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그리고 공부처럼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유난히 무거웠던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찬 공기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는 은근한 설렘이 피어올랐다. 나는 고향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소박한 여정을 시작했다.
이런 여행은 늘 마음을 따뜻하게 덥힌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며칠간 아버지와 지내며 조용한 위안을 얻곤 했다. 나이 든 딸과 나이 많은 아버지의 만남은 그 자체로 특별하고도 소중하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유난히 의미가 깊었다. 까칠하고 예민한 우리 막내딸이 처음으로, 스스로 이 여행에 동행하기로 마음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열일곱, 사춘기의 끝자락이자 어른의 문턱에 서 있는 아이. 늘 바쁘고 예민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딸은 그동안 할아버지 댁 방문을 번번이 거부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는 지금 인생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아. 최대한 긴 시간 엄마 곁에 있고 싶어.”
그 말은 내 가슴을 깊이 울렸다.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지난해 나는 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끝났지만 몸은 무겁고, 마음은 허전했다. 병실의 하얀 조명 아래에서 자주 어린 시절의 고향집을 떠올렸다. 그곳엔 여전히 아버지가 계셨다. 삶이 버거울 때,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게 우리는 긴 겨울 길을 달려 아버지의 집에 도착했다. 변함없는 풍경, 변함없는 사람. 맨발에 슬리퍼를 끌며 마당으로 달려 나오신 아버지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견디는 감나무, 말라 누렇게 빛을 잃은 꽃잔디, 그리고 마당을 지키는 고양이들. 그 모든 풍경이 고향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며칠 동안 아버지의 집에 머물며 나는 딸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했다. 아이는 이제 곧 대학생이 된다. ‘언스쿨’과 ‘검정고시’라는 낯선 길을 걸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기 삶을 개척해 왔다. 한때는 미술평론가를 꿈꾸었고, 대학 입학 후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열정은 크기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불타는 것이 아니라, 초점을 맞추고 길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힘이라는 것을.
아이의 모습은 나를 비추는 거울 같다. 나의 열정은 불꽃놀이와 같다. 하늘 가득 번져 환하게 빛나지만, 곧 흩어져버리는 조각들. 하고 싶은 것이 많고, 실제로 해내는 것도 많지만, 그 불꽃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내 안에는 수많은 시작의 씨앗이 잠들어 있고, 그것들이 불쑥불쑥 터져 나오며 나를 살아가게 한다. 딸과 나, 서로 다른 듯 닮은 불꽃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배운다.
고향 아버지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불편하고 아픈 마음 한구석에 엄마의 부재가 있다.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에, 엄마는 내가 탄 차를 마중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시리고 눈물이 앞선다.
어린 시절, 나는 까다롭고 고집스러운 딸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음식을 권하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거부해서 어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지만, 엄마에게 나는 공주님이었다. 시골 마을 초등학교 앞 작은 문구점, 아니 만물상 같은 가게를 운영하시던 엄마는 늘 바쁜 일상에서도 나를 곱게 치장해 주셨다. 그 덕분에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결혼 후에도 엄마는 내 아이들까지 돌봐주셨다. 그런 엄마가, 나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이기적이지만 죄책감보다 더 힘들었던 건, 엄마 없는 세상에서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충격.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나는 그 무게를 안고 살아야 했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삶도 죽음도 공부라면 어머니는 너무 힘든 공부를 하셨다.”
맞다. 엄마는 내게 너무 무거운 숙제를 남기셨다. 엄마가 그리워서, 필요해서 그리고 미안해서 몸과 마음이 오랫동안 아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10년은 ‘이럴 때 엄마가 있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엄마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 아쉬움과 죄스러움이 점점 더 커졌다. 여자로서의 엄마를 떠올리게 되면서, 그리움의 형태도 달라졌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에 문득 엄마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아마 이것도 엄마가 남긴 숙제처럼 생각된다.
엄마가 떠나고 배웅하는 일도 공부라면,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일도 공부일 테지. 계절이 바뀌고, 몸이 변하는 것 또한 자연의 공부일 것이다.
나는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려 한다.
지금 흘러가고 지나가는 공부 속에서, 내게 가장 필요한 건 아마도 더 따뜻한 온기를 품는 공부이다.
그리고 그 공부를 해 나가기에, 지금이 딱 좋은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