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로 산다는 것

'뒤처진 새'에 위로를

by 강수린

오늘 우연히 읽게 된 명사의 칼럼으로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지난 여행길에서 만난 철새들의 모습이다. 맑은 하늘 아래, 폭신한 솜사탕 구름이 떠 있는 풍경 속에서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그림 같았다. 운전 중이던 남편에게 “여보! 저 애들도 여행을 가나 봐”라고 했다. 철새들이 함께 날아가는 모습은 그들만의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장관 속, 한참 떨어진 뒤쪽에서 서너 마리의 철새가 힘겹게 따라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재들은 딴짓하다가 늦었나 봐” 그 모습은 마치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잠시 다른 것에 마음을 뺏겨 늦어진 거라 생각됐다. 그런데 오늘, 그날의 뒤처진 새는 딴짓이라는 말로 웃어넘길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그 새는 현재의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암 환자로 살면서 나는 상처를 입고, 뒤처진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새는 나처럼 삶의 어려움과 도전 속에서 힘겹게 날아가고 있었을 텐데, 지금 나는 그 새가 느꼈을 고독과 불안을 이해하게 되었다.


투병이 시작되면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지배했다. 그럴 때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몸과 마음의 통증은 그 노력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한다. 모든 것이 헛되게 느껴진다. 이런 상태를 견디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러다 매일 아침, 가장 행복한 일을 하나씩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중요한 습관이 되었다. 작은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힘겨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되었다.

오늘은 병원 검진이 있는 날이다. 다음 주에 예정된 세 번째 암 수술을 위한 사전 검사라서 마음이 무겁다. 아침부터 느껴지는 막연한 두려움과 차가운 현실은 익숙한 공포가 되고 그 감정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남는다. 몸을 고정하는 벨트와 금속 기계음 속에서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된다. 긴장감과 불안감이 나를 압박하는 금속기계의 소음은 내 몸이 그저 기계의 일부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거운 공기를 머금은 침묵의 시간이 된다. 곁에 있는 남편에게도 고통의 시간이었을 테니, 그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만 같다. 서로의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비껴가는 침묵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2시간 동안 죽음 같은 잠에 빠졌다. 현실과 단절된 그 순간, 깊은 고요 속에서 나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깨어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걱정과 기다림은, 내 안의 미안함을 불러일으킨다. 남편과 딸을 향해 “저녁 뭐 먹을까?”라고 말을 건넸을 때, 두 사람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그간의 침묵이 쌓여 있던 탓일까, 이 간단한 물음이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나의 물음은 단순히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 이상이고 가족이라는 포근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것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면 다 좋아,”라는 다소 들떠 있는 딸의 대답에는 ‘엄마의 행복이 곧 우리 모두의 행복’이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이어서 남편이 덧붙인 “난 우리 딸이 좋아하는 거면 다 좋아”라는 말은, 깊은 사랑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 준다. 저녁 메뉴를 정하는 대화는 위로가 되고, 아픔 속에서도 함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2년 전 나는 암이라는 병으로 인해 일상의 삶에서 뒤처진 새가 되었다. 이후로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늘을 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알았던 내가, 그 자유를 잃고 땅에 떨어진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는 다친 날개를 보듬어 치료해 주고 어루만져주는 가족이 있다. 뒤처진 새는 지금 상처 입고 쉬어가야 하는 나의 모습이다. 여행 중 만난 그 새도 누군가가 뒤돌아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나 자신도 돌보는 삶을 살기로 노력 중이다. 뒤처진 새가 다시 하늘로 날아오를 날을 기다리듯, 나도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아가고 싶다. 나는 삶의 여정에서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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