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퍼실리테이터(Community facilitator for children with autism)로서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났던 아이는 당시 일곱 살, 클레이어(Claire)였다. 얼굴이 오목조목하니 예쁜 여자아이였다. 클레이어 엄마는 나와는 전 직장 동료였는데, 내가 그 직장을 그만두자 클레이어와 일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와 좀 더 가까워지자, 처음 클레이어가 자폐아 판정받았던 순간 얼마나 황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한동안 우울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하면서, 그런 자신이 가장 상처받았던 것은 어쭙잖게 위로한 사람들의 말이었다고 한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밖에 주지 않으시니 힘내세요."
"대단하세요. 나라면 못했을 거 같아요."
따위였단다.
다시는 그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어서 하는 건 줄 아냐고, 당신이 못할 것을 평범한 나는 할 수 있을 거 같냐고 소리치고 싶었다고 한다. 더 이상 낼 힘도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라는 말인가 했단다. 반면 아무말 없이 아이를 잠깐이라도 봐줄 테니 나가서 혼자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한 사람들, 별 말 없이 맛있는 밥 한 끼 사주거나, 반찬을 만들어 가져와 준 사람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목구멍으로 물조차 넘기기도 힘들었다면서...
감당할 수 있어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다. 감당할 수 있어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나 상황을 받아들이며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대 장성했던 아들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은 지인이 있다. 장례식에 가서 그를 대면했을 때 그냥 눈물만 났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라면 정말 못살았을 같다. 어떻게 이 큰 슬픔을 극복하고 살 수 있을까...'
나를 반성하게 됐다. 이런 말이나 생각은 '당신은 죽을 만큼의 슬픔을 겪고 있으니 아마도 못살 것이다'와 비슷한 말인 것이다. 그럼 아이를 따라 죽으라는 말인가... 그런 슬픔을 겪어본 적이 없다면 그냥 입 닥치고 있는 게 그들 슬픔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일이다.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 외에 그 누가 그들에게 위로가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