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 엄마의 이름, 아기의 이름

by 제제

​육아 휴직 후 찾아온 평온함도 잠시, 나는 출산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아이가 뱃속에서 돌지 않는 역아(逆兒) 상태였던 것이다. 예정에 없던 제왕절개 수술이 결정되었고, 휴직 후 얼마 되지 않은 36주에 수술이 잡혔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오직 뱃속의 아이에게만 향해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곧 만날 아기 생각에 심장이 벅차올랐다.
​나는 뱃속의 아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가야, 엄마도 지금 너무 무서워. 하지만 걱정 마. 엄마가 지켜줄게. 조금 있다가 세상에서 만나자. 사랑해."
​마침내 수술이 시작되었고,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강렬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응애! 응애!"


​힘찬 울음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채, 간호사 품에 안긴 내 딸은 세상의 빛을 보았다. 몸무게 2.74킬로그램의 작은 여자 아기. 아이를 만나는 그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벅찬 감격에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기는 만화에서 보던 아기 공룡 둘리처럼 동글동글하고 귀여웠다. 수술대 위, 마취에 취해 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바라봤다. '이 작고 소중한 존재가, 나의 딸이구나.'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유리 천장이고 시월드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왕절개 수술 때문에 잘 걷지 못했지만, 낑낑거리며 신생아실로 아기를 보러 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수술 자국으로 아픈 배 위로, 젖 물리는 고통을 감수하며 시작한 모유 수유 시간마저 행복했다. 나는 이제 명실상부한 '엄마'가 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곧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아이가 황달 수치 때문에 분유를 함께 먹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유량이 충분치 않은 나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때, 시어머니가 다시 등장하셨다. 퇴원 날짜에 맞춰 병원에 오신 시어머니는 단호하셨다.
​"애미야, 힘들더라도 분유는 안 된다. 분유는 아기한테 안 좋아. 너도 알잖아. 모유 수유가 아기한테 최고다. 우유량이 적으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분유 말고 모유 먹여라."
​나는 아이가 황달 때문에 병원에서 분유를 권유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 들었지만, 시어머니의 완고함을 꺾을 수 없었다. 내 몸의 상태, 아이의 건강 상태보다 '모유가 최고'라는 그녀의 고집이 우선이었다.

​퇴원 후 조리원으로 이동하던 날, 시어머니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봉투 안에는 한지에 깔끔하게 적힌 아이의 사주와 이름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그 리스트에는 이름 8개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나유주, 나서아, 나하윤, 나지안, 나예린, 나채은, 나이솔, 나이재


​"한여름아, 네가 똑똑한 건 알지만, 아이 이름은 아무렇게나 지으면 안 된다. 사주에 맞춰서 좋은 이름으로 골라야 복을 받지. 이 리스트 안에서 골라서 출생 신고해라."
​나정식과 나는 10달 넘게 함께 아이 이름을 고민했고, 이미 마음에 둔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나의 설명과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내가 우리 손주에게 좋은 이름을 선물해야지. 이 리스트 안에서 골라야 아이에게 좋다고 내가 직접 철학관 가서 받아왔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단언하시고는, 남편과 나에게 숙제를 던져준 채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나는 허탈했다. 내 자식의 이름조차 부모 마음대로 짓지 못하고, 시댁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이 결혼의 또 다른 현실이었다.


​'닭엄마'가 되기 위한 나의 첫걸음은, 유리 천장 대신 '시댁의 이름 리스트'라는 종이 벽에 부딪히며 시작되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이 이름 리스트가 나를 더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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