 산 걸 몰랐다거나 본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출간된 지 오래지 않다. 별일이다. 하긴 별일도 아니다.


욕심.

작은 책을 좋아한다. 사진집도 작은 게 좋다. 사진집은 대개 크고 무겁고 비싼데, 작은 책은 사기에도 보기에도 부담이 덜하다. 열화당 사진문고는 작아서 좋긴 한데 전부 갖고 싶어 문제다. 나오는 대로 사려면 부담이다. 책 욕심이 나도 모르게 책을 두 번 사게 만들었을까?


기억.

가파른 골목에 있는 집에서 살았다. 대문을 나가 왼쪽 내리막길로.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첫번째, 모퉁이 가게가 서점이었다. 유리창 진열장만 보면 되었다. <어깨동무> <소년중앙>이 들어왔을까? 월간잡지는 월말에 들어왔고, 28일쯤 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진열장을 보러 내려갔다. 새 책 표지를 보면 잔뜩 흥분해서 아빠가 퇴근하기만 기다렸다.


상처.

책이 나왔을지 궁금하긴 했지만 내리막길에서 뛰면 위험하다는 엄마 말을 잊진 않았다. 혼자 나가도 된다고 허락받은 것도 서점까지가 다였다. 다섯 살, 많아봤자 여섯 살이었다. 쿵. 별이 번쩍했다. 엉덩방아를 찧은 손을 누가 잡아 일으켰다. 새빨간 헬멧을 쓴 얼굴 빨간 아저씨가 괜찮니? 괜찮지? 했다. 네, 라고 대답을 했던가? 아저씨는 인도에 넘어져 있는 자전거를 일으켜 타더니 사라졌다. 자전거도 옷도 빨간 색이었다. 머리가 아파서 오른쪽으로 돌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 집으로 갔다.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던 엄마가 깜짝 놀랐다. 자전거 탄 아저씨랑 부딪쳤다는 말을 듣고 윗층 정민이 엄마가 뛰어나갔다가 식식대며 돌아왔다. 엄마가 가제수건으로 내 눈을 살살 닦아내고는 길 건너 약국으로 데려갔다. 다래끼가 터졌을 뿐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흉은 지겠다고, 약사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며 소독을 해주었다. 눈꺼풀에 남들은 잘 모르는 흉터가 있다. 눈에서 피를 흘리는 대여섯 살 아이를 혼자 두고 갈만큼 중요한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아직 목소리가 생생하다. 괜찮지? 네, 라는 대답은 못했던 것 같다.


영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무척 존경한다.” “행복의 비밀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남아 있으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말했던 사울 레이터지만, 사람들은 <영원히 사울 레이터>이길 바란다. 그는 거리 사진을 많이 찍었고, 거리와 그곳의 사람들에게 영원이란 없다. 바람과 기억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