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만난 김 책임과의 대화는 나에게 큰 충격과 동시에 동질감을 안겨주었다. 이후 우리는 종종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김 책임은 '여자'라는 이유로 커리어에서 겪는 불합리함을, 나는 '임산부'라는 이유로 밀려난 좌절감을 공유했다.
"한여름씨, 지금은 잠시 쉬는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안 돼요. 내가 겪은 불합리함, 한여름씨는 똑같이 겪지 않게 해줘야지."
김 책임의 지혜와 나의 치밀함이 합쳐져, 나는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잠시 웅크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복직 후 커리어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은밀히 짜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온 힘을 쏟았던 중국 신규 프로젝트의 연말 우수 프로젝트 선정 발표가 열렸다. 나는 지원부서 직원으로 참석해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발표를 지켜봤다.
발표자는 조 선임이었고, 신책임은 그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슬라이드가 넘어갈 때마다 내가 밤샘하며 작성했던 데이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헌신했던 프로젝트에서, 나는 유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종 성과와 함께 포상이 발표되는 순간, 나의 이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뱃속의 아이 때문에 억지로 참았다.
발표회가 끝나고 복도에서 신책임과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한여름! 아쉽게 됐어. 프로젝트 마무리는 역시 여름이가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우리가 대상 받았을 텐데! 건강이 최우선이지, 뭐. 하하."
그의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네가 임신해서 우리가 아쉽게 됐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대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인정과 동시에, 나를 비참하게 만든 그 말만큼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없었다.
며칠 후, 최종 고과(考課)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당해년도 근무 기간이 더 많은 직전 팀장은 나에게 '프로젝트 중도 이탈'이라는 명목으로 바닥 고과를 주었다. 회사 입사 후 처음 받는 최하위 고과였다.
'남들 다 같이 공부해서 입사한 대기업인데, 내가 왜 임신 때문에 포기하고 나가야 해?' 절망감과 함께 '이 고과를 위해 이탈리아 캐리어도 못 풀고 이 난리를 쳤나' 하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나는 독하게 마음먹었다. "포기할 수 없어.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잠시 쉬어간다는 생각을 하자."
겉으로는 '한직'이었던 지원부서에서 나는 박 책임, 명 주임이라는 훌륭한 육아 선배들을 만나 '육아 사전 학습 시간'을 가졌다. 김 책임과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나의 커리어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는 '전략 구상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지원 업무와 육아 학습, 그리고 김 책임과의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며 휴직 전까지 평화롭게 보냈다.
마침내, 출산을 위해 육아 휴직이 시작되는 날. 나는 회사 건물 문을 나서는 순간, 해방감에 휩싸였다. 그 지긋지긋했던 규칙적인 회사 생활, 나의 존재를 부정했던 유리 천장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세상 처음처럼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이제, 병아리는 회사라는 둥지를 떠나, '닭엄마'가 되기 위한 다음 단계, 육아의 세계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