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1_대학과제 中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었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지금도 그분의 세상은 여전히 그렇다고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그분의 세상이라는 말은 사실 몹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더 솔직히 말해, 평범하지 않은 그분이 싫었던 것 같다. 낮고 굵은 목소리와 너무 강한 인상, 완고한 성격과 과보호를 몹시 미워했다. 함께 빙수 가게에 갈 때도 부끄러워 같이 들어가지 못하고, 가게에 먼저 보내드리고 시간이 지나서야 들어간 적도 있다. 중학생 때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 계신 그 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거기서조차 반가움을 표현하시려 했던 것을 모른 체하고 말았다. 그래서 일부러 건물을 반대로 돌아가려다, 완전히 마주쳐버려 거기 계신 줄 몰랐다고 웃으며 얼른 자리를 회피하기도 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배려 차, 내 머리가 커질수록 전화를 줄이셨다. 못 하시는 것을 넘어 우리 사이의 무선 연락은 무(無)가 됐다. 고백하자면 등한시할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명절이나 생신 때가 되어서야, 모아뒀던 그동안의 사랑을 그날 한가득 안고 내게 쏟아주셨다. 용돈을 주시거나, 성인에 가까워져도 나의 그 시절 그 먹거리를 모아놓으시고, 옆에 앉혀 과하게 칭찬을 하시는 등 모아둔 사랑을 퍼부으셨다. 하지만 이것마저 내가 명절이나 생신을 불편하게 여기게 된 까닭이기도 했다.
싫지 않은 사랑에 대해 기억해 보자면 이랬다. 아주 어릴 적, 특히 좋아했던 포카칩 과자는 주일(일요일)마다 그분의 검은 가방에서 나오곤 했다. 과자 취향이 바뀌면 종이에 적어서 외우시고, 어쩌다 맛있다고 한 빵 이름을 빵집 가서 물어물어 찾아 주일에 주시곤 하셨다. 또한 10번째 생일에는 매일을 방학처럼 보냈으면 좋겠다고 <타샤의 계절>이라는 동화책도 선물하셨다. 성장할수록 더 들여보라던 아직까지도 너무 잘 읽고 있는 영어 성경책도.
그런 내 소소한 기쁨도 그분의 아낌없는 사랑 덕이었고, 그분의 고심이 있어서였다. 그것은 그분의 가장 큰 뿌듯함이자, 노후에 있어 낙이었다. 돌아보니 그 행동은 이제야 사랑이었다고 정의된다.
시간이 흘러, 각종 기념일을 제외하고 소식을 알리지 않았던 그분의 근황을 웬 대학 병원이 알려주었다. 엄마가 보여준 사진에는 몸에 기구가 많이 꽂혀있는 미라와 흡사한 그분이었다. 딱 봐도 생명감이 부재된 그 사진은 내게 격한 거부감을 심어주었고, 찰나 정도의 애수에 잠기지도 않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천장만 바라보는 그 초점 없는 동공과 번개 맞은 나무 같던 그 몸은 지금도 종종 잠을 이루기 무섭게 만든다. 내가 알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생각만 심화되었다.
엄마와 이모는 매일을 최후의 밤이라 여기며 벨소리도 켜 놓고 겨우 겨우 자는데, 며칠 전 새벽에 들리던 엄마의 오열 소리에도 나는 못 들은 척 잠에 다시 들려고 노력했다. 오열보다 오열의 까닭을 확실히 모른 체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엄마의 고조된 오열소리가 또 내 새벽을 깨웠다. 결국 공고히 자세를 고쳐 앉아 저 오열 소리를 그냥 듣는다. 그럼에도 무덤덤한 건 무슨 패륜일까. 나는 왜 도저히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을까. 보고 싶지 않던 그분을 무덤덤하게 떠올려본다.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