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멸종하기 위해 진화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

by 새벽당직일기

​노산과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사라진다.


인큐베이터와 인공 자궁 기술은 여성을 출산의 고통과 경력 단절의 공포에서 해방시키고, 24시간 완벽하게 프로그래밍 된 로봇 보모는 육아의 피로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할 것이다. 과학은 소아마비를 정복했듯 '늙음'과 '불임'도 정복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것은 분명 인류가 꿈꾸던 유토피아다. 하지만 그 매끈한 미래의 이면에는 섬뜩한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캐릭터 생성창 앞에 선 부모들


​유전자 가위(CRISPR) 기술의 상용화로 우리는 태어날 아이의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큰 키와 오똑한 코, 명석한 두뇌와 질병 없는 신체. 부모는 마치 '디아블로'나 '명조' 같은 게임의 캐릭터 생성 화면에서 최적의 스탯을 찍듯 아이를 조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의지로 선택되고, 최적의 수치로 조합된 이 존재를 과연 '내 자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나의 욕망이 투영된, 성능 좋은 '아바타'에 불과할까? 엄마의 작은 키와 아빠의 뭉뚝한 코라는 우연의 유산이 제거된 자리에는, 공장에서 출고된 듯한 매끈한 표준품만이 남게 된다. 이것은 생명의 탄생이라기보다 정교한 '제조(Manufacturing)'에 가깝다.


결함과 죽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


​우리는 흔히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기술로 극복해야 할 '버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결함'과 '유한성(Mortality)'이다.
​우리의 삶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며,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어딘가 부족하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처받지 않는 피부와 영원히 늙지 않는 세포를 가진 존재에게 '연민'이나 '간절함' 같은 감정이 깃들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에서 태어난 존재는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서사, 즉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상실하게 된다.


신이 되려다 NPC가 되어버린 인류


​기술은 우리를 신의 영역인 '불멸'과 '창조'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 정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가장 큰 역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고통도, 늙음도, 죽음도 없는 세상. 그곳에 사는 존재들은 더 이상 인간(Human)이 아니라, 그저 0과 1로 이루어진 게임 속 데이터 덩어리와 다를 바 없다. 완벽하게 커스터마이징 된 육체는 가질지언정, 그 안에는 떨림도 울림도 없는 차가운 알고리즘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구 소멸이 아니라, 결핍과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성' 그 자체가 멸종하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21세기 인간은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