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작업을 시작했다. 박 실장님이 던져주신 서류철은 나에게 주어진 '생존 프로젝트'이자, 동시에 동료들의 운명이 담긴 무거운 짐이었다. 나는 윤리적 혼란 속에서도, 이 잔혹한 임무를 가장 객관적인 전문가의 시각으로 수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작업의 핵심은 감정을 배제하고 숫자에만 의존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과거 성과가 아니라, 향후 1~2년 동안 우리 사업부가 진행해야 할 핵심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최소한의 인원'과 '최소한의 고정비'를 확보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다.
나는 스텝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1.미래 인력 수요 역산 : 실장님의 비공개 전략 초안을 분석하여, 향후 신규 사업에 필요한 인력의 수와 유형을 계산했다. 이는 곧 '살아남아야 할 필수 인력'의 정의가 되었다.
2. 고정비 기준 가성비 분석 : 연봉 테이블과 복지 비용을 인력 평가 점수와 교차 분석했다. 특히 고연봉이지만 최근 3년간 성과 점수가 하락세에 있거나, 프로젝트 기여도가 낮은 인력은 냉정하게 '정리 대상'의 상위권으로 분류되었다. '고정비 효율화'라는 기준은 나에게 가장 잔혹한 칼날이었다.
3. 성과 및 평판 재조사 : 개인별 고과, 팀별 기여도,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수집한 프로젝트 평판 데이터를 종합했다. 육아 휴직이나 잦은 병가로 데이터상 '업무 공백'이 발생한 동료들은 성과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프로젝트에서의 불확실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명단에서 밀려났다.
책상 위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나뒹굴었다. 아무리 감정을 떼어내려 해도, 올리고 싶어도 도저히 객관적인 지표로 올릴 수 없는 주변 동료들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절망감이 밀려왔다.
'이게 맞는 걸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업무가 정말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길일까?'
나는 자아와 윤리적 판단 사이의 깊은 미로(迷路)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나의 이재를 지키기 위해, 결국 다른 동료의 가정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자괴감이 나를 짓눌렀다.
중간보고를 위해 박 실장실을 찾았다. 나는 내가 정리 대상으로 분류한 명단과 그 근거를 제시했다.
"실장님, 현재 A팀의 B 부장님은 고정비가 높지만, 미래 프로젝트인 [신규 플랫폼 기획]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이 없어 정리 대상에 올렸습니다. 반면, C팀의 D 대리는 연봉은 낮지만, 신규 사업에 필요한 기술 전문성을 갖고 있어 잔류 인력으로 분류했습니다."
박 실장님은 내 명단을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 B 부장은 김 전무 라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정리 대상으로 올린 명단 중에는 내부적으로 리더십 공백을 메울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인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무 데이터 위주로만 판단한 것 아닌가요? 조직의 균형을 간과했어요."
"실장님, 균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이 우선입니다. B 부장의 리더십이 중요한 것은 알지만, 미래 프로젝트를 위해 가성비 높은 인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공백은 D 대리 같은 핵심 인력의 권한 확대로 메워야 합니다."
나는 정면으로 실장님과 부딪혔다. 나의 논리는 차갑고 현실적이었다. 박 실장님은 한동안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셨다. 그분은 나의 '냉혹한 효율성'에 놀란 듯했다.
(깊은 한숨 후) "좋습니다. 당신의 논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명단에는 정치적 요소와 내부적인 이해관계가 얽혀 있습니다. 당신이 제시한 구조를 바탕으로, 내가 최종적으로 조정할 겁니다.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하고, 최종 보고서를 올리세요."
결국 나의 보고서는 '최종 조정'이라는 단서를 달고 통과되었다. 나는 간신히 실장실을 빠져나왔다.
일주일간의 밤샘 작업을 거쳐, 나는 최종 명단을 완성했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업부의 미래 생존과 효율화'라는 박 실장님의 지침에만 충실히 따른 결과였다. 명단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고, 그 논리 위에 동료들의 미래가 서 있었다.
명단을 인사팀에 보내는 순간까지도, 나의 손은 떨렸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나는 박 실장님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지만,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동료들이 나에게 보낼 눈초리와 화살, 그리고 분노에 대한 부담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나는 마치 조직 내의 '배신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며칠 후, 구조조정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내가 정리 대상으로 분류한 일부 직원들은 결국 퇴직 대상자가 되었고, 몇몇은 지방 사업부로의 발령이라는 사실상의 좌천을 통보받았다. 회사는 '조직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이 모든 사태를 깔끔하게 덮었다.
나는 그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복도에서 그들을 피했다. 하지만 그들의 굳은 표정과 절망이 담긴 뒷모습은 나의 마음에 선명한 흉터를 남겼다. 이 잔혹한 숙청의 순서는, 오늘 나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명분이 되었지만, 곧 나에게도 돌아올 수 있는 칼날임을 직감했다. 나는 불안감에 떨리는 마음을 쥐어잡았다. 회사가 나를 '필요한 인재'로 분류했더라도, 언제든 '고정비 부담이 큰 소모품'으로 버려질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고통스러운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나는 더욱더 확고한 지위를 확보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