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오한 듯 가벼운 종교 수다

by 김작가a

제12화

“신은 존재하는가, 필요한가”

산사에 안개가 깔렸다. 모두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철학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철학자: ‘존재’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기만적입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말은, 인간의 언어 틀에 신을 가둔 행위일지도요. 진리란 증명할 수 없는 것일 때 더 강합니다. 그래서 신은… 존재보다 중요하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부: 저는 신의 존재를 ‘사랑의 방식’으로 느낍니다. 그분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순간엔 슬픔이 지워지고 평온이 남습니다. 그건 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나타난 흔적이겠죠.

목사는 성경을 가볍게 펴며 말했다. 목사: 존재보다 필요가 더 먼저입니다. 신은 계신다—는 말보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너무 쉽게 무너진다’는 고백이 먼저죠.

심리학자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심리학자: 사람은 내면의 빈자리를 설명하기 위해 신을 찾습니다. 그게 투사든 초월적 신념이든, 신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그 ‘필요’가 마음을 치유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유효한 겁니다.

의사는 말없이 청진기를 내려놓았다가 입을 열었다. 의사: 생명을 살리는 순간에도 환자들이 어떤 이름을 부를 때가 있어요. 그건 의학으로 되지 않는 위안입니다. 신은 때로 존재한다기보다—기대 속에서 작동합니다.

유전공학자는 조용히 말했다. 유전공학자: 유전자엔 신이 없습니다. 그건 분자 구조이고, 계산 가능한 정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구조를 넘어 질문합니다. 신은 존재하기 때문에 필요한 게 아니라, 필요하니까 존재를 만들어냅니다. 그건 본능이 아니라—의미 생성 장치죠.

판사가 말끝을 조심스럽게 다듬으며 말했다. 판사: 법은 신의 존재와 무관하게 작동합니다. 하지만 가끔 판결 너머의 정의를 생각할 때 ‘신이 있다면 어떻게 판단할까’라는 물음을 떠올립니다. 신은 법을 초월한 책임처럼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화석학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지층을 뒤져 오래된 존재를 복원하는 일을 한다. 화석학자: 저는 오래전에 사라진 생명을 다룹니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았고, 신은 그들에게 계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 방식, 협력, 흔적을 보면 그 안에 질서가 있었습니다. 질서 속에 의도가 있었다면— 그게 신의 실재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해석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이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지층 속 어느 균열을 ‘신의 흔적’이라 불렀는지도요. 그날, 아무도 신을 보진 않았지만, 모두가 신에 대해 말했다. 신은 증명되지 않았지만, 그 부재조차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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