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작가a

하늘의 해가 노랗게 보였다. 그 빛은 여름의 상쾌함이 아니라 오래된 간판처럼 바랜 색이었다. 바람이 골목을 지나갈 때마다 생선 비린내와 석탄 먼지가 합판 벽을 긁었고, 나는 그 냄새를 숨처럼 들이마셨다. 항구에서 떠밀려온 소금기와 시장의 고함, 트럭이 내뿜는 검은 연기, 멸치가 말라가는 소리 같은 것들이 어쩐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세계의 가장 아래층에서 태어났다. 울음은 내 입에서 나왔지만, 그 울음의 의미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건 어쩌면 골목이었다. 골목은 모든 집의 문턱을 지나 다니면서 소식을 모았고, 소식을 냄새와 함께 퍼뜨렸으며, 나를 지나칠 때마다 “이 집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라고 귓속말했다. 그 귓속말이 진짜였다는 것을 나는 아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날의 노란 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오래, 천천히, 무심하게 빛났다.

아버지는 혁명가였다. 혁명이라는 말은 늘 어둠을 밀어내는 불꽃의 이미지로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불꽃은 그의 젊음을 설명하는 제일 정확한 비유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다. 골목에 서서 담배를 태우던 노인들은 아버지가 지나가면 고개를 끄덕였고, 시장에 앉아 생선을 손질하던 아주머니들은 “그 집은 그래도 기개가 있지”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혁명가의 뒷모습이 아니라 밤의 그림자였다. 그의 등은 굽었고, 손은 커서 그림자도 손 모양으로 벽에 떨어졌다. 술병은 거꾸로 세워도 비 소리 같은 울림을 냈고, 병목에서 나는 얇은 울음은 우리 집의 저녁을 차지했다. 그는 아주 오래된 고통을 몸에 담고 있었다. 어쩌면 그 고통은 혁명에서 오는 게 아니라 혁명 이후의 밤에서 온 것이었다. 밤은 고문실에서 길렀고, 고문실은 사람의 내장처럼 어두웠다고, 그날의 냄새가 아직도 코에 남아 있다고, 그는 술이 들어가면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은 말을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니었고, 쏟아지기 위해 준비된 액체처럼 꿀꺽거렸다.

“얘들아, 조용히 해.” 그가 눈을 들어 말했다. “조용히 해야 살아.”

그 조용함은 도리어 모든 것을 깨뜨렸다. 어머니는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갔다. 그 뒤로 무수히 반복된 가출의 첫 장면이었다. 어머니의 발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문턱을 넘는 순간만 조금 흔들렸고, 그 흔들림은 마지막 망설음 같았다. 문이 닫히면 집은 축 늘어졌다. 바닥의 삐걱거림은 사람의 말처럼 줄어들었고, 그날 저녁의 공기는 물처럼 무거워졌다. 나는 갓난 동생을 안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젖을 찾았고, 나는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젖배가 곯는다는 말을 그때 처음 알았고, 그 말은 실제로 배가 움푹 들어가고 울음이 바람보다 얇아지는 걸 가리킨다는 걸 눈으로 배웠다. 동생은 울다 지쳐 잠들었고, 잠에서 깨어 다시 울었다. 나는 빨래 삶는 양동이에 물을 끓여 숟가락을 데우고 설탕을 푼 물을 입에 떨어뜨리면서, 내가 하는 것이 뭐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설탕물은 배를 채우지 못했고, 그 공허는 방 안의 공기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밤 갑자기 방의 모서리를 발로 찼다. 합판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졌고, 길을 잃은 발자국처럼 까만 구멍이 생겼다. “왜 과거를 묻느냐.” 그가 소리쳤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그는 늘 답하려 했다. 그의 대답은 괴물의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는 우리 가족의 언어가 되었다. 언어는 곧 손이 되었다. 손은 무거웠고, 빠르게 날아왔다. 나는 벽과 바닥 사이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몸을 낮추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 볼의 멍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른들의 공동 체질 같았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 많음은 서로의 눈을 무겁게 만들었다.

철도길은 우리 집 바로 옆이라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누군가 멀리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을 닮았다. 기차의 굉음은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러나 오래 듣다 보면 그 소리는 약속처럼 들렸다. 약속은 경계 위에 서는 법을 알려주었다. 떠날 수 있다는 약속, 떠나지 못한다는 약속, 떠나야 한다는 약속. 나는 창문을 열고 철로에 귀를 기울였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 바퀴가 바닥의 미세한 돌기를 쓰다듬는 소리, 기관차가 호흡을 토해내는 소리. 모든 소리가 내 심장에 중심을 찾아 박히는 듯했고, 그 중심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객차를 지나가는 얼굴들을 본 적 없는데도, 늘 누군가 창문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 속의 얼굴은 늘 어두웠다. 어두움은 얼굴의 표정이 아니라 시대의 표정이었다.

어머니는 돌아오기도 했다. 돌아오는 날이면 그녀의 손에는 늘 누더기로 감싼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 안에는 간장 한 병, 멸치 몇 마리, 콩나물 한 봉지. “오늘은 국을 끓일 수 있겠다.” 그녀가 웃을 때면 웃음은 입가에서 멈추고 눈까지 가지 못했다. 눈은 언제나 먼 곳을 보고 있었고, 그 먼 곳은 우리가 사는 골목보다 더 좁아 보였다. “아이 젖은 어떡하니.” 그녀가 묻고, 내가 대답하지 못하면 그녀는 내 손에서 동생을 받아 젖을 물렸다. 동생은 기계처럼 빨았다가 갑자기 힘을 빼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은 얼룩덜룩했고, 그 얼룩은 바람이 만든 지도 같았다. 어머니는 그 지도를 잠깐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이 바람.” 그녀가 말했다. 말은 길지 않았지만, 나는 그 뒤에 이어질 말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 바람이 없었으면, 이 바람이 아니었으면, 이 바람 때문에.

김재규 사건이 지나간 뒤 골목 사람들은 우리 집 앞을 지날 때 목소리를 낮췄다. 낮춘 목소리는 비밀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비밀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고모부는 예편당했고, 종친회장은 고문 끝에 죽었다. 장례식에서 사람들은 검은 천을 얼굴에 드리웠고, 울음은 가늘고 길었다. 나는 그 울음을 따라가면 어딘가 문이 열릴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떤 문도 열리지 않았다. 우리 집의 문은 달라붙어 열리기 어려웠고, 어머니의 가슴에 달라붙은 울음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문 앞에 앉아 바닥을 긁었다. 손톱 밑으로 먼지가 모여 검은 구름이 되었다. 그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비는 오막살이 지붕으로만 떨어졌다. 지붕은 나무로 만들었고, 나무는 물을 빨아들였다가 틈 사이로 되돌려주었다. 밤마다 그 틈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물이 방의 가장자리로 위험하게 흘렀고, 우리 몸은 그 위험에 익숙해졌다.

겨울은 특히 잔혹했다. 연탄은 귀했고, 손은 얇았다. 아궁이에 불이 붙으면 방은 잠깐 따뜻해졌지만 금세 숨이 끊겼다. 나는 연탄을 아끼기 위해 이불 속에서 오래 숨을 참는 법을 배웠다. 숨을 오래 참으면 몸이 따뜻해진다는 걸 누가 알려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살았다. 동생은 밤마다 기침했다. 기침은 작고 빠르게 시작해 크게 터졌고, 그 큰 울음이 끝나면 그는 잠깐 조용해졌다. 조용함은 잠이 아니었다. 잠은 멀리 있었고, 우리는 잠 대신 조용함을 나눴다. 어머니는 등짝을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 말은 엄마의 입에서 나왔지만, 실제로는 우리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나오는 소리였다. 괜찮다는 말은 저항처럼 들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고, 그래서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힘이었다.

학교에서는 역사를 배웠다. 선생님은 혁명과 민주주의를 말했다. 칠판에 분필이 빠르게 움직였고, 분필 가루가 공기처럼 떠다녔다. 나는 그 가루를 들이마셨다. 아버지의 혁명은 책 속의 혁명과 달랐다. 책은 날짜와 이름을 가르쳤고, 집은 밤의 냄새와 피의 색을 가르쳤다. 나는 눈을 감고 두 혁명을 겹쳐 보았다. 겹쳐진 그림은 맞지 않았다. 겹쳐진 것의 모서리마다 걸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했는데, 우리 집의 기록은 누가 적을까, 누가 읽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궁금함은 늘 입술에서 끝났고, 입술은 늘 말 대신 침묵을 만들었다.

어느 봄날, 오막살이 뒤쪽 철로에서 꽃이 피었다. 꽃은 잡초 사이에서 올라왔고, 줄기는 가늘었다. 나는 그 꽃을 꺾지 않았다. 꺾지 않는다는 건 어떤 결심이었다. 나중에 그 결심이 떠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냥 꽃이 예뻤다. 석탄 먼지가 덮인 꽃잎이 햇빛을 만나면 한쪽만 빛났다. 빛나는 쪽은 늘 기차가 오는 방향이었다. 기차가 지나가면 꽃은 잠깐 떨었다. 떨림은 생존의 일부였다. 나는 손가락으로 꽃잎을 만지다가, 손가락 끝이 까맣게 변하는 걸 보고 웃었다. 웃음은 벽에 닿지 않았다. 벽은 웃음을 흡수하지 못했고, 대신 기차의 울림만 되돌려줬다.

저녁이면 사람들은 모였다. 철도 노동자는 손에 기름을 묻힌 채 오라지로 도르래를 닦는 법을 설명했고, 시장 상인은 고등어를 어떻게 칼등으로 눌러 뼈를 발라내는지 보여주었다. 떠돌이는 망치로 못을 박으면서 “세상은 결국 얻어맞는 사람과 때리는 사람으로 나뉜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잠깐 조용해졌다. 누군가 웃었고, 누군가는 눈을 내리깔았다. 막걸리잔은 돌았고, 잔은 늘 비어가는 중이었다. 비어감이 속도를 가지면 슬픔은 덜했다. 슬픔은 잔의 속도로 견뎌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경찰의 그림자는 길어졌고, 우리는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더 가까이 앉았다. 가까움은 안전이었다. 안전은 소리였다. “여기 있자.” 누군가 말하면, 우리는 그 말 사이로 숨을 쉬었다.

어머니의 가출은 반복되었다. 반복은 같은 장면을 다시 만들었지만, 모든 장면은 조금씩 다르게 찢어졌다. 어느 날 밤에는 그녀가 문턱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다른 날에는 신발을 잊고 맨발로 나갔다. 맨발은 땅을 기억했다. 나는 문밖으로 뛰어나가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그녀는 내 손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오래된 사진처럼 바래 있었다. “네가 커야 한다.” 그녀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축복 같았지만 사실은 거절이었다. 그녀는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해 떠나야 했고, 떠나지 않으면 사랑은 더 오래 아프게 남는다고 믿는 듯했다. 나는 손을 놓았다. 어머니는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동생은 안에서 울었다. 울음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바람은 울음을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웃집 아이와 나는 철로 아래에서 놀았다. 땅은 따뜻했고, 작은 돌과 못과 장난감이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못을 줄에 꿰어 바퀴처럼 굴렸다. 굴러가는 못은 깡깡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가슴을 메웠다. “너희 집은 왜 맨날 경찰이 와?” 이웃 아이가 물었다. 나는 대답이 길어질 것을 알았다. 길어진 대답은 듣는 사람의 귀를 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으쓱은 답이면서 아니었다. 우리는 대답 대신 철로에 귀를 붙였다. 먼 곳에서 낮게 울리는 소리가 오고 있었다. 소리가 가까워지면 우리 몸은 먼저 알고 일어났다. 기차가 지나가면 모든 것이 잠깐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잠깐의 부유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현실의 밀도를 잠깐 낮추었다.

여름이면 바닷물은 더 짙게 냄새났다. 항구에 서 있는 선박들은 무거웠고, 그 무거움이 바람을 더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새벽에 항구로 걸어가 배가 들어오는 장면을 보곤 했다. 선원들은 줄을 잡아당겼고, 물은 줄의 힘을 받았다. 그 힘이 우리 집에도 닿을 수 있다면, 우리 집은 덜 흔들릴 것 같았다. 나는 선원들의 손을 오래 보았다. 손등은 검고 갈라져 있었고, 손바닥은 두껍게 굳어 있었다. 손의 굳음은 살아남기 위한 기도문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잠들어 있었다. 잠은 그에게도 잠깐의 부유를 주었다. 그는 꿈에서 젊었고, 꿈에서 노래했다. 깨어나면 노래는 분노가 되었다. 분노는 더 오래 지속되었다.

가을에는 오막살이 옆 느티나무 잎이 생의 마지막을 연습했다. 잎사귀는 조용히 떨어졌고, 떨어진 곳에서 다시 누군가의 발에 밟혀 작게 부서졌다. 나는 그것을 모아 작은 산을 만들었다. 산을 한 번 손으로 쓸어내리면 바닥이 드러났다. 바닥은 언제나 우리에게 있었고, 그 바닥은 늘 이전과 조금씩 달랐다. 달라진 바닥은 우리에게 달라졌음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밟히는 법을 가르쳤다. 그 법을 배우면 오래 살았다. 오래 사는 것은 잘 사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 오래 산다는 건 오래 기억한다는 뜻이었고, 오래 기억하면 아프지만 견딜 수 있었다.

동생은 어느새 말이 늘었다. 그는 기차에 이름을 붙였다. “오늘은 검은 기차가 왔다.” “오늘은 노란 기차가 훑고 지나갔다.” 나는 그 이름들을 받아 적었다. 종이 위에 적힌 이름은 바람을 견뎠다. 바람은 종이를 뒤집었지만 글자를 지우지 못했다. 밤이면 동생은 내 옆에서 잠들었다. 그의 손은 작았고, 작은 손이 내 손등을 더듬었다. “엄마는 올까?” 그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올 거야.” 나는 말했다. 우리는 둘 다 그 말이 틀릴 수도 있음을 알았지만, 그 틀림이 우리를 망치지 않도록 서로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아버지는 어느 날 아주 조용히 울었다. 울음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울음이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어릴 때부터 배웠지만, 그날 밤 나는 울음이 누구에게나 어울린다는 걸 배웠다. 그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고, 손 사이로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실패했어.” 그는 속삭였다. 그 말은 처음 들었다. 실패했다는 말은 우리가 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무릎이 조금 떨렸다. “나는 사람들을 믿었고, 믿음은 내 등을 뜯었지.” 그의 말은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시작 같았다. 그러나 시작은 lasted 하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건 아파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건데, 그는 이미 너무 많이 배웠다. 그는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 노란 해는 이미 져 있었고, 바람은 골목을 더 어둡게 만들었다. 나는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는 돌아와 이불을 덮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철거 소문은 매일같이 떠돌았다. 사람들은 연달아 오는 우환을 피하려고 가구를 줄였다. 줄인 가구는 줄어든 생존의 표시였다. 철거가 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철거가 오면 기차는 어디로 사람을 실어 나를까. 철거가 오면 혁명의 기록은 어디로 옮겨질까. 나는 질문을 접었다. 접은 질문은 옷장 깊은 곳에 넣은 겨울 옷처럼 무겁게 쌓였다. 가끔 그 질문을 꺼내면 집안 공기 온도가 바뀌었다. 어머니는 그 온도를 감지했고, 아무 말 없이 연탄을 뒤집었다. 우리는 질문 대신 연탄을 뒤집었다.

어느 겨울밤, 우리는 거의 동시에 깨어났다. 바람이 문을 흔들었고, 문은 내내 작은 비명을 냈다. 동생은 기침으로 시작해 울음으로 끝났다. 어머니는 방 안을 가로질러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불은 작은 원을 그리며 커졌다. 그 원이 커지면 방 한가운데가 잠깐 밝아졌다. “물.”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나는 양동이를 들어 물을 건넸다. 그는 물을 마시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무언이 어쩐지 평화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무언을 나눴다. 그 평화는 너무 짧아 기억에 남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애를 쓰는 기억은 더 오래 남았다.

봄이 돌아오자, 철로에 앉은 새들이 더 자주 노래했다. 새의 목소리는 가늘었고, 나는 그 노래가 사람들의 목소리와 같다고 믿었다. 새가 멈추면 사람도 멈추었다. 새가 떠나면 사람도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떠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떠나는 것이 방법이라면, 남는 것은 기술이었다. 기술은 반복에서 나온다. 우리는 반복을 배웠다. 연탄을 뒤집는 법, 젖병에 물을 데워 떨어뜨리는 법, 바람이 심할 때 창문 틈을 신문으로 막는 법, 경찰이 올 때 서로 등을 붙여 서 있는 법, 폭력이 다가올 때 눈을 내리깔고 손을 앞으로 모으는 법. 이런 기술들은 어느 날 누군가 내게 “네가 참 잘하는 게 많구나”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나는 웃었고, 웃음은 공기를 울렸다.

나는 성장했고, 성장은 떠남의 다른 이름이었다. 떠나겠다는 다짐은 먼저 언어가 되었다. “나, 기차 탈 거야.” 나는 어느 저녁 술잔을 돌리는 사람들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모두가 웃었다. “그래, 기차 타라.”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그 손에는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나는 기름때가 빛나는 것을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름다움은 가끔 더럽힘에서 나오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 그녀가 말했다. “가서 돌아오지 마.” 그 말은 축복이었다. 축복은 우리 집에서 가장 드문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넣었다.

떠나는 날, 해는 다시 노랗게 떴다. 노란 해는 내가 태어날 때 본 그 노란 해와 같은 색이었고, 다른 색이었다. 나는 작은 가방을 들고 철로를 향해 걸었다. 바닥의 돌이 내 발바닥을 기억하려 들었다. 나는 그 기억을 돌에게 주기로 했다. 돌은 사람의 발자국을 모아 그 길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기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릴 때 바람이 먼저 나왔다. 바람은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순간, 뒤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나는 돌아보았다. 동생은 키가 컸다. 그의 눈은 내 눈과 닮았다. “기차 이름은 네가 붙여.” 내가 말했다. 그는 웃었다. “오늘은 떠나는 기차.” 그의 이름은 정확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문턱에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처럼 새로웠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무언의 끝에 있었다. 나는 그 눈을 기억하기로 했다.

기차가 움직였다. 움직임은 먼저 몸속에서 느껴졌다. 내장이 흔들렸고, 심장이 잠깐 점프했다. 창밖의 골목이 뒤로 밀렸다. 골목의 집들은 작아졌다. 사람들이 작아졌다. 그 작아짐은 두려움과 해방을 한꺼번에 만들었다. 나는 창문에 이마를 댔다. 유리는 차가웠다. 차가움은 내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떠나는 동안에도 집은 있었다. 집은 뒤에 있었고, 뒤에 있는 것들은 더 오래 남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바람의 냄새가 아직도 나 있었다. 생선 비린내, 석탄 먼지, 연탄의 그을음, 나무의 체취, 어머니의 젖 냄새, 아버지의 술 냄새, 동생의 땀 냄새. 모든 냄새가 하나의 문장처럼 이어졌다. 문장은 길었고, 끝나지 않았다.

도시는 도시로 이어졌다. 철로는 길의 문법을 만들었다. 문법은 정확했다. 정확함은 때로 잔혹했다. 나는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 새로운 곳은 낯설었고, 낯섦은 내 몸을 넓혔다. 넓힌 몸으로 나는 일자리를 찾았다. 배달, 막일, 공장. 공장은 별도의 세계였다. 기계는 사람보다 더 일정했고, 일정함은 안심을 만들었다. 공장의 소음은 기차의 굉음과 닮았다. 나는 소음 속에서 잠을 잤고, 잠은 가져온 기억들을 잠깐 침묵시켰다. 나는 돈을 벌어 집으로 보냈다. 돈은 바람보다 빠르게 갔다. 어머니는 편지를 보냈다. “연탄을 샀다.” “동생의 책을 샀다.” “지붕을 조금 고쳤다.” 편지에는 늘 짧은 문장만 있었다. 그 짧음은 더 많은 말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접어 지갑에 넣었다. 지갑은 얇았지만, 편지는 두꺼웠다.

시간은 움직였고, 나는 변했다.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기억은 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시장에서 노란 해를 다시 보았다. 해는 어릴 때 보던 그 색과 같았다.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숨이 막히는 건 울음의 시작이었다. 나는 골목으로 들어가 벽에 등을 붙였다. 벽은 오래된 친구처럼 차가웠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바람이 들렸다. 바람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오래, 아주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느린 속도로 찾아왔다. “나는 버티었다.” 그 문장은 나를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방 안을, 철로를, 항구를, 어머니와 아버지를, 동생을, 우리의 오막살이를, 모든 것을 한 번씩 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 날, 좌석이 흔들렸다. 흔들림은 안심이었다. 안심은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같은 철로를, 같은 바람을, 같은 냄새를 다시 지나갔다. 골목에 내리자 사람들은 나를 보았다. 그들의 눈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것들 속에서 나는 조금 달랐다. 어머니는 문턱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다시 작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오래된 사진이었다. 사진은 빛을 견뎠다. 동생은 달려왔다. 그의 손은 더 따뜻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늘 같은 바람이었고, 다른 바람이었다.

밤이 내려앉자, 우리는 작은 등불을 켰다. 등불의 주황색은 방을 천천히 채웠다.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오막살이가 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 오막살이는 바람을 막지 못하고, 물을 막지 못하고, 밤을 막지 못해. 그래도 거기에 앉아 있으면, 어느 날 아침이 와.” 그의 말은 너무 간단해서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간단함만이 지나간 것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웃음은 이번엔 눈으로 갔다. 눈이 다시 빛을 배웠다. 동생은 책을 펼쳤다. 책 속의 문장은 우리 집의 문장과 다르게 바로 서 있었다. 바로 선 문장을 본다는 건,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 고쳐 놓은 세계를 보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 세계를 읽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기차의 굉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굉음은 약속이었다. 나는 약속을 서랍에 넣고 불을 껐다. 어둠은 방에 들어와 모든 것을 한 번씩 만졌다. 어둠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둠과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얼룩은 여전히 지도 같았고, 그 지도는 새로운 길을 하나 추가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길은 아주 가늘었다. 가늘다는 건 사라지기 쉽다는 뜻이었지만, 나는 그 길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바람이 문을 두드렸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문은 닫힌 채로 밤을 견뎠다. 견디는 밤은 더 이상 우리를 찢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찢어지지 않았고, 그 사실만으로 충분히 큰 희망을 만들 수 있었다.

하늘의 해가 다시 노랗게 떠오르는 아침에, 나는 마당에 나가 서 있었다. 냄새는 변하지 않았다. 생선 비린내와 석탄 냄새가 뒤섞였고, 나무의 습기가 올라왔다. 나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 냄새가 이제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내 옆에 섰다. “노란 해네.” 그녀가 말했다. “응.” 내가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웃었다. 웃음은 바람보다 가벼웠다. 바람은 우리의 웃음을 지나치며 잠깐 속도를 늦추었다. 나는 그 느림을 사랑했다. 느림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다는 건, 계속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계속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의 질문들을 다시 꺼냈다. 왜 혁명은 고문으로 끝나야 했는가. 왜 정의는 폭력으로 무너져야 했는가. 나는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답하지 못하는 채로 사는 것과, 답하지 못하는 채로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은 같은 삶이 아니었다. 우리는 손을 잡는 삶을 선택했다. 선택은 작았고, 작은 선택들은 오막살이의 못처럼 집을 붙들어 매달았다. 못은 녹슬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견디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밤이 오고, 아침이 오고, 계절은 바뀌었다. 철로는 여전히 울었고, 바람은 여전히 불었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다. 여기라는 말은 더 이상 수치가 아니었고, 더 이상 선고가 아니었다. 여기라는 말은 우리의 문장이었다.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문장은 이야기를 살아 있게 했다. 나는 문장 사이로 숨을 쉬었다. 숨은 길었고, 길이가 우리를 지탱했다. 나는 뒤돌아 집을 바라보았다. 판자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못은 제 자리에 박혀 있었고, 바람은 들어오다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나갔다. 그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노래처럼 느껴졌다. 노래는 단순했다. 단순함은 가장 어렵게 배우는 기술이었다.

하늘의 해가 노랗게 보였다. 그 노란 해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 빛은 내가 태어났을 때의 바람과 함께, 내가 떠났을 때의 기차와 함께, 내가 돌아왔을 때의 웃음과 함께 있었다. 나는 그 해 아래서 다시 서 있었다. 내 발밑의 돌은 나를 기억하고, 내 곁의 사람들은 나를 불렀다. 나는 대답했다. 대답하는 일은 때로 살아남는 일보다 어려웠지만, 이제는 쉬웠다. 쉬움은 우리가 서로를 오래 보고 들었기 때문에 왔다. 우리는 서로의 노란 해였다. 서로의 바람이었다. 서로의 철로였다. 서로의 작은 오막살이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후속편) 어머니의 내면과 동생의 성장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2화고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