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왜 사람이 되었는가

by 김작가a

“다윗은 떡을 들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굶기지 않으셨다.
율법은 제사장을 위한 떡이라 했지만, 자비는 굶주린 자를 위한 떡을 허락했다.
예수는 이 장면을 기억하며, 자비가 제사보다 앞선다고 말씀하셨다.
식탁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자리였다.”

이 장면을 포함한 새로운 소제목을 구성해볼까요? 예:
“자격 없는 자를 위한 떡 – 다윗과 진설병의 은혜”
혹은 “율법의 떡, 자비로 나뉘다”

Q. 이 흐름, 계속 엮어가고 싶어요. 다음 장의 연결이나 전체 구조 속 위치도 함께 조율해볼까요? 맺음말에서는 장대한 인류의 제사 역사와 구약과 신약의 전체에 흐르는, 현대와 미래의 시대에도 영속적으로 이어질 영원한 삶의 제사를 드리는 인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제 이 책은 단순히 “성찬”이나 “식사”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제사와 삶의 흐름을 따라가는 성경적·구속사적 식탁의 서사로 확장되었어요. 그만큼 마지막 맺음말은 독자가 책을 덮은 후에도 여운처럼 남아, 자기 삶이 그 이어진 제사와 식탁 속에 있다는 자각으로 흐르게 해야겠죠.

맺음말

《영원한 식탁을 향한 발걸음 – 삶이 곧 제사가 되는 날까지》

구약의 시초부터 인류는 제사를 통해 신에게 나아갔습니다. 아벨의 피, 노아의 제단, 아브라함의 번제, 이삭 대신 놓인 순양. 모세와 아론을 따라 제사장 제도가 세워지고, 수많은 피의 제사가 드려졌지만, 그것은 모두 완전한 제사를 기다리는 예표였습니다. 바로 한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모든 제사의 중심이 되었죠.

그리고 그 완전한 제사는 성찬이라는 상징으로 삶 속으로, 식탁 위로 내려왔습니다. 떡과 잔은 더 이상 제단 위의 희생이 아니라, 평범한 식탁 위의 삶이 제사로 변할 수 있다는 선언이 되었죠.

이제 우리는 매일의 선택과 식탁 속에서 그 영원한 제사에 동참합니다.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는 삶(롬 12:1),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성소이며 예배이며 존재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간의 끝, 역사의 끝, 영원의 문턱에서 하나님은 마지막 식탁을 예비하십니다—눈물도, 갈등도, 배제가 없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 그곳은 이 땅에서 떡을 들지 못했던 자들조차 기쁨으로 앉게 되는 완전한 회복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참으로 복이 있도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계 19:9)

이제 우리의 삶은 그 식탁을 향해 걷는 여정입니다. 우리는 때로 굶고, 때로 물러나고, 때로 눈물 흘리지만, 그 걸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식탁은 멈추지 않고 준비되고 있습니다.

Q. 이 흐름을 포함하여 마지막 장과 맺음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전체 목차도 약간 다듬어볼게요. 혹시 머리말, 프롤로그 쪽도 함께 작업해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끝까지 함께 걷고 싶어요.

사람의 신체 영혼이 신께 부여 받은 것이라면, 성경의 제사와 당연하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특히, 신체의 장부의 기능과 역할을 성막의 번제물 속죄물 속건제와 연결해서요.

이 연결, 정말 깊고 통찰력 있어요. 인간의 몸과 영혼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면, 그것을 드리는 제사 역시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드리는 응답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 흐름은 성막의 제사 제도와도 놀랍도록 정교하게 맞물립니다.

특히 **신체의 장기(장부)**와 각 제사의 제물 처리 방식을 연결하면, 몸의 각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예배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묵상할 수 있어요.

제사와 신체의 상징적 연결

번제 – 전신을 불태워 드리는 제사. 제물의 모든 부위를 태워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는 전인적 헌신, 곧 몸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상징하죠. 바울은 이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롬 12:1)

속죄제 – 죄를 속하기 위한 제사. 내장기름, 콩팥, 간의 일부 등 특정 장기를 떼어 불태웁니다. 이 장기들은 감정과 의지, 중심의 자리로 여겨졌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죄의 중심을 태워 정결케 하려는 상징이었어요. 예: “내 속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시 51:6)

속건제 – 관계 회복과 배상을 위한 제사. 죄에 대한 구체적 보상이 포함되며, 제물의 일부는 제사장이 먹습니다. 이는 삶의 실질적 회복, 곧 몸으로 행한 잘못을 몸으로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이 연결, 정말 깊고 통찰력 있어요. 인간의 몸과 영혼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라면, 그것을 드리는 제사 역시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드리는 응답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 흐름은 성막의 제사 제도와도 놀랍도록 정교하게 맞물립니다. 특히 **신체의 장기(장부)**와 각 제사의 제물 처리 방식을 연결하면, 몸의 각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께 드려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예배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묵상할 수 있어요.

속건제 – 관계 회복과 배상을 위한 제사. 죄에 대한 구체적 보상이 포함되며, 제물의 일부는 제사장이 먹습니다. 이는 삶의 실질적 회복, 곧 몸으로 행한 잘못을 몸으로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속건제(Guilt offering 또는 Restitution offering)는 히브리 전통에서 특히 중요한 제사 중 하나예요. 이 제사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계 회복과 구체적인 배상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독특하죠.

속건제는 주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혹은 성물에 대해 실수했을 때 드리는 제사로, 잘못에 대해 정해진 배상(예: 원금 + 1/5)을 하고, 동물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공동체 안의 관계까지 회복하려는 목적이 있었어요.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이 먹는 것은 이 제사가 하나님뿐만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의 정화와 회복을 상징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속건제의 핵심은 “몸으로 행한 잘못은 몸으로 회복한다”는 실천적 신앙이에요. 즉, 죄를 고백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책임 있는 행동과 실질적 회복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Q. 혹시 이 내용을 현대적인 의미로 연결하거나 더 깊이 있는 역사적 배경과 연결해서 정리해드릴까요? 속건제를 현대적인 관점과 역사적 맥락에서 연결해 보면, 그 깊은 의미가 더욱 선명해져요.

역사적 배경 속 속건제의 의미

속건제는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공동체와 하나님 사이의 질서를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어요. 이 제사는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 법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동반한 회복의 선언이었죠. 잘못을 저지른 자가 손해를 입힌 상대에게 **실질적인 보상(배상금 + 제사)**을 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종교와 정의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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