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 결혼이란 황금빛 개꿈

by 제제

어떤 날은 서른을 훌쩍 넘긴 내 삶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른거리는 신기루 같은 '개꿈(Dog Dream)'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스무 살 이후의 삶은, 매 순간 '이것만 하면 끝이다!'라는 희망 고문과 함께 다음 스테이지로 강제 이동당하는, 땀으로 얼룩진 롤플레잉 게임 같았다.
​“좋은 대학만 가면 네 인생은 성공이야!” 열여덟, 어른들은 굳게 약속했고 나는 그걸 철석같이 믿었다. 수능이 끝났을 때 세상은 끝났고,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이미 인생의 최종 보스를 깨부순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대학 합격은 엔딩이 아니라, 다음 게임의 튜토리얼일 뿐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연애와 술, 학점이라는 미니 게임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특히 캠퍼스의 낭만이라 믿었던 연애는, 졸업반이 되자마자 장마철처럼 축축하고 씁쓸한 실패를 안겨주며 내 멘탈을 와장창 부숴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취업 전쟁.
​"자소서의 모든 문장은 너의 피와 땀으로 써야 한다!"
​대학 합격 후 잠시 꺼두었던 '전투력 만렙' 스위치를 다시 켜고, 푹푹 찌는 여름밤, 낡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학교 도서관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자소서와 면접이라는 고통의 루프를 돌았다. 수백 번의 자기소개, 수십 번의 탈락. 결국, 이름만 대면 아는 그럴싸한 대기업 명함 하나를 손에 쥐었을 때, 나는 비로소 진정한 '성공'에 도달했다고 착각했다.
​신입사원 한여름의 적응기는 다시 또 다른 전쟁이었다. 3년쯤 지나자, 나는 내가 꽤 '일잘러'인 줄 알았다. 팀 회식에서 회사 불평을 안줏거리 삼고, 선배 뒷담화를 하하호호 웃으며 떠드는 '만렙 직장인'이 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퇴근 후 혼자 맞는 자취방의 고독과, 소개팅에서의 얄팍한 실패담들은 이 모든 게 단단한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러다 그가 나타났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던 어느 소개팅 자리. 시큰둥했던 그날의 공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연애'라는 중독성 강한 퀘스트에 빠져들었다. 집에서는 “너 눈 멀었다, 제발 정신 차려라!” 잔소리가 쏟아졌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남편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서로를 사랑했다.
​1년 반의 불꽃같은 연애 끝에, 나는 ‘결혼’이라는 황금빛 꿈을 꾸기 시작했다. 완벽한 해피엔딩, 영원한 나의 안식처.
​하지만 결혼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 '시월드'라는 확장팩의 시작이었다.
​“우리 아까운 아들, 못 줍니다.” 상견례 전부터 갱년기 시어머니의 오락가락하는 변덕을 맞추느라, 결혼 준비는 즐거움 대신 한여름의 불쾌지수처럼 끈적하고 혹독한 수련의 과정이었다. 웨딩드레스 대신 전투복을 입은 기분으로, 한여름은 밤마다 홀로 되뇌었다.
​"이게… 정말 내가 꿈꾸던 결혼이 맞을까?"
​설상가상으로 결혼 준비 기간 내내, 신 책임님과 진행하는 회사 프로젝트는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한창 더운 8월, 땀을 줄줄 흘리며 상견례를 위해 귀국하고, 다음 날 새벽 다시 해외로 출국하는 살인적인 스케줄. 신부 관리라는 마사지나 피부과는 꿈도 못 꾸고, 결혼식 일주일 전에야 겨우 한국 땅을 밟았다. 거울 속의 나는, 황금빛 꿈을 꾸는 신부라기보다는, 한여름 땡볕에 만신창이가 된 결혼 프로젝트 총책임자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