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by 김작가a

항구의 바람

부산 좌천동의 골목은 늘 바람이 불었다. 항구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생선 비린내와 석탄 냄새를 함께 실어 나르며, 아이의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좁은 골목마다 삶의 냄새가 가득했고, 시장의 소음은 아이의 울음을 덮어버렸다. 그러나 그 울음은 단순한 탄생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가문의 몰락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태어났다. 바람은 자유의 상징이었으나, 동시에 몰락의 예고였다. 아버지는 혁명가였다. 4.19의 불꽃을 몸으로 지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문은 그의 정신을 찢어놓았다. 혁명은 이상이었으나, 고문은 현실이었다. 그는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괴물이었고, 그 괴물의 손길은 가족을 파괴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골목을 휘청이며 걸어 들어왔다. 혁명가의 기개는 사라지고, 고문의 후유증만 남은 몸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무겁고, 그의 눈빛은 공포였다. 나는 그 눈빛을 피해 방구석에 웅크렸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손길은 늘 폭력이었고, 그 폭력은 집안을 무너뜨렸다.

밤마다 들려오는 아버지의 고함은 아이의 꿈을 찢어놓았다. 혁명은 불꽃이었으나, 그 불꽃은 고문의 그림자 속에서 꺼져버렸다. 나는 그 꺼진 불꽃의 잔해 속에서 자랐다.

항구의 바람은 늘 비릿했지만, 그 바람 속에는 자유의 냄새도 있었다. 나는 그 자유를 꿈꾸었다. 그러나 꿈은 늘 폭력에 짓밟혔다. 아버지의 손길은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시대의 그림자는 자유를 빼앗았다.

어머니의 빈자리

어머니는 끝내 견디지 못했다.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 남은 것은 빈자리와 공허였다. 나는 그 빈자리를 메우려 애썼지만, 아이의 손으로는 메울 수 없는 구멍이었다.

밤마다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빈 방은 침묵했고, 침묵은 나를 삼켰다. 그 공허는 평생의 그림자가 되어 내 삶을 따라다녔다.

어머니의 가출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고통이었다. 여성은 가정의 폭력 속에서 침묵해야 했고, 침묵은 끝내 가출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떠남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려 책을 읽었다. 그러나 책은 공허를 메우지 못했다. 나는 친구들과 놀았다. 그러나 놀이는 상실을 덮지 못했다. 빈자리는 늘 남아 있었고, 그 빈자리는 내 삶을 규정했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단순한 공허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구조였다. 나는 늘 빈자리를 메우려 애썼지만, 메울 수 없었다. 빈자리는 내 운명이었고, 나는 그 운명을 증언해야 했다.

몰락의 그림자

집안은 몰락했다. 김재규 사건은 집안을 무너뜨렸다. 고모부는 예편당했고, 종친회장은 고문 끝에 죽었다. 가문은 권력의 폭력에 휘말려 몰락했다. 나는 어린아이였지만, 그 몰락의 그림자는 내 삶 전체를 규정했다.

사람들은 속삭였다. “그 집은 끝났다.” 그 속삭임은 골목마다 퍼졌고, 나는 그 속삭임 속에서 자랐다. 몰락은 내 운명이었다.

나는 늘 질문했다. 왜 혁명은 고문으로 끝나야 했는가. 왜 정의는 폭력으로 무너져야 했는가. 그러나 답은 없었다. 시대는 침묵했고, 권력은 잔혹했다.

몰락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구조였다. 권력은 가문을 무너뜨렸고, 그 무너짐은 개인의 삶을 규정했다. 나는 그 구조 속에서 자랐다. 몰락은 내 운명이었고, 나는 그 운명을 증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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