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카페, 나의 두 번째 삶
요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카페에서 보낸다.
차를 마시거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곳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 세상과 마주하기 위한 작은 피난처이자 새로운 출발점이다.
첫 번째 암 수술을 마친 지 어느덧 1년.
몸도 마음도 더 이상 가만히 머무를 수 없었다. 근질거리는 생의 에너지를 억누를 수 없었던 나는, 오래도록 품어온 꿈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드로잉카페’를 여는 일이었다. 그 선택은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문이 되었다.
가족들은 여전히 나를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그저 숨만 쉬어야 할 듯한 깨지기 쉬운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암이라는 이름 아래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더 큰 것은 ‘살고 싶다’라는 욕망이었다. 드로잉카페의 공간은 내 삶을 다시 달리게 할 준비를 시켜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내가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무대였다.
젊은 시절, 나는 늘 전문직 여성들을 선망했다.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빛나는 그들의 일상은 눈부셨다. 그러나 내 청춘은 조금 달랐다. 이른 결혼으로 이미 엄마가 되었고,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엄마들 사이에서도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늘 아웃사이더였다. 하루하루는 아이와의 시간으로만 채워졌고, 나는 점점 소심하고 무능하며 초라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자식에게는 진취적인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늘 자신 없는 존재였다.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막내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였다. 딸은 ‘언스쿨’을 선택했고, 나는 하루 종일 딸과 함께 생활하며 감정적으로도 극한에 몰렸다. 갱년기 증세와 맞물린 우울 속에서 단 몇 시간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골목길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간판 [취미 화실].
아이러니하게도 학창 시절 가장 어렵고 싫었던 과목이 미술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대단한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저 시간을 보낼 구실과 마음을 숨길 구석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주일 두 번의 수업.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단순한 행위들이 내 마음을 서서히 풀어주었다.
2년이 흐르자 그림은 어느덧 내 안에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3년째 드로잉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취미로, 혹은 직업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함께 그림을 매개로 소통하고 기쁨을 나눈다. 나이와 성별을 넘어선 인연 속에서 나는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배우고 있다.
인간은 본래 호기심과 유희의 본능을 가진다. 재미는 몰입으로 이어지고, 몰입은 결국 행복을 만든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내 카페의 이름을 [드로잉카페 유희]라 지었다. 즐거움을 그리는 곳. 나는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기쁨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림에 전혀 관심조차 없던 내가, 취미로 시작한 그림을 통해 이렇게까지 인생이 달라질 줄은 몰랐다. 서툴지만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는 ‘작가’로, 또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으로 불린다.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삶.
이제 나는 내 삶을 내 힘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있든, 그 속에서 다시 자신만의 색을 칠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거창한 성취가 아니다. 아주 작은 선 하나, 작은 시도 하나가 모여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