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 잔치상 신고식

by 제제

​결혼식은 토요일, 나는 금요일 휴가를 쓰고 오전부터 KTX 특실에 몸을 실었다.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의 뜻에 따라 예식은 시어머니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 예식장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나는 서울 지인들에게 KTX 왕복 티켓을 끊어주는 것으로 체면을 세웠고, 나의 부모님은 다음 날 새벽에 오시기로 했다. 나는 시어머니의 바람대로 전날 먼저 내려가 시댁 어른들께 인사를 올릴 참이었다.

​오랜 해외 출장으로 지쳐있는 몸을 이끌고 낯선 땅에 도착했을 때, 나를 반긴 것은 시어머니의 긴장감 섞인 눈빛이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머금고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친척 집들을 돌며 “나정식 씨의 아내가 될 한여름입니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시댁으로 돌아왔을 때, 집에는 친지 몇 분이 모여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잔치상이 차려져 있었다. 온화한 성품의 시아버지께서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실 뿐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으나, 시어머니는 흥에 겨워 술잔을 몇 순배 돌리시고 난 후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버리셨다.

​술기운이 오른 시어머니가 숟가락을 탁, 소리 내어 내려놓더니 나를 향해 진심을 담은 듯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여름아.”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 술렁이던 잔치상의 공기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우리 아들이 너무 아까워서 보내주기 싫다. 정말로.”

​시어머니는 들으라는 듯 잔을 크게 들이켰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지금 이 순간, 내일 결혼식을 앞둔 아들 앞에서, 술김에라도 할 말인가. 온화한 시아버지마저 묵묵부답으로 침묵하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는 잔인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정식이가 뭘 몰라. 여자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너를 만나서 이렇게 덜컥 식을 올리게 됐지. 얼마나 서운한지 아냐. 나는 네가 우리 정식이 아깝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나는 지금 당장 이 결혼을 파혼하고 싶었다. 당장 KTX 막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 아들 저도 아깝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이 지독한 시월드 입성 신고식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감정의 쓰나미가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무력했다. 입술을 깨물어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삼켰다.

​시어머니의 경고는 이어졌다. 술에 취한 눈으로 그녀는 내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 서울에서 일 잘한다며. 똑똑한 척 해 가지고 우리 아들 힘들게 하거나 기 죽이면, 내가 가만 안 둔다. 똑똑한 여자가 살림 못하는 건 봐도, 나정식이 힘들게 하는 건 못 본다.”

​그 순간, 눈앞이 새하얘졌다. '나정식'과의 뜨거운 사랑만이 전부였던 내 결혼의 환상이 산산조각 났다. 파혼을 외치려는 순간, 내일 아침 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 머나먼 지방까지 내려올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회사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결혼식 전날, 신부가 도망갔대."

"결혼 준비하다 파혼했다지? 여자가 유별났대."

​혹여나 이 모든 절박한 상황이 나에게 '흉'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 '유난스러운 여자'로 손가락질당할 거라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공포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음을 억지로 다시 눌러 넣었다. 나는 나의 경력과 성취가 '똑똑한 척'으로 매도당하는 굴욕 앞에서, 그저 고개를 숙이는 병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겨우 인사를 마치고 준비된 숙소로 돌아왔다. 깨끗하게 정리된 방에 쓰러져,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 베개를 적셨다.

​파혼을 외치지 못했던 비겁함, 돌아가지 못했던 무력함. 그 절망적인 감정만이, 결혼식 전날 밤 한여름의 전부였다.

작가의 이전글제1화 : 결혼이란 황금빛 개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