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 광복절 경축식이 한창이던 그날, 총성이 울렸다. 육영수 여사가 피격당했다. 피가 흘렀고, 청와대는 침묵에 잠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연단에 서 있었지만, 그의 눈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 박근혜는 그날 이후 달라졌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녀에게 단순한 상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의 붕괴였다. 그녀는 청와대의 안주인 역할을 맡았고, 외로움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 틈을 파고든 자가 있었다. 최태민. 그는 스스로를 목사라 불렀고, 영세교라는 종교를 창시했다. 그는 박근혜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머님의 영혼이 나를 통해 당신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경계했지만, 박근혜는 점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최태민의 존재는 점점 더 깊숙이 자리 잡았다.
최태민은 구국봉사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박근혜를 명예총재로 앉히며, 그녀의 이름을 내세워 기업과 인사들에게 접근했다. 그는 “박근혜 양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각종 이권을 챙겼고, 그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그의 조직은 종교적 외피를 쓰고 있었지만, 그 내부는 향락과 탐욕으로 가득했다. 여성 정치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었고, 그는 여성들을 선발해 기업과 정치인을 연결했다. 박근혜는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조언을 정치적 판단에 반영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그의 존재는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침묵했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그는 최태민의 비리를 수차례 박정희에게 보고했다. “최태민은 구국봉사단을 이용해 기업을 갈취하고, 여성 정치 지망생들을 성추행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이를 묵살했다. 오히려 구국봉사단 총재직을 박근혜에게 넘기며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만들었다. 김재규는 충격을 받았다. “나라의 암적 존재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결심을 굳혀갔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를 향해 총을 들었다. 그는 “각하는 내 은인이지만,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정희는 딸과 최태민의 관계를 직접 조사했다. 중앙정보부 백광현 국장을 배석시켜 박근혜를 친국했다. 그러나 증거는 부족했고, 박근혜는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은 저를 도와준 분입니다.” 박정희는 갈등했다. 그는 최태민을 총재직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박근혜는 그 자리를 대신했다. 최태민은 여전히 배후에서 조직을 조종했다. 박정희는 선우연 비서관에게 말했다. “자네, 최태민을 가까이 안 하게 할 수 있나? 그간 새마음봉사단에 관해 최태민과 관련한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네.” 그러나 그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최태민은 청와대 주변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는 박근혜의 일정에 개입했고, 인사 추천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조직은 구국십자군, 새마음봉사단, 새마음병원 등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태자마마”라 불렀고, 이름을 여섯 번 바꾸었으며, 결혼도 여섯 차례나 했다. 그의 삶은 혼란과 조작의 연속이었다. 박근혜는 그를 신뢰했다. 그녀는 “그분은 정말 사심 없이 좋은 일을 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는 그를 경계했다.
박정희가 사망한 후, 전두환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다. 그는 한때 최태민을 강원도 군부대로 보내 박근혜와 분리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 후 흐지부지됐다. 조순제는 말했다. “전두환이 근혜는 절대 안 건드려. 신성시하고.” 그는 박근혜에게 6억 원을 전달했고, 스위스 은행에 50억 원이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그 돈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는 단순한 정신적 의존을 넘어, 경제적 결합으로 이어졌다. 뉴스타파는 이들의 관계를 “경제공동체”라고 표현했다. 최태민의 딸 최순실은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이들의 관계는 40년 이상 이어졌고, 권력의 이면을 드러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최태민의 그림자는 청와대를 떠나지 않았다. 최순실은 비선 실세로 활동했고, 미르·K스포츠 재단을 통해 이권을 챙겼다. 박근혜는 “순수한 마음으로 도왔다”고 말했지만, 국민은 분노했다. 촛불이 타올랐고, 그녀는 탄핵되었다.
최태민은 1994년 사망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살아 있었다. 박근혜는 그를 부정하지 않았고, 최순실은 그의 길을 따랐다. 이들의 관계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권력과 정신적 지배, 그리고 침묵의 공모. 국민은 물었다. “우리는 왜 그들을 막지 못했는가?”
한 시민이 청와대 앞을 지나며 말했다. “그들은 그림자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그림자를 너무 오래 방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