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지(大地)》는 1960년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난 한 인간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흔을 증언하는 대하서사다. 혁명가였던 아버지의 고문 후유증과 가정폭력, 어머니의 가출, 김재규 사건으로 무너진 집안의 몰락, 세 번의 이혼과 정신병동의 기억, 그리고 수도자로서의 고독한 현재까지. 개인의 고난은 곧 시대의 고난이었음을, 카페 예배당의 고요 속에서 다시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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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의 지금, 나는 빛바랜 페인트 붓자국이 지나간 낡은 카페에 앉아 있다. 커피 향이 은은히 퍼지고, 벽에는 오래된 십자가 하나가 걸려 있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나는 이곳을 예수신앙공동체라 부른다. 독립교회, 인디처치. 세 번의 이혼 끝에 홀로 남은 내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신앙의 자리다.
낯선 이들이 들어와 커피를 마시고, 때로는 기도하며, 때로는 대화를 나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다시 떠올린다. 좌천동 511번지에서 태어난 그날, 아버지의 고문 후유증과 폭력, 어머니의 가출, 김재규 사건으로 무너진 집안의 몰락이 모두 내 운명의 시작이었다.
항구 도시 부산의 바람은 늘 비릿했다. 좁은 골목마다 삶의 냄새가 가득했고, 시장의 소음은 아이의 울음을 덮어버렸다. 그러나 그 울음은 단순한 탄생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가문의 몰락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아버지는 혁명가였다. 4.19의 불꽃을 몸으로 지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문은 그의 정신을 찢어놓았다. 그는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는 괴물이었고, 그 괴물의 손길은 가족을 파괴했다. 어린 나는 공포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눈빛은 혁명의 불꽃이 아니라 고문의 그림자였다.
어머니는 끝내 견디지 못했다. 그녀는 떠났다. 가출은 아이에게 상실과 공허를 남겼다. 빈자리는 평생의 그림자가 되었고, 나는 그 공허 속에서 나를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집안은 몰락했다. 조부가 희사한 장군 김재규의 반란은 집안을 무너뜨렸다. 고모부 대령은 예편당했고, 종친회장은 고문 끝에 죽었다. 가문은 정치적 사건과 권력의 폭력에 휘말려 몰락했다. 나는 직접 겪지 않았지만, 그 그림자는 내 삶 전체를 규정했다.
나는 정신병동에 있었다. 닫힌 창문, 철문 너머의 울음과 웃음. 빛과 어둠이 번쩍였다가 꺼져버리던 순간들. 그 기억은 아직 깊은 곳에 묻혀 있지만, 곧 꺼내어야 할 이야기다.
지금, 카페의 고요 속에서 나는 과거를 해석한다. 내 삶은 개인의 고난이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었다. 세 번의 이혼, 수도자의 길, 독립교회 카페. 모든 것은 대지 위에서 살아낸 한 인간의 기록이었다.
오늘, 나는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기록하려 한다. 대지는 모든 것을 품었고, 나의 삶 또한 그 위에 새겨졌다. 기억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