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삶 속에서 나를 찾는 시간
021년 8월, 암이라는 불청객이 내 삶에 찾아왔다. 세 아이의 엄마로, 어쩌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 게을러서 한 번도 제대로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 없던 내가, 결혼식을 앞둔 아들의 끈질긴 권유로 국가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결과는 유방암 1기. 내가 암이라니 믿기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해 10월, 나는 왼쪽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년 후, 2023년 10월에는 폐암 진단을 받고 또 한 번의 수술대에 올랐다. 이어진 2024년 2월에는 폐 부분 절제술, 그리고 7월에는 오른쪽 유방암 수술까지 악몽과도 같은 3년 동안 네 번의 수술을 겪으며 몸과 마음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갱년기와 암이 가져온 몸의 변화는 작은 일에도 나를 흔들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포기와 반복이 일상이 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삶의 중심을 잡으려 노력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그 속에서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을 글로 남기려 한다. 암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며 무너지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작은 일상과 그 속의 희망을 기록하려 한다. 쉽지 않은 삶이지만, 내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힘을 되찾고 싶다.
2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시간이 지나 이제 50대 후반이 된 지금,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선명하지 않을 만큼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다. 모든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아부은 나의 일상은 사랑이라 믿었지만, 때로는 집착처럼 느껴질 만큼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이었다. 아이들이 내게는 기쁨이자 살아가는 이유였기에 ‘엄마’라는 역할에 온전히 나를 바쳤다. 그 열정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엄마로 사는 삶이 때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지금의 내 삶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나 자신으로 사는 삶,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다.
늦둥이 막내딸은 유난히 특별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일반적인 진학 대신 '언스쿨링(un-schooling)'이라는 길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내게 갱년기가 시작되던 시기였고, 아이는 사춘기의 문턱에 서 있었다. 서로의 감정이 충돌하면서 나는 내 안의 복잡한 마음을 해소할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우연히 찾은 취미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는 행위가 신기하게도 마음을 정화하고, 큰 위로가 되었다. 동시에 글쓰기 강의를 듣기 시작하며, 나의 내면을 단어로 담아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그림과 글쓰기는 내 삶의 새로운 버팀목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막내딸은 스무 살이 되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딸은 이제 자신의 앞날을 계획하며 부지런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때 나와 온종일 붙어 다니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대견하고도 뿌듯하다. 나 또한 그 시절에 시작한 그림과 글쓰기를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작은 드로잉 카페를 운영하며 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가끔은 손님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틈틈이 내 생각을 글로 적는다. 문득 아이와 부딪히던 그 혼란스러운 시간이 없었다면, 내가 이 길을 찾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막내딸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듯, 나도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겨져 있던 나 자신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림과 글은 내 삶에 새로운 색과 이야기를 더해주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그것은 말 그대로 행복이었다. 오랫동안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오며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잊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갔다. 소중했던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온전한 나를 마주했다.
그러나 그때, 암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병은 나를 뿌리째 흔들었다. 암이라는 단어는 한순간에 내 삶을 멈춰 세웠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시간은 절망으로 이어졌고, 그 절망은 희망과 맞물리며 나를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암'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죽음을 연상시킨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암이 완치되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그 단어는 삶과 죽음 사이의 무게를 담고 있다. 네 번의 수술과 투병을 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절망과 희망의 끝을 오가며 마치 지옥을 걷는 삶을 살아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수만 가지 감정은 매일 나를 몰아쳤다. 어느 날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가, 다음 날은 깊은 우울감에 빠졌다. 작은 대화 한 줄, 누군가의 말투 하나에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쳤다. 가족들과의 사소한 대화조차 나를 힘겹게 만들었다. 마치 조울증 환자가 된 듯, 나 자신을 조종할 수 없는 날들도 많았다.
암 환자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하다. 두려움, 분노, 슬픔, 희망, 감사가 한꺼번에 뒤섞여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는 살아가야 했다. 작은 희망 하나라도 붙잡으며,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다잡았다.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가는 시간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암이라는 병과 싸우는 동안, 나를 위한 시간은 꼭 필요한 삶의 이유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나를 위로했고, 글을 쓰며 내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작은 행복들을 붙잡으며, 나는 암이라는 커다란 그림자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찾는다. 내가 겪은 지옥 같은 시간, 그 속에서 발견한 삶의 작은 빛과 희망, 그리고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