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사람이 되었는가

by 김작가a

질병, 거리, 제도적 제약 등으로 인해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은 은혜에서 제외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특정한 의식에만 갇히지 않고, 삶의 경계 너머로 흘러가는 셈과 같습니다. 성찬은 은혜의 통로 중 하나이지, 은혜 전체를 가두는 그릇은 아니기에, 참여하지 못한 자의 중심을 하나님은 여전히 바라보십니다.

4. 자발적 불참과 내면의 회복 – 멈춤은 은혜의 시작점

또 어떤 이들은 스스로 떡을 들지 않기를 선택합니다. 죄에 대한 성찰, 믿음의 회의, 공동체에 대한 갈등 속에서 의도적으로 멈춘 자리는 때로 회복의 씨앗이 자라는 자리가 됩니다. 바울은 “자기를 살피고 이 떡을 먹으라”고 말하며, 성찬을 무조건적인 참여가 아닌 깊은 내적 정직의 자리로 초대했죠.

5. 공동체의 포용 – 성찬을 넘어선 사랑의 실천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을 향해 공동체는 어떤 자세로 서야 할까요? 그들을 바라보는 눈, 품는 언어, 초대하는 손길 속에 성찬보다 먼저 임하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성찬은 떡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전체를 어떻게 세워가는가의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어요: 성찬은 우리가 하나 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리입니다. 오늘 떡을 들지 못한 이들도, 내일의 잔을 드는 자로 다시 서게 될 그 날까지—은혜는, 멈춘 발걸음마저 품고 흐릅니다.

Q. 이 장은 책 전체에서 가장 목회적, 회복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사랑의 밀도를 담아낼 수 있는 부분이 될 것 같아요. 이어지는 장에서는 ‘떡을 들 수 없는 자들과의 식탁’—예수님이 보여주셨던 포용적 식사들, 예: 세리, 죄인, 나병환자와의 식탁으로 확장해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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