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방원이다. 조선의 태종이라 불리는 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름 뒤에 숨겨진 피와 눈물의 이야기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는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이 여럿 있었고, 아버지는 여러 부인을 두었기에 형제 사이의 정은 얕고, 권력에 대한 욕망은 깊었다. 아버지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다. 나는 그 곁에서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고, 고려의 마지막 왕을 무릎 꿇게 만든 그날에도 나는 아버지의 옆에 있었다. 하지만 정작 조선을 세운 뒤,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린 이방석을 세자로 삼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방석은 아버지가 가장 총애하던 후궁 강씨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싸워서 얻은 나라였고, 내가 피 흘려 지킨 조선이었다. 그런데 어린 동생이 왕이 된다니? 그건 형제들 모두에게 모욕이었다.
이방석을 세자로 만든 건 아버지의 뜻이었지만, 그 뒤에는 정도전이 있었다. 그는 조선의 설계자였다.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며 왕권보다 신권을 중시했다. 그는 나를 경계했고, 나의 군사적 능력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방석을 세자로 만들고, 나를 멀리했다. 나는 그를 제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은 왕이 아닌 신하의 나라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형제들과 뜻을 모아, 정도전과 이방석을 제거하기로.
1398년, 나는 움직였다. 정도전의 세력은 강했지만, 나는 군사력이 있었다. 형 이방간과 이방번도 내 편이었다. 우리는 궁궐을 급습했고, 정도전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방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왕위 계승자였다. 그를 살려두면 또다시 권력의 불씨가 될 터였다. 그날 이후, 궁궐은 피로 물들었다.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고, 왕위를 장남 이방우에게 넘겼다. 그는 정종이 되었지만, 실권은 나에게 있었다.
1400년, 또다시 피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형 이방간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나를 제거하고 왕이 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제압했다. 그는 패배했고, 결국 죽음을 맞았다. 공식 기록엔 자살이라 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말한다. “이방원이 형을 독살했다”고.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가 죽은 방식은 조용했고, 흔적이 없었다. 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조선을 위한 선택이었다. 형제의 피를 흘리는 것보다, 조용히 마무리하는 것이 나았다.
형 이방우는 왕위를 내게 넘겼다. 나는 태종이 되었다. 왕이 되었지만, 나는 외로웠다. 형제는 거의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나를 두려워했다. 나는 사병을 철폐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조선은 안정되었지만, 나는 피로 왕이 되었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방원이 형제들을 독살했다”고. 이방석은 독차를 마셨고, 이방간은 독약에 쓰러졌다고. 정도전도 독으로 죽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실록은 말한다. “처형되었다”, “자살했다”, “병사했다”. 나는 말하고 싶다. 그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아니다. 나는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때로는 조용한 방법을 택했다. 독은 칼보다 조용했고,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조선을 위한 길이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왕이 된 뒤, 조선은 달라졌다. 왕권은 강화되었고, 종친은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나는 아들 세종에게 안정된 나라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그 기반은 형제의 피와 숙청의 그림자 위에 세워졌다.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조선은 살아남았고, 세종은 위대한 왕이 되었다. 내가 피를 흘린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나는 늙었다. 왕위를 물려주고, 궁궐의 깊은 곳에서 조용히 지낸다. 밤이 되면 형제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방석의 어린 눈망울, 이방간의 분노, 정도전의 날카로운 눈빛. 나는 그들을 죽였다. 칼로, 독으로, 권력으로. 하지만 나는 조선을 살렸다. 그 대가는 외로움이었다. 나는 태종이다. 그리고 형제의 피를 기억하는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