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늦가을의 바람은 안가의 담장을 넘지 못했다. 그곳은 권력의 심장이었고, 침묵의 요새였다. 저녁 7시 30분, 박정희 대통령은 연회장에 들어섰다.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를 맞이했다. “오늘은 조용히 식사나 하세.” 박정희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고, 눈빛은 멀어져 있었다. 김재규는 그 눈빛을 읽으려 했다. 그것은 피로였을까, 혹은 무관심이었을까.
식사가 시작되고, 술잔이 오갔다. 차지철은 연신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각하, 부산과 마산의 시위는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입니다. 계엄령을 선포해야 합니다.” 김재규는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국민입니다.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박정희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 잠시 나와보게.” 그렇게 독대가 시작되었다. 안가의 작은 응접실, 두 사람만이 남았다. 김재규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수차례 이 순간을 상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말해야 했다.
“각하, 이 체제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국민은 숨을 쉴 수 없습니다.” 박정희는 조용히 김재규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차 실장은 나를 지키고 있다.” “그는 각하를 사유화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위가 아니라, 그의 권력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자네는 너무 민감하군.” “아닙니다. 저는 너무 오래 참았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박정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 나라를 일으켰다. 그 누구도 나처럼 이 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을 적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박정희는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나를 배신하려는가.” 김재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이미 결심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과거를 떠올렸다. 1961년, 군사혁명 직후 그는 박정희의 곁에 있었다. 충성했고, 믿었다. 박정희는 그에게 “우리는 이 나라를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의 신념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신념은 균열을 일으켰다. 유신, 긴급조치, 언론 통제, 고문, 실종. 그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했다. 너무 오래. “각하, 저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는 눈을 감았다. “자네가 나를 쏘겠다는 건가.” 김재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은 너무 무거웠다.
독대는 끝났다. 두 사람은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차지철은 여전히 강경했고, 김계원은 침묵했다. 박정희는 술잔을 들었다.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니, 건배하세.” 김재규는 권총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박정희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그것은 권력의 피로였고, 인간의 고독이었다.
그 순간, 그는 총을 꺼냈다. 총성이 울렸다. 차지철은 박정희를 막으려다 함께 쓰러졌다. 연회장은 피로 물들었다.
김재규는 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말없이 앉았다. 경호원들이 달려왔고, 혼란이 시작되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혁명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체제를 멈춘 것이다.” 박정희는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두었다. 김재규는 체포되었고, 수사와 재판이 이어졌다. 그는 법정에서 말했다. “나는 이 나라를 위해 총을 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나를 범죄자로 기록할 것이다.”
전두환은 움직였다. 그는 보안사령관으로서 군을 장악했고, 사건의 수사를 주도했다. 그는 김재규를 체포했고, 언론을 통제했다. 그는 말없이 권력을 향해 걸었다. 김재규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대통령을 쏘았지만, 국민을 위해 쏘았다.” 박정희는 국장으로 치러졌고,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었다. 궁정동의 총성은 그렇게 침묵으로 덮였다.
세월이 흘렀다. 궁정동은 철거되었고, 무궁화동산이 되었다. 그러나 그 밤의 총성은 여전히 기억 속에 울린다. 한 시민은 말했다. “김재규는 그림자였고, 박정희는 심장이었다. 그날, 그림자가 심장을 꿰뚫었다.” 그 말은 시대의 평가였다. 독대의 순간, 두 사람은 역사의 문턱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은 총성으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