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의 꿈
글이란 나를 진실로 인도하는 안내자였다. 작가란 나에게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는 신과 같은 존재로 우상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감히 글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 것이란 무의식적 결론을 가지고 정답을 찾아 현실이라는 사막과 같은 길에서 헤매다 지친 나는 세상이 알려주는 신기루인 성공을 쫓아 달려가 보기로 결심했었다.
모두가 열광하며 혼신의 힘을 향해 달리는 성공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세속적 성공을 강하게 거부하는 내 안의 소리를 무시하고 남들이 달려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 보았을 뿐이었기에 목표를 향해 달릴 그 어떤 원동력도 내겐 없었다.
내 영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성공은 신기루며 이 세상은 사막이라는 것을…. 사막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고 싶은 내면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 첫 여정은 그렇게 그 민낯을 드러냈다.
늘 반복되는 일상과 성공이라는 신기루에 지친 나는 이 삶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을 찾기로 결심하고 나만의 길을 나섰다. 내가 성인기에 의식적으로 선택한 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첫 번째 길도 선택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나에게 알려주는 길이었기에 힘없이 지친 발걸음으로 걷다가 멈췄다. 그리고 좁고 찾는 이가 적은 길을 발견했다. 나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내 안의 누군가가 깨어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무도 열광하지 않고 이해받을 수 없는 길을 내면의 소리를 신뢰하며 걷기로 결심했었고 나는 마침내 그 길을 완주해 냈다. 나는 보았고 마침내 찾았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삶을 살아내며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여정을 거쳐 성숙해지고 자신이 걸은 길을 통해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 낸다. 나도 그러하다.
이제 나는 나만의 색깔로 그에 공명할 누군가와 교감하고 싶어진다. 그 통로로 글을 선택한다.
작가와 그 글은 인생의 진실을 정답처럼 보여줄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눈으로 그 단면을 묘사할 수 있다. 나는 이제야 내가 글에 부여한 무게를 내려놓는다. 작가가 가진 무게도 내 마음에서 내려놓는다. 작가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일 뿐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라는 진부한 진리가 나에게 해방감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 나 스스로 나를 옭아 매고 있었다는 현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나는 안도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가 품고 있는 진실이라는 거대한 실체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여정이다. 답은 없다. 답은 만드는 것이다. 길은 없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길들은 진실이라는 실체로 통한다. 자신의 인생길이 답이며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배우며 진실을 대면할 기회를 얻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꾀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내 인생 여정의 모든 경험과 교훈은 서말의 구슬처럼 내 안에 그냥 뒤죽박죽 보관되어 있다. 나는 서말의 구슬을 이제 보배로 탄생시켜야 하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서 있다.
산통이 온다. 뒤엉킨 서말의 구슬이 이제 글로 탄생하기를 원한다. 머릿속에 맴도는 수많은 자아들의 외침을 정리해서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나는 산통을 감내해내야 한다. 내 인생 2막의 사명은 산고를 거쳐 내 안의 잉태된 작품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것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브런치에서 출간프로젝트 공모전 소식을 알리는 소식이 카톡으로 도착했다. 그동안 초안만 잡아 노트북에 저장해 둔 작품이 기억이 났다. 공동저서 프로젝트라는 한 출판사와의 작업 중 중도하차하며 접어둔 초안을 나만의 글로 출품하고 싶다는 생각이 기회의 옷을 입을 수 있다고 느끼며 작가등록 신청이라는 통과 의례를 결심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발견했을 당시 다른 플랫폼과의 차별점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는 심사가 있다는 것이 설렘과 동시에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대학입시를 치르듯 글을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 글을 쓴다는 영역에서의 기본 소양을 검증받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 보며 이곳에 오면 나와 공명할 수 있는 독자들과의 깊이 있는 만남을 할 수 있다는 확신도 들었다. 일반 블로그나 타 플랫폼과는 차별화된 브런치만의 매력에 나는 이제 닻을 내리기로 결심한다.
내가 브런치를 발견하고 작가 등록을 마친 것은 산모가 출산할 의사를 정한 것과 같다. 나와 함께 할 팀을 발견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중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를 함께 할 ‘작가의 꿈’을 찾습니다.]라는 카톡을 받고 이 글을 쓴다.
작가로서 비전을 글로 출산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브런치 10주년 팝업 전시회라는 이벤트를 통해 왔기에 그 타이밍이 절묘하게 느껴진다.
“나는 조각하지 않는다. 신이 이미 만들어 둔 것들을 돌에서 해방시킬 뿐이다.” —미켈란젤로
“ 나는 작곡하지 않는다. 음악은 이미 완성되어 있고 나는 그것을 받아 적을 뿐이다.”—모차르트
“나의 음악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베토벤
“서화는 천기(天機)를 타고나는 것” —추사 김정희
수많은 예술가들은 이미 자신의 작품을 자신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며 예술가 자신은 도구로 쓰였음을 알고 인정하였다.
젊은 시절엔 위대한 예술가들의 위와 같은 표현은 예술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나 같은 범인은 범접할 수 없는 신의 경지를 논하는 그들이 부럽고 예술은 나와는 너무 거리가 있는 난해한 세계로 느껴졌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일체중생본래시불(一切衆生本來是佛)" -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다. 《화엄경》
이제 나는 안다. 모든 사람에게 신성이 있기에 예술가와 그의 작품은 우리의 신성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위와 길이 신성을 드러낼 수도 있음을….
‘성자가 된 청소부’란 책 제목을 머리에 서리가 앉고서야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하는 일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단지 우리가 우리 안의 진실을 대면할 결심을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것. 우리 모두의 삶 자체가 그 본연의 신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예술이다. 그리고 그 길을 의식적으로 선택해 걸어간 자들을 예술가라 명명하며 직업화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예술은 직업일 필요는 없다. 삶이 예술이다. 삶을 통해 발현되는 예술은 직업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온화한 미소로 한 여름 비지땀을 흘리며 아파트 청소 하시는 할머니를 가끔 뵙는다. 그 땀과 미소가 신의 선율로 다가온다. 그분은 나에게 베토벤이고 추사 김정희 선생님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중 하나로 거듭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들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거듭나는 아픔과 산고의 어려움이 앞에 놓여 있음을 알지만 이 길을 걷기로 합니다. 내 안에 불성이자 신성이 길을 안내할 터이고 내게서 나올 글들은 그 안내를 따라 이 브런치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을 만날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