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후 찾아온 평온함도 잠시, 나는 출산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아이가 뱃속에서 돌지 않는 역아(逆兒) 상태였던 것이다. 예정에 없던 제왕절개 수술이 결정되었고, 휴직 후 얼마 되지 않은 36주에 수술이 잡혔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마음은 오직 뱃속의 아이에게만 향해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곧 만날 아기 생각에 심장이 벅차올랐다.
나는 뱃속의 아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가야, 엄마도 지금 너무 무서워. 하지만 걱정 마. 엄마가 지켜줄게. 조금 있다가 세상에서 만나자. 사랑해."
마침내 수술이 시작되었고,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강렬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응애! 응애!"
힘찬 울음소리가 수술실을 가득 채웠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채, 간호사 품에 안긴 내 딸은 세상의 빛을 보았다. 몸무게 2.74킬로그램의 작은 여자 아기. 아이를 만나는 그 순간,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벅찬 감격에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기는 만화에서 보던 아기 공룡 둘리처럼 동글동글하고 귀여웠다. 수술대 위, 마취에 취해 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는 온 힘을 다해 아이를 바라봤다. '이 작고 소중한 존재가, 나의 딸이구나.'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유리 천장이고 시월드고,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왕절개 수술 때문에 잘 걷지 못했지만, 낑낑거리며 신생아실로 아기를 보러 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수술 자국으로 아픈 배 위로, 젖 물리는 고통을 감수하며 시작한 모유 수유 시간마저 행복했다. 나는 이제 명실상부한 '엄마'가 된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곧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아이가 황달 수치 때문에 분유를 함께 먹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유량이 충분치 않은 나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때, 시어머니가 다시 등장하셨다. 퇴원 날짜에 맞춰 병원에 오신 시어머니는 단호하셨다.
"애미야, 힘들더라도 분유는 안 된다. 분유는 아기한테 안 좋아. 너도 알잖아. 모유 수유가 아기한테 최고다. 우유량이 적으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 분유 말고 모유 먹여라."
나는 아이가 황달 때문에 병원에서 분유를 권유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 들었지만, 시어머니의 완고함을 꺾을 수 없었다. 내 몸의 상태, 아이의 건강 상태보다 '모유가 최고'라는 그녀의 고집이 우선이었다.
퇴원 후 조리원으로 이동하던 날, 시어머니는 나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셨다. 봉투 안에는 한지에 깔끔하게 적힌 아이의 사주와 이름 리스트가 들어 있었다.
그 리스트에는 이름 8개가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나유주, 나서아, 나하윤, 나지안, 나예린, 나채은, 나이솔, 나이재
"한여름아, 네가 똑똑한 건 알지만, 아이 이름은 아무렇게나 지으면 안 된다. 사주에 맞춰서 좋은 이름으로 골라야 복을 받지. 이 리스트 안에서 골라서 출생 신고해라."
나정식과 나는 10달 넘게 함께 아이 이름을 고민했고, 이미 마음에 둔 이름도 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나의 설명과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내가 우리 손주에게 좋은 이름을 선물해야지. 이 리스트 안에서 골라야 아이에게 좋다고 내가 직접 철학관 가서 받아왔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단언하시고는, 남편과 나에게 숙제를 던져준 채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나는 허탈했다. 내 자식의 이름조차 부모 마음대로 짓지 못하고, 시댁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이 결혼의 또 다른 현실이었다.
'닭엄마'가 되기 위한 나의 첫걸음은, 유리 천장 대신 '시댁의 이름 리스트'라는 종이 벽에 부딪히며 시작되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이 이름 리스트가 나를 더 깊은 좌절감에 빠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