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걷다.
네 번의 암 수술을 겪고 난 뒤, 나는 비로소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고통은 단순히 육체의 통증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내 안 깊숙이 묻어두었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내가 걸어온 수많은 삶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불러내는 힘이었다. 아프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외면해 온 마음과 지나쳐온 풍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었다. 병은 육체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삶의 의미를 되돌려주는 잔인하지만 묵직한 메신저였다.
나는 언제나 ‘시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잘하고 못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보다 과정을 더 소중히 여겼고, 움직이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두었다. 내 삶을 이끌어온 힘은 언제나 열정이었다. 변화를 향한 갈망을 행동으로 바꾸는 힘. 그 열정은 나를 늘 앞으로 나아가게 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하고, 사랑하게 했다.
어릴 적 고향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놀던 기억, 아버지의 굳은 손과 단단한 눈빛, 사소한 일에도 미소를 지어주던 어머니의 얼굴. 그 모든 시간이 내 안에 삶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게 하는 마음을 길러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의미’라는 단어에 예민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리고 매 순간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자신을 향한 끝없는 질문은 나를 열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암이라는 거대한 벽을 만나기 전에도 나는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병은 내 삶의 방향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모습인지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삶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그 힘은 다시 나를 일으키고, 지친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몸은 다소 느려졌지만, 마음은 더 깊어졌다. 그리고 그 깊이 속에서 다시 열정은 피어났다.
이제 나는 내가 걸어온 길 위에 남겨진 열정의 흔적들을 하나씩 꺼내어 바라보려 한다. 일상 속 사소한 순간부터, 가슴 깊이 새겨진 고통의 기억까지.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다가올 삶을 준비하려 한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낸다. 앞으로의 시간을, 다시 한번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불꽃처럼 뜨겁게 타올라 흔적을 남기고, 숯불처럼 은은하게 오래도록 이어지는 삶. 그런 삶을 나는 꿈 꾼다. 그리고 믿는다. 그 길의 시작은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