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서 퇴소하던 날, 나의 뜻과 상관없이 딸의 이름은 시어머니가 철학관에서 받아 오신 리스트 중 하나인 '나이재'로 남편이 출생 신고을 했다. 내가 10달 넘게 고민했던 이름들은 시댁의 강한 '제안'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내 자식의 이름조차 내 의지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이 결혼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딸 나이재가 태어나는 그 날부터, 시어머니의 '일일 사진 보고'는 철저한 의무가 되었다. 지방에 사시는 시부모님께서는 아기의 성장을 하루도 놓칠 수 없다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재의 사진을 보내라고 하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아기의 예쁜 순간을 포착해 보고했다. 시부모님의 잦은 방문과 접대, 그리고 이재 육아까지 겹쳐 나는 뼈마디가 쑤실 만큼 지쳐갔다.
나는 바닥 고과의 쓴맛을 잊지 않았다. 복직 후의 삶을 위해, 나는 회사 근처로의 이사를 강행했다. 출퇴근 시간을 줄여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한 나의 첫 번째 전략이었다.
드디어 이삿날. 짐을 싸고 푸는 정신없는 하루였다. 시부모님께서 "오늘은 우리가 이재를 전담하겠다!"며 지방에서 올라오셨다. 나는 그 호의가 너무나 달콤했다. 하루라도 육아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이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저녁이 되어 이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이재를 데리러 아주버님의 자취방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후끈한 열기가 숨을 막히게 했다. 방 안은 사우나처럼 난방이 최고치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이재를 안고 나오셨다. 이재는 두꺼운 배냇저고리 위에 또 담요로 꽁꽁 싸매여 있었다.
"아이고, 우리 손주! 이삿짐 옮기느라 추우면 안 되니까 할미가 이렇게 덮어주고 보일러도 세게 틀었지!"
나는 이재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재의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온 얼굴에 붉은 태열이 끔찍하게 열꽃처럼 피어 있었다. 이마와 목덜미에는 땀까지 흥건했다. 아이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 이재 얼굴이 왜 이래요? 이거 너무 더워서 열꽃 핀 거예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시어머니는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아이고, 아기들은 다 이렇지. 추운 것보단 낫다. 그리고 얘가 엄마 찾느라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울어서 혼났단다. 힘이 얼마나 센지!"
'하루 종일 울었다고?'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왜 연락을 안 주셨냐는 나의 질문에, 시어머니는 내가 이사에 신경 쓸까 봐 그랬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는 직감했다. 단지 '내 손주를 하루 종일 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이의 상태는 물론, 엄마인 나의 걱정까지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이재의 붉은 열꽃을 보는 순간, 감사함은 사라지고 분노와 원망만이 차올랐다. '이건 정말 사랑이 아니다. 침범이다.'
새집으로 돌아와 나는 곧바로 이재의 옷을 벗겼다. 열꽃 핀 몸을 미지근한 물로 조심스럽게 씻기고, 약을 발라주었다. 온몸이 붉게 달아오른 딸을 품에 안고,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결심했다.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딸 이재를 시댁에 맡기지 않으리라."
나의 '닭엄마'로서의 첫 번째 전투는, 유리 천장이 아니라 '내 아이의 건강과 영역을 지키는 것'으로 새로운 막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