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by 김작가a

어머니는 늘 떠나면서도 돌아왔다. 떠남은 자유였고 돌아옴은 책임이었다. 문턱을 넘는 발걸음은 언제나 흔들렸고 그 흔들림은 망설음이자 결심이었다. 그녀는 떠나는 순간 자신을 지켰고 돌아오는 순간 아이들을 지켰다. 그러나 두 갈래 길은 늘 서로를 찢어놓았다. 사랑은 오래 붙잡을수록 더 깊은 상처가 되었고 그래서 떠남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녀는 떠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떠난다. 그러나 돌아올 때마다 아이들의 눈빛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 눈빛은 그녀가 잃어버린 세계의 잔해 같았다.

밤마다 그녀는 바람을 들었다. 바람은 골목을 지나 집의 틈새를 흔들었고 그 흔들림은 그녀의 내면을 닮았다. 바람이 불면 떠나고 싶었고 멎으면 돌아오고 싶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바람 때문에. 그 말은 이유이자 변명이었고 동시에 고백이었다. 자유는 바람 속에 있었지만 자유는 언제나 아이들의 울음에 부딪혀 무너졌다. 울음은 그녀를 붙잡았고 붙잡힘은 다시 돌아옴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혁명 이후의 밤을 견디지 못했다. 고문실의 그림자는 그의 몸에 새겨져 있었고 술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농약을 들이켰다. 병의 입구는 좁았지만 그 좁음은 그의 고통을 막지 못했다. 그는 쓰러졌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수술대 위에서 그는 사경을 헤맸다. 의사들은 위를 씻어내고 장기를 붙잡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오래된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술실의 불빛은 차갑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은 가족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아이들은 흩어졌다. 글을 쓰는 나는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 친척 집은 낯설었고 낯섦은 곧 나의 성장의 배경이 되었다. 그 집의 벽은 두껍지 않았지만 벽 너머의 대화는 늘 조심스러웠다. 나는 책을 붙잡았다. 책은 나의 숨이었고 숨은 곧 기록이었다. 나는 글을 쓰며 살아남았다. 글은 나의 저항이었고 저항은 곧 나의 성장이었다.

동생은 조부댁으로 보내졌다. 조부댁은 마당이 넓은 오래된 구옥이었다. 기와는 군데군데 깨져 있었지만 그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는 단단했다. 마당 한쪽에는 잉어가 사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물결은 바람에 따라 잔잔히 흔들렸고 잉어는 그 속에서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아이가 연못가에 앉아 있으면 잉어는 입을 뻐끔거리며 다가왔고 그 움직임은 마치 오래된 집의 숨결 같았다. 집을 지키는 개도 있었다. 털은 거칠었지만 눈빛은 맑았다. 낮에는 마당을 느리게 걸었고 밤이면 대문 앞에 앉아 귀를 세웠다.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개는 잠시 고개를 들어 소리를 들었고 다시 고개를 떨구며 잠에 들었다. 개의 존재는 집을 지켜주는 울타리였고 아이에게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친구였다.

넓은 마당은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봄이면 연못가에 풀꽃이 피었고 여름이면 바람이 더 깊게 불어왔다. 가을에는 낙엽이 마당을 덮었고 겨울이면 눈이 연못 위에 얇게 얼음을 만들었다. 동생은 그 마당에서 자랐다. 연못의 잉어와 개의 눈빛, 바람과 낙엽은 모두 그의 성장의 일부였다.

나는 친척 집에서 글을 쓰며 자랐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 나는 집의 역사를 떠올렸다. 책 속의 혁명은 날짜와 이름을 가르쳤지만 집 속의 혁명은 밤의 냄새와 피의 색을 가르쳤다. 나는 두 혁명을 겹쳐 보았다. 겹쳐진 그림은 맞지 않았고 그 틈에서 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았다. 언어는 나의 무기였다. 나는 패자의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지 몰라도 나는 패자의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은 살아남은 자의 언어였다. 나는 글을 통해 세상과 맞섰다.

동생은 조부댁에서 몸을 키웠다. 그는 말이 적었지만 눈빛은 깊었다. 기차가 지나가면 그는 마당에서 귀를 기울였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는 그의 심장에 박혔다. 그는 떠남을 꿈꾸었지만 떠남은 늘 약속처럼 멀리 있었다. 그는 몸으로 살아남았다. 몸은 그의 기록이었다.

어머니는 가끔 돌아왔다. 돌아오는 날이면 그녀의 손에는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 안에는 간장 한 병, 멸치 몇 마리, 콩나물 한 봉지. 그녀는 웃었지만 웃음은 눈까지 가지 못했다. 눈은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을 안았지만 안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떠났다. 떠남은 반복되었고 반복은 상처를 깊게 했다.

아버지는 수술 이후에도 고통 속에 머물렀다. 그의 몸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고통은 그의 언어였다. 그는 중얼거렸다. 왜 과거를 묻느냐.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는 늘 답하려 했다. 그의 대답은 괴물의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는 가족의 언어가 되었다. 언어는 곧 손이 되었고 손은 무거웠다. 나는 벽과 바닥 사이에서 몸을 낮추었다.

조부댁에서 동생은 몸을 키우며 자랐다. 그는 손으로 살아남았다. 손은 굳었고 굳음은 그의 기도문이었다. 그는 몸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의 기록은 말이 아니었고 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언어였다.

늦은 가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말했다. 네가 커야 한다. 아들은 대답했다. 나는 이미 자랐어요. 이제는 내가 기록할 차례예요. 그 말은 바람을 잠시 멈추게 했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내면은 여전히 바람 속에 있었지만 아들의 말은 바람을 가라앉혔다. 그 순간 집은 흔들리지 않았다. 기차의 울림도 잠시 멎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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