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내면에서 본 개혁과 위기

by 김작가a

상도동의 깃발

김대중은 그를 오래 지켜보았다. 상도동의 그 사람, 김영삼. 그들은 함께 싸웠고, 함께 견뎠다. 유신의 어둠 속에서, 전두환의 권위주의 아래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은 늘 평행선이었다. 1992년 겨울, 김영삼은 대통령이 되었다. 문민정부. 군복을 입지 않은 첫 대통령. 김대중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경쟁자였지만, 동시에 동지였다.

김영삼은 개혁을 시작했다.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고위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하며, 그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대중은 그 결단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그는 칼을 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는데.” 그들의 방식은 달랐다. 김영삼은 빠르고 강했다. 그는 정면으로 돌파했고, 때로는 부수었다. 김대중은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그는 설득했고, 때로는 돌아갔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같았다. 민주주의. 국민의 권리. 국가의 미래.

세계화의 그림자

김영삼은 ‘세계화’를 외쳤다. 그는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OECD 가입, 자본시장 개방, 금융 자유화. 그는 문을 열었고, 외국 자본은 그 문을 지나 들어왔다. 김대중은 그 흐름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너무 빠르다.” 한국의 금융 시스템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감독 체계는 미흡했고, 리스크 관리 능력은 부족했다. 그는 걱정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정부가 아니었고,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는 동교동의 서재에서 조용히 자료를 읽었다. 외환보유고는 줄어들고 있었고, 단기 외채는 늘어나고 있었다. 기업들은 과잉투자에 몰두했고, 금융기관은 부실 대출을 쌓아갔다. 그는 생각했다. “이대로 가면, 무너진다.” 그러나 그는 기다렸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경고하지 않았다. 그는 준비했다.

위기의 전야

1997년 여름, 동남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자본은 빠져나갔고, 통화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불길은 서울로 번졌다. 기업들이 무너졌다. 삼미, 진로, 기아, 해태.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졌고, 은행은 흔들렸다. 외환은 바닥을 드러냈고,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김영삼은 IMF에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결단이었고, 동시에 굴욕이었다. 김대중은 그 뉴스를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제 내가 나설 때다.” 그는 대통령 후보였다. 국민은 그를 불렀고, 그는 응답했다. IMF 위기 속에서, 그는 선택받았다. 그것은 운명이었고, 책임이었다.

동교동의 응답

청와대에 들어선 첫날, 김대중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민의 삶이었다. 그는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기업은 정리되고, 금융은 통합되었다.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왔고, 그는 그들과 대화했다. 노사정 대타협. 그는 설득했고, 합의를 이끌었다.

그는 IMF와 협상했다. 조건은 가혹했고, 고통은 컸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 말은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정보화 정책을 추진했다. IT 산업을 육성했고, 인터넷은 전국으로 퍼졌다. 청년들은 새로운 꿈을 꾸었고, 한국은 다시 일어섰다.

상도동의 그림자

그는 가끔 상도동을 떠올렸다. 김영삼. 그 사람은 개혁을 시작했고, 그 개혁은 빛났지만, 그 끝은 어두웠다. IMF는 그 개혁의 그림자였다. 김대중은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이해했다. “그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개방은 위기를 불렀고, 그 위기는 국민의 고통이 되었다. 그는 그 고통을 안고 있었다. 그는 책임을 느꼈고, 그 책임은 그를 잠 못 들게 했다. 그는 밤마다 보고서를 읽었고, 새벽마다 회의를 열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평화의 길

2000년, 그는 평양으로 향했다. 김정일과 마주 앉은 그 순간, 그는 생각했다. “이제는 대화할 시간이다.” 그는 손을 내밀었고, 김정일은 그 손을 잡았다. 햇볕정책. 그는 평화를 선택했고, 협력을 제안했다. 그는 비판받았고, 의심받았다. 그러나 그는 믿었다. “평화는 말로 시작된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세계는 그를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웃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이 상은 국민의 것이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두 사람

김영삼은 결단의 사람이다. 그는 칼을 들었고, 길을 열었다. 그의 개혁은 빠르고 강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때로 무모했고, 그 끝은 위기였다. 김대중은 인내의 사람이다. 그는 손을 내밀었고, 다리를 놓았다. 그의 개혁은 조용하고 깊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은 때로 의심을 불렀고, 갈등을 낳았다. 그들은 서로를 비판했고, 경쟁했다. 그러나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민주주의. 국민의 권리. 국가의 미래.

8마지막 악수

2009년, 세브란스병원. 김대중은 병상에 누워 있었다. 김영삼은 조용히 병실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말없이 손을 잡았다. 그 악수는 화해였고, 동시에 시대의 마침표였다. 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손끝에서, 국민은 느꼈다. “우리는 함께 싸웠다.”

유산의 심장

김영삼은 문민정부를 열었다. 그는 군부의 그림자를 걷어냈고,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그의 유산은 민주주의의 제도화였다. 그러나 IMF의 그림자는 그를 따라다녔다. 김대중은 국민의 정부를 열었다. 그는 위기를 넘겼고, 평화의 길을 닦았다. 그의 유산은 민주주의의 안정화였다. 그러나 대북 정책의 논쟁은 그를 흔들었다.

그들의 싸움은 철학의 충돌이었고, 시대의 선택이었다. 결단과 협상, 행동과 설득, 조직과 감각. 그들은 서로 달랐지만, 결국 같은 별이었다.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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