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문을 지나, 세구의 기억으로

by 김작가a

질투와 살인에서 공존과 회복으로

“형제여, 너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카인이다. 아니, 어쩌면 너도, 우리 모두도 카인일지 모른다. 형제를 질투했고, 그 질투는 살인이 되었다. 아벨은 내 동생이었다. 그의 제사는 받아들여졌고, 나의 제사는 외면당했다. 나는 분노했고, 그 분노는 피를 불렀다. 그날 이후, 나는 문을 넘었다. 그것은 단순한 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의 첫 번째 분열이었다. 형제 간의 살인은 단지 두 사람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를 적으로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카인의 문, 분열의 시작”

그 문은 상징이었다. 질투, 경쟁, 배제, 폭력. 인간은 그 문을 지나며 서로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피부색, 언어, 종교, 국경, 계급.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너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나눔은 싸움이 되었다. 카인의 문은 단지 살인의 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공존을 잊고 경쟁을 선택한 문이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더 강해지기 위해 서로를 밀어냈다.

“세구, 기억의 문을 열다”

하지만 그 문 너머에도 다른 문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세구’라 부른다. 세구는 기억이다. 경쟁이 아닌 공존의 기억. 분열이 아닌 연결의 기억. 세구는 우리가 잊어버린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세구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구조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 함께 살아가는 기술. 세구는 우리가 다시 인간이 되는 길이다.

“경쟁의 시대, 공존의 한계”

우리는 오랫동안 경쟁을 숭배했다. 시장은 경쟁을 통해 발전했고, 교육은 경쟁을 통해 선별했다. 정치도 경쟁이었고, 사랑마저 경쟁이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성장했지만, 그 끝은 피로 물들었다. 러시아와 미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남과 북, 동과 서. 우리는 이념으로 갈라졌고, 국경으로 나뉘었다. 경쟁은 발전을 가져왔지만, 행복을 가져오진 않았다.

“공존은 기억에서 시작된다”

세구는 말한다. “공존은 기술이 아니라 기억이다.” 우리는 본래 함께 살아가는 존재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살 수 없고,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억을 잊었다. 카인의 문을 지나며, 우리는 서로를 적으로 보았다. 세구는 그 잊힌 기억을 되살린다. 협력, 연대, 이해. 그것은 인간의 본래 모습이다.

“카인의 후손들, 세구를 만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경쟁에 지친 이들, 분열에 상처받은 이들, 고독에 무너진 이들. 그들은 세구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되찾았다. 세구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나무가 함께 자라는 법, 새들이 무리를 이루는 법, 아이들이 손을 잡는 법. 그것은 공존의 언어다. 말보다 깊은 언어다.

“기억의 회복, 문을 다시 넘다”

우리는 다시 문 앞에 서 있다. 카인의 문은 여전히 존재한다. 질투, 경쟁, 배제, 폭력.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세구의 문을 열 것인가, 아니면 다시 피를 부를 것인가. 나는 말하고 싶다. “형제여, 너는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서로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잃을 것인가.

“세구는 멀지 않다”

세구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 우리가 서로를 처음 만났던 순간, 함께 웃었던 날, 손을 잡았던 기억. 그것이 세구다. 우리는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경쟁을 멈추고, 공존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마음의 방향이다.

“카인의 문을 닫고, 세구의 문을 열다”

나는 이제 말한다. “나는 카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세구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나를 바꿨고, 세상을 바꿀 것이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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