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 차별의 대가, 이혼

by 제제

회사에서 박 실장님과의 신뢰를 쌓고 복직 적응에 성공했음을 스스로 확인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나는 유리 천장을 부술 칼날을 손에 쥐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부의 싸움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정으로부터의 경고음이 울렸다.
​저녁 늦게 이재를 재우고, 막 거실로 나온 나를 나정식이 붙잡았다. 그의 얼굴은 회사 일보다 훨씬 무거운 근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보, 우리 형 말인데... 결혼할 것 같아. 상견례 전에 우리한테 먼저 인사하자고 연락 왔어."
​나정식의 형, 아주버님의 결혼. 시댁에게는 장손의 결혼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시댁이 과연 이 새 며느리에게는 나에게 했던 것과 같은 희생을 요구할지, 아니면 파격적인 대우를 해 줄지. 이 결혼은 곧 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시댁의 평가를 의미했다.
​우리는 아주버님의 여자친구를 소개받았다. 서울의 한적한 식당이었다. 간단한 점심 자리였지만, 그녀의 당당한 말투와 자신감 있는 태도는 나를 압도했다. 그녀는 마치 나를 상품처럼 위아래로 훑어보며 가치를 매기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이재 때문에 대화에 제대로 끼지 못했고,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자리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정식은 "예비 형수님,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라고 했지만, 나는 "겉만 보고 평가하지 말자"고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추석이 되었다. 나는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차례 음식 준비에 투입되었고, 이재를 재우고 거실로 나왔을 때, 온 가족이 모여 나누는 이야기는 차례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주제는 아주버님의 결혼이었다. 여자 쪽에서 '집을 해오지 못하면 결혼이 힘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와 나정식은 대출을 끼고 3억 원짜리 아파트를 자력으로 매매했었다. 그런데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주버님에게는 집을 해오라고?
​시어머님은 시골의 땅이며 아주버님의 전세금(1억 6천만 원)을 정리하면 2억 초중반이 될 것 같다며 노심초사했다. 나는 속으로 피가 솟구치는 듯했다. '우리에게도 반의 반만 나눠주셨다면 대출이자는 얼마 없을 텐데.'
​아주버님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표정으로 연극을 했다. "엄마, 아빠. 결혼은 해야 하는데... 집 때문에 어떡해요."
​그리고 결정타가 터졌다. 아주버님은 선언했다. "결혼도 서울에서 할 거예요."
​나는 충격에 나정식을 쳐다봤다. 내가 어머님의 뜻대로 지방에서 결혼했던 그 굴욕이 되살아났다.
​"어머님, 저는 여기서 했는데 아주버님은 왜 서울에서 하세요?"
​시어머님은 나의 질문을 간단히 무시했다.
​"너희 할 때 내가 여기서 한 번 해봤잖니. 이제 큰애는 서울에서 해야지. 장손인데. 사회생활도 있고."
​'장손.' 그 단어가 나의 헌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대기업에 다니는 우리 부부 대신, 중소기업에 다니는 장손의 기를 세워주기 위한 노골적인 차별이라는 확신이 나의 가슴을 불태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았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숨 막히는 침묵과 냉기로 가득했다. 시어머니의 배신감, 아주버님은 여우, 남편은 바보 같았다. 나는 그저 이 집안에 딸려있는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나정식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나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떨렸다.
​"나는 이제까지 공평하게 살아왔어. 그런데 당신 결혼하고 계속 차별의 삶을 살고 있다고! 당신은 이게 문제라는 걸 정말 이해 못 해?"
"어른들 결정이야. 나도 힘들지만, 제발 그냥 참고 넘어가자. 형 결혼이 달린 문제잖아!"
​"좋아. 그럼 이재가 커서 나처럼 지방 결혼하고, 이런 모진 소리 들으면서 차별받아도 당신은 괜찮겠어? 나는 귀한 집 딸이야. 당신 집안의 필요 때문에 나의 가치와 우리 가족의 노력이 무시당하는 걸 더 이상 못 참아!"
​분노에 찬 나의 절규에도, 나정식은 지친 얼굴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 줘. 당신만이라도. 당신만 가만히 있으면 평화야."
​그 말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최악의 비수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방으로 들어가 이혼 서류를 출력해 그의 앞에 던졌다. 종이 한 장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이자, 집안의 모든 공기가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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